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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Nov 27. 2020

향에 민감한 사람   


1.

금요일 저녁 6시, 집으로 가는 지하철 탑승.


얼른 줄을 서서 들어오는 지하철에 빨리 들어갈 준비를 한다. 앉을자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서 있어도 상관없지만 어쩐지 금요일 퇴근길엔 꼭 앉고 싶다.


오늘은 다행히 착석에 성공.

여느 때처럼 책 한 권을 꺼내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아, 엉덩이를 깊숙이 넣어 앉기엔 너무도 비좁은 자리. 나는 대충 걸터앉은 후, 책 속으로 얼른 도망을 갔다. 가만히 그 공간에 있기엔 너무도 힘든 시간이거든. 퇴근 시간, 사람으로 꽉 막혀있는 지하철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든다. 그럴때면 나는 한껏 더 예민해진다.


옆 사람의 통화 소리나 혹은 음악 듣는 소리가 크게 들릴 때, 어르신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데시벨로 아주 크게 말을 하실 때,

어쩔 땐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다툼을 할 때 등등.


그런 소음들이 나를 더 예민하게 한다.


오늘은 내 옆사람이 통화를 하네. 아, 그냥 서서 갈까?


그러기엔 한 발 늦었다. 이미 사람들로 꽉 차서 이도 저도 못하기 때문. 대신에 어떻게든 책 안으로 곤두선 신경을 구겨 넣는다. 얼른 내리길 바라면서.




2.


'어?'


늘 그렇게 불편했던 퇴근길 지하철이 오늘은 조금 달랐다. 그건 바로 곤두선 내 신경을 단번에 누그러트리는 향이, 어디선가 은은하게 났기 때문이었다.


라벤더 향이었다.

어쩐지 건조한 손에 적당히 발려진 핸드크림의 향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향이 조금 났을 뿐인데 이곳에서도 마음이 누그러지다니. 맞다. 나 향에 민감하지.


그러다 갑자기 다른 향이 내 코를 찔렀다. 이 표현이 정확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향이었다. 으... 이건 향수 같은데. 내가 싫어하는 향이었다. 그리고 언제 편안했냐는 듯 금세 내 미간 근육은 힘을 주기 시작했다. 다시 답답해지는 것 같은 퇴근길 지하철 안. 다행히 그 향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렸고, 나는 얼른 상쾌한 밤공기로 내 코를 헹구었다.


오늘 이 찰나의 순간을 겪으며 나에 대한 하나의 문장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확신에 찬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며, 여기, 이 페이지 마지막에 남겨본다.  



나는 향에 민감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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