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불량엄마 일기 #7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불량엄마 같지만, 속으로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라고 생각한다.
몇번의 심리상담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세상 어디에도 나만한 엄마가 없으니, 나를 잘 믿고 내 주관대로 아이를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정엄마가 나의 육아방법이 두서없고, 교육도 엉망이고, 아이의 영양상태도 고려하지 않는 나쁜 엄마라고 욕에 욕을 더해 욕을 퍼부을 때도 나는 나를 믿고 있다.
주변의 엄마들이 기저귀도 못 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한글을 가르친다고 해도 나는 나를 믿고 있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 부모들이 주중에는 삐까뻔쩍한 집에서 멋드러지게 만들어진 아이의 놀이방겸 공부방에서 멋들어지게 육아를 해내고, 주말에는 밭으로 들로 외국으로 마실을 나갈 때도 나는 나를 믿고 있다.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아침에 동아에게 뽀뽀를 해주고 쭈쭈를 해주며 아침을 즐겁게 맞이하는 법을 알려준다.
정성스러운 나의 요리가 맛이 없다며, 내딸은 두숫갈 정도만 아침밥을 먹지만 쫒아다니면서 먹으라고 스트레스 주지 않는다. 그치만 맛이없다고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이게 나의 최대치니까. 또래보다 5cm 키가 작고 마르기는 했지만, 나는 내가 굶겨서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밥은 많이 한다.) 그저, 키와 몸무게는 타고난거라고 믿고 있다. 가끔, 엄마가 그만먹으라고 할 때까지 먹는 동아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부럽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동아는 동아니까 그렇게 되라고 하고싶은 마음도 의지도 없다. 때가되면 먹고 클 것이라고 믿고 있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좀 너저분하게 생활하긴 하지만 우리는 집에서 물감놀이도 하고, 모래장난도 하고, 찰흙놀이도 한다.
(치, 그치만 나는 돈이 있으면 내 나름대로 인테리어는 더 하고싶긴 하다 ㅠ )
동아는 나와 함께 있으면 늘 웃고 있다. 행복해 하고, 엄마가 좋다고 말해준다. 나는 그걸로 됐다.
비록 영어공부와 한글공부를 해본적은 없지만, 동아는 수천번도 더 들은 렛잇고 노래를 엇비슷하게 따라부를 수 있으며, 숫자퍼즐도 잘 맞추고, 고구마의 ㄱ이 자신이 인사하는 모양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스스로 물어보기 전까지는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이미 영어도 할줄알고 한글도 잘 아니, 굳이 동아가 내 대신 잘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동아의 페이스대로 스스로 알아가면 된다.
주말은 피곤하고 해외는 더 피곤하고 돈도 없으니 밖으로 잘 나가지는 않지만, 우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동네를 산책하고 놀이터에서 둘다 손과 엉덩이가 까매질 때까지 함께 미끄럼틀을 탄다.
우리는 같이 거품목욕을 한시간이나 하고, 서로 마사지를 해주며, 노래를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출 줄 안다. 자기 전에는 질릴때까지 책을 읽고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뽀뽀를 해주고 잠을 잔다. 심지어 내가 피곤하니까 오늘은 책을 조금만 읽자고 하면 동아는 금방 이해해주고 나를 토닥여주는 멋진 아이다.
우리는 어린이집 갈때도, 집에 돌아올 때도, 인사를 할 때, 잠을 잘 때도 우리만의 인사법이 있고 우리만의 제스쳐가 있다.
동아는 다른 집 엄마처럼 깨끗한 집에서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고 짜여진대로 교육을 받지는 않지만, "하지마, 안돼, 공부해" 라고 말하는 엄마가 없고, 혼내거나 화를 내는 엄마도 없다.
나는 그저 동아가 하고싶은 대로 하고 즐거워 하면 된다. 그 방법이 폭력적이거나 기본 도리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면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동아의 세상을 스스로 탐구했으면 한다.
나는 좋은 엄마다.
나는 아이의 말이 시작되면 하던일을 멈추고 (급한일만 아니라면ㅎㅎ) 끝까지 귀를 기울여주고, 들어주고, 이해해준다. 혹여나 화를 내면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과를 받아줄때까지 반성한다.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참 좋은 '나' 이면서 사랑을 많이 주는 '엄마'다.
동아가 어떤 엄마를 좋아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조금 작지만, 조금 예민하지만,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좋아하는 것도 분명하고, 꾀도 많은 동아가 참 좋다. 내가 그저 동아가 동아라서 동아를 좋아하듯, 동아는 내가 나라서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나는 존재 자체로 진짜 좋은 엄마다.
있는 그대로 아낌없이 예뻐해주고, 더이상 바라지 않는 게 사랑이니까.
그게 사랑이니까.
그러니 남들의 기준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에서 단하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게 가족이니까.
인정받지 못해서, 성공하지 못해서 불안한 마음을 치유받아야 하는 곳이 가정이니까.
내 딸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공부하는 불쌍한 딸을 키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는 내내 불행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을 키워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엄마에게 독립해서 멋지게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아직까지 내 기준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이다.
그리고 동아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딸이다.
우리는 지금, 진짜 서로 사랑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