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 주고 난리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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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주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간헐적 폭식'. 내가 말하는 이 폭식은 잠시 잠깐 적정량 이상으로 먹는 게 아니라, 며칠을 지속해가면서 멈추지 못하고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는 걸 뜻한다.
정말 끔찍한 이 폭식 시즌(?)이 오면, 나는 늘 하던 운동도 안 하고, 평소보다 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일부러 모른 척하기도 한다.
몰라, 말리지 마.
나 내일까지 폭식할 거야.
나를 대접(treat)하는 거라고 합리화하며 먹고 먹는다. 나 지금 힘드니까. 하고 있는 거 버거우니까. 그래서 자꾸 힘이 없으니까. 이럴 땐 쉬어야 한다며. 마음껏 먹고 싶은 거 먹자고.
내 폭식의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이 많이 흔들릴 때, 그래서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
그럴 때 어떤 걸 먹냐? 예상하는 그것들 맞다. 몽땅 다 몸에 좋지 않은 것들. 과자, 크림이 잔뜩 들어가 있는 빵, 맥주, 피자, 떡볶이, 밥밥 밥, 적당량을 넘어선 탄수화물 폭탄들.
올라가는 당 수치가 나의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주나. 그런 거라면 정말 그건 일시적인 건데. 이럴 때면 가뜩이나 번잡했던 마음속이 더 시끄러워진다.
아 나 이렇게 먹고 나면 후회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폭식할 거야.
그러니까 요 며칠 사이, 폭식을 했다. 잠깐의 폭식 시즌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잠드는 시간이 자꾸만 늦어지고, 내가 사랑하는 아침을, 저녁을, 하루를 틈틈이 낭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하고, 해야 할 일들은 더 미뤄졌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마음 위에는 정신이 없는 꿈들이 얹어지고, 피곤한 먼지들이 흩날렸다.
마음이 무거웠다.
몸도 무거웠다.
마치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나를 대접하는 일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지. 지속되는 폭식은 대접이 아니라 결국 나를 망가트리는 일이라는 걸, 나는 미련하게도 계속 더부룩한 속과 부은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또다시, 깨닫는다.
11월의 마지막 날, 월요일 오후는 상쾌한 겨울바람이 살살 불고, 햇빛이 쨍했다. 문득 그 바람과 햇빛을 마주하며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슈퍼에 가서 레몬 두 개를 샀다. 독소가 많이 쌓였으니 디톡스를 하자며. 텀블러에 레몬 반개를 즙 짜서 넣고, 맑은 물을 가득 넣어 섞으면 레몬 물 완성. 한 모금 마시며 내 몸에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또 너를 속여가며 소중히 대하지 않았어.
그리고 내 마음에게 말을 걸었다.
먹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고 그 후가 참 힘들다, 그렇지? 방법을 고안해보자. 나는 이 습관을 꼭 고치고 싶어. 아니 고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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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11월의 마지막 날이라서 참 다행이다. 털어버리기 딱 좋은 날이니까. 내일은 무려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오늘과는 또 다른 날이 시작되는 거야, 새로운 기회야.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인 거라면, 지금 당장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얗고 깨끗한 '내일'이라는 종이가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부지런히 나의 하루를 써야지. 언제나 그렇듯 사과 반쪽을 베어 먹은 후, 운동으로 개운한 땀을 빼고 오늘 해야 할 일을 거뜬히, 즐겁게 해내야지. 겨울 찬 공기처럼 다시 가볍고 상쾌한 글을 성실하게 써나가자.
이 밤, 따뜻하게 우린 얼그레이 티에 레몬 한 조각을 넣어 마시는데 어쩐지 마음은 시원하고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