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당동붓다 Jul 02. 2020

돈을 번다는 것의 숭고함

우리 엄마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엄마에게 나는 최고의 딸이기 때문에, 나는 한강이 보이는 강남의 커다란 아파트에서 입주 도우미를 두고, 나만 사랑하는 재벌3세의 남자의 보호 아래, 소중한 아이를 돌보며 회사따위는 다니지 않고 살아야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내 남편이 탐탁치 않다.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얘기한다. 네가 네 남편때문에 고생한다고. 나는 재벌3세를 구경하지도 못했거니와, 그런 사람은 적어도 같은 재벌과 결혼하거나, 적어도 내가 예쁘고 날씬하기는 해야 결혼해주지 않겠냐고 얘기했다. 게다가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매일 시댁가서 커텐정도는 빨아야하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우리엄마는 넘치는 사랑으로 얘기했다. "요샌 안그래. 네가 뭐가 아쉽다고." 


하, 참.


하지만 사실, 내 남편은 나를 고생시킨 적이 없다. 내 남편은 한국인이 두명밖에 없는 크고 좋은 회사에서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회사에서 차도 주고 월급도 많이 받는다. 나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이 부족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 이 이야기를 엄마 귀에 인이 박히도록 얘기해도 엄마는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에게는, '여자가 일한다' 는 것은 '남자는 능력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실제로,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밖에 나가 일한다고 했을 때, 아빠는 엄청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잠시동안 일을 했는데, 그 때 엄마는 정말 빛났다.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당시 쉽게 가질 수 없던 큰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내가 못알아듣는 말을 했다. 아쉽게도 엄마는 아빠가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자, 일을 그만두었다. 일하는 것이 몹시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좀 쉬고 싶다고.


나는 2009년까지는 부모님 품에서 잘 얻어먹고 살다가, 2010년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시작했다. 회사는 4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을 다녀봤고, 그 이후에는 사업을 했다. 사실, 일을 안하고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을 받으며 살려고 했었다. 어찌저찌 이렇게 되었지만, 나는 이 결과가 나에게 너무나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돈을 받고 하는 일이든, 나의 돈을 주면서 하는 일이든, 일이라는 것은 늘 많고,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나의 돈을 투자해서 하는 일은 참으로 절실하다. 돈을 더 벌기는 어려운데, 돈을 쓰기는 너무 쉽다. 게다가 내일 당장 돈을 덜 벌지도 모르기 때문에, 갑자기 코로나같은 말도 안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갑자기 엄청난 돈을 낼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매일이 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하는 것이 좋다. 그냥 '일한다' 는 것 자체가 좋다. 해도해도 티도 안다는 집안일과는 달리, 보상이라는게 있는 일이 좋다. 잘하면 칭찬을 받고, 아주 잘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어른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이란게 좋다. 뭔가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그 느낌이 좋다. 반대로 좌절할 때도 많다. 위기는 늘 오고, 변수가 많고, 비굴해질 때도 많고, 치사해질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이 좋다. 내가 절실하게 무엇인가 한다는 것이 좋고,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보상을 고민하고, 아끼는 방법을 생각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좋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직업의 귀천이 없이 고귀한 일이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일인가. 치사하게 남편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시댁에서 커튼을 빨지 않아도 되며,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한잔쯤 사볼 수도 있고, 아이의 입학선물로 가방을 선물할 수도 있는 멋지고 귀한 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사치스러운 순간이 아니라고 해도, 이 세상 어디에 떨어져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많은 위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일을 하면서 한가지 배운 점은, 무슨 일이든 방향성이 맞는 일을 꾸준히만 한다면, 나는 이 세상 어딜가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경제적으로든지 정신적으로든지 남편에게 종속된 인간이 아니게 된다. 내가 벌어먹고 살 수 있으므로, 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 이혼이라는 선택지는 고민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불가능한 선택은 아니다. 왜냐면, 나는 내 몸하나, 내 딸 몸 하나 정도는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은 위대하다. 나에게 자신감을 주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래서 동아가 나에게 "엄마의 꿈은 뭐야?" 라고 물으면, 나는 늘 주저없이 대답한다. "엄마의 꿈은,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하는거야." 


작가의 이전글 미디어 노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