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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May 13. 2021

인생의 반짝이는 순간

나의 고등학교 시절

한국에서 태어난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꼭 밟아야 하는 인생의 정해진 트랙 같은 것이 있다. 


매일 학교에 가기, 매일 친구를 만나서 놀기, 매일 숙제하기, 시험공부를 하기. 인생에 있어서 꼭 해야 하는 과업 같은 것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 말에 순종하며 살던 이십몇 년의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20살 초반부터 나는 그놈의 '꿈'에 그렇게 집착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에 가기 전까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은 부모님과 제도권 교육의 문제라 여겼다. 대학시절부터 회사를 다닐 때까지 그놈의 '꿈'이란 것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헤매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고작 20살짜리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00세 인생인데, 왜 고작 20년도 안 살아봤으면서 남은 80살의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한 길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어제 내가 왜 내가 짜증을 냈는지도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나를 어떻게 완벽히 이해한단 말인가. 요즘 들어서는 그 대단한 '꿈'이란 것은 성과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닌가 싶다.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효율적인 방법으로 하려고 한다면, 최소한 그 목표를 빨리 정해야 하니 꿈을 빨리 찾아야 하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던 시절은 그 꿈 없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나는 가끔 지각은 했지만 매일 학교를 갔고, 세상에서 제일 웃긴 친구들과 매일 입이 아프게 웃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가 정말 재밌었는데, 그때는 내일을 기대하는 삶이 매일 펼쳐졌다. 매일 밤 내일 학교 가서 친구랑 놀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학교에 가면 재밌는 친구들이 가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유진이와는 앞다투어 수업시간에 졸기 바빴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잠에서 깨서는 선생님 농담까지 받아 적던 유리의 필기를 베끼며 수업시간을 상상했다. 우연히 일어나 있던 지구과학시간에, '우발라'라는 지형을 듣는 자를 대고 열심히 책에 줄을 긋던 우연선이의 별명을 우발라로 짓고는 너무도 행복해했다. 지금도 매일 연락하는 슬기는 체육시간 첫날 미끄러운 체육관 바닥을 밟더니 이곳이 바로 아이스링크장이라며, 실내화로 스케이트를 타며 개그 실력을 선보였다. 한 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지만, 수업시간만 끝나면 우리 반에 있던 정민이는 우리와 함께 교실 뒤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매일 밤 각자의 집에서 라디오를 듣던 지선이와 나는, 다음날 아침부터 전날 밤 라디오 내용을 복기하며 킥킥댔고, 광클의 결과로 이소라의 음악도시 공개방송에 가기도 했다. 남에게는 독설을 하지만, 자신이 들으면 한없이 약하지는 나혜와는 서로 독설을 해대면서도 서로를 위로해주며 매일 집에 같이 가는 사이였다. 태백산맥과 한강을 나눠 읽던 예슬이와는, 신문 지건 종이 쪼가리 건, 잡지 뒤에 건 그렇게 쪽지를 써서 주고받았다. 인디밴드를 좋아하던 혜정이는 매일 나와 CD를 번갈아들으며 좋은 노래를 추천해주었다. 생선 가시를 잘 바르던 미선이는 급식시간에 살갑게 생선 가시를 발라주었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던 나래는 낭랑한 목소리로 착하게 나에게 간식을 나눠주었다. 더 이상 쓰면 일주일도 모자랄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두지만,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하루하루가 빠짐없이 반짝거렸다.


그때 빛나던 소중한 하루하루가 쌓여 습관이 생기고, 취향이 형성되고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정리할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나는 잠자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친구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라디오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위로받는 것을 좋아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비주류 음악을 사랑하며, 착한 친구들과 서로 보듬고 위로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의미해 보였지만 그 보석 같은 시간이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마침표 없는 트랙을 빙빙 돌고 있다고 해서, 의미 없는 인생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가장 빛났고, 반짝였다. 고민 없이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학교 다녀서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10대의 어린 시절, 가족 이외에 평생에 걸쳐 만날 존재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매일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성과를 내는 그 순간들이 모두 빛나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36세가 넘은 나는 이제 '꿈'이라는 단어 앞에서 초조하지도, 불안하지도,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꿈이라는 것이 평생의 직업을 얘기한다면, 나는 당당하게 없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과 돈을 버는 방법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실 그것은 시기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이다. 불과 10년 전에는 있지도 않는 도지 코인 때문에 전남 영광 출신의 일론 머스크가 돈방석에 앉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평생의 직업을 30대에 결정하지 못했을지언정, 내 인생의 보석 같은 친구들과 반짝이는 순간을 켜켜이 쌓아온 나는, 여전히 그 보석들과 함께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빛내고 있다. 30대 후반의 내가 정의하는 꿈은, 삶의 방식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일을 대충 하지 않는 것,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히 대하는 것, 나를 아끼는 것. 내가 정한 삶의 방식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이 나의 꿈이다.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라는 말을 좋아한다. 깨달음을 얻는 '돈오'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점수'라는 점진적인 수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교육학을 배울 때 이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감명받은 대목은 사실 의외의 대목이다. 그 깨달음의 경지인 '돈오'는 사실 우리 안에 이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푸른빛의 소녀가'라는 책을 편집했다는 내 친구 예슬이가 동아와 함께 보라며 그 책을 보내주었다. 그 글에 이런 글귀가 있었단다. 나는 이 글이 담긴 엽서에,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 길고 긴 글을 적어 동아에게 선물했다.


"우리 모두는 

별에서 온 아이들

네 안에는 별이 빛나고 있어."


고맙다, 얘들아.

내 인생의 반짝이는 시간들을 선물해주어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빛나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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