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일들이 연달아서 일어나고, 숨도 못 쉬게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는 그런 시기가 있다.
아이가 3살쯤 되던 해였던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하루가 미칠 듯이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과 대단히 다를 바 없는 나날들이었는데, 그때는 매일이 버거웠다. 그 당시 나는 게스트하우스, 카페와 바를 운영했는데, 카페는 매일이 적자였고, 게스트하우스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나를 찾는 손님들의 전화가 왔다. 대단한 집중력과 명석한 두뇌로 적자도 해결하고 쌓인 일을 잘 처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은 없었다. 잠자리 독립을 못한 딸은 내 옆에서 자면서도 서너 시간에 한 번씩은 깨서 나를 찾았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새벽에 회사에 나가 새벽에 들어왔으며, 일요일에도 회사를 나갔다. 그래서 나는 그 유명한 독박 육아를 매주 주말마다 했다. 나는 그렇게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생활을 3년째 지속하고 있었다. 그 바쁘고 정신없던 중에 우리 집에는 둘째가 찾아왔지만, 내 뱃속에서 5개월을 버텨보던 그 천사는 하늘나라에 갔다. 그 몇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아이를 보내고 동아를 데리러 친정에 간 첫날, 동아가 "엄마 내가 씻겨줄게." 라며 그 작은 손으로 내 손등을 닦아주었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그즈음, 내 쌍둥이 오빠는 서핑에 빠져있었다. 그 모습이 내내 부러워 보였던 나는, 나의 술친구 나혜를 꼬셔서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핑을 배우러 갔다. 작디작은 파도에 밀려 머리가 산발이 되기도 하고, 파도가 없을 때는 보드에 누워 패들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곳에는 넓은 바다와 한없이 작은 나, 이렇게 단 둘 뿐이었다.
망망대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주말에 하루라도 시간이 나면, 자고 있는 아이와 남편을 뒤로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넘게 고속버스를 타고 동해로 갔다. 고작 대여섯 시간 바다에 있는 게 다였지만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해가 저무는 7시가 되면 또 3-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다. 별 능력 없는 나란 인간이, 한 가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좋았다. 나에게 서핑을 가르쳐주던 쌍둥이 오빠가 나를 버스터미널에 데리러 와 주고, 함께 밥을 먹고, 데려다주던 그 시간이 좋았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을 쓴다는 것이 좋았고, 바다에서 태양을 온몸으로 받는다는 것이 좋았다. 고작 하루지만, 왕복 8시간이 넘는 그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평일에는 서핑 책을 읽고, 서핑 동영상을 찾아보고, 카버 보드를 탔다. 몇 달을 그렇게 지냈다. 서핑은 내가 그 당시 부릴 수 있는 가장 크고 행복한 사치였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히 서핑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아직도 나는 초보고, 보드 위에 잘 서지도 못한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배워보고, 몸을 쓰고,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 왠지 근사했다. 스스로 멋진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비록 지금은 바다 근처에도 가지 못하지만, 서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몇 가지 근사한 습관들이 생겼다. 근력을 키워야 한다며 일주일에 3번은 운동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은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고 느껴지던 시기에 우연히 서핑이 내 인생에 활력을 준 것처럼, 언제 어떤 일이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지 몰랐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화실에 다니고, 디제잉을 배우고 싶으면 디제잉을 배우고,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쓰고, 언어를 배우고 싶으면 언어를 배웠고,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여행을 떠났다. 갑자기 없던 시간과 돈이 생긴 것도 아니었고, 독박 육아를 하던 일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원래 없던 돈과 시간은 아껴서 쓰면 됐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했고, 아이를 못 데리고 가면 주변에 부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고,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지금도 숨이 턱 막히는 암흑 같은 시간을 건널 때면, 숨이 턱끝까지 차게 운동을 하고, 해보고 싶어 미뤄왔던 것을 시작한다. 그리고 주문처럼 속으로 되뇌어본다.
'그래, 이 시기도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