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와 숙소 예약을 한꺼번에 다 진행할 시간이 부족해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부랴부랴 런던 숙소 2곳, 에든버러 1곳, 베니스, 피렌치아, 로마까지 총 여섯 곳의 숙소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루를 온전히 여행 일정과 숙소 예약에 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시중에 갖고 있는 돈으로 네 명분의 운송수단과 숙소를 미리 땅겨쓰기에도 빠듯했다.
"아름아, 우리가 얼마씩 환전해서 가져가면 되니?"
엄마와 친구들이 여행 경비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도 아직 여행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계획을 물어오는 행위가 내게는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단타로 런던에서 인근 유럽 나라로 여행 갈 때의 경비 정도만 가볍게 컨트롤하며 다녔기에(영국에서 사용하는 파운드와 유럽에서 사용하는 유로의 통화 교류가 원활해, 카드 한 장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고 숙소와 비행기만 미리 예약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먼 한국에서 날아와 유럽에서 2주를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을 체계적으로 계산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가 필요한지 전체적인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한정적인 예산에 맞추어야 했기에, 5성급 호텔에서 머무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유로운 상황에서 유럽 여행을 해도 힘든 것이 유럽 여행인데, 그렇게 60대 뽀글 머리 트리오의 배낭 여행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엄마. 나도 좋은 데서 재우고, 맛있는 거 많이 먹게 해주고 싶은데 6월부터 성수기 시즌이 시작이라 좋은 가격에 남아있는 방도 별로 없고, 이 부분은 감안하고 여행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
"그래, 네가 뭐 전문 여행 가이드도 아니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해."
못내 걱정하는 나를 엄마는 안심시키려 했다. 훗날 이 말에 대한 책임으로, 어마 무시한 사건이 터질 거라곤 상상하지 못하는 엄마였다.
방을 예약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은 지하철 역에서 가깝고, 네 명이서 한 방에서 잘 수 있는가였다. 한 달 전에 예약하는 게 그렇게 늦었다곤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미 성수기가 시작된 시즌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조건에 충족되는 가성비 좋은 곳은 많이 남아있지 않았었다. 타이트한 예산까지 여러모로 상황이 열악했다.
남아있는 방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여러 숙소의 리뷰를 체크하고, 네 명이 한 곳에서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일 끝난 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찾아봤다. 리셉션 직원이 까칠하다, 사진과 다르다 등의 좋지 않은 리뷰에 겁을 먹었지만 별다른 초이스가 없었다. Earls Court라는 위치 대비 가격이 괜찮은 곳을 찾아 다행히 예약할 수 있었다. 더 늦어지면 이러한 방들도 없을 것 같아, 눈에 보이는 많은 악평(?!)들을 무시하고, 위치 하나라도 건지자는 마음이었다.
공항 가기 전에 잠깐 들려 체크인하면서 내 짐을 내려놓으려고 방을 둘러봤다.
"오 마이. 마이. 맙소사!"
2층 벙커 위의 베개 쪽으로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밑에까지 다시 내려가기 귀찮은데..."
어쩔 수 없지만 체크하고 바로 출발해야 공항 픽업 시간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친절하지 않다는 후기가 머릿속에 맴돌아 내려가는 내내 긴장을 하면서 리셉션으로 향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다행히 4인용 방이 남는 게 있어서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 3층에서 한층 더 높은 4층으로 , 작은 내 짐을 잉차잉차 들고 올라갔다(신축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아니고선 영국 대부분의 주택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바뀐 방에 들어가서 리셉셔니스트와 함께 확인하고 괜찮아서 바로 바꿀 수 있었다. 방 사이즈는 처음보다 좀 더 작아졌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앞으로의 여행에서 아주 작은 서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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