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2년 동안 보지 못 했던 얼굴을 드디어 보게 되는 날, 6월 10일이다. 마중 가는 공항 길엔 어김없이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험상궂은 런던의 날씨가 오늘은 유독 밉게만 느껴진다.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니 두툼한 아우터와 경량 패딩을 챙겨 오라고 말했는데, 잘 챙겨 왔는지 공항으로 마중 가는 내내 걱정이 앞섰다. 유럽에서 처음 발을 내딛게 될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 365일 중 300일에 비가 내리고 거센 바람도 심심치 않게 부는 악명 높은 런던의 날씨를 직빵으로 맞이하게 될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로 이전 주에 런던 생활 마무리와 2주간의 유럽 여행을 동시에 준비한다고 바빠서 내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탓에 몸 컨디션도 말이 아니었는데, 을씨년스러우면서도 구질구질한 런던 날씨가 거동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만들었다. 머그컵에 차가운 우유를 가득 따르고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린다. 농도 짙은 '캐드버리' 코코아 파우더를 두 스푼, 세 스푼 넣고 숟가락으로 휙휙 휘저은 뒤, 머그컵의 밑바닥을 숟가락 등으로 팍팍 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넷플릭스 보며 쉬고 싶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영국의 그런 전형적인 날씨에 발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져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는 엄마의 비행 랜딩 시간은 오후 5시 25분이었다. 런던에서 살고 있던 방을 빼고, Greenland Dock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 머물다 공항으로 가야 했다. 2:54분, 동쪽에서 히드로 공항이 있는 서쪽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히드로 공항'엔 5시 30분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딜레이 되지 않는다면, 최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테니 Exit 2 앞에 위치한 코스타 정면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슬오슬 추웠던 몸을 따뜻하고 밍밍한 코스타의 '바닐라 라떼'로 녹여본다. 설레기도 하면서 동시에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다. 비행하는 동안 무탈하게 잘 착륙하길 바라고, 영국 땅을 밟아서 세관을 잘 통관하고 나를 만나러 올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됐다. 타지에서 잠시나마 그 나라의 주인이 되어 가족을 맞이한다는 생각에 뿌듯한 감정이 잠깐 들다가도, 공항에서 "엄마!"라고 부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목이 메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나오질 않으니 순간 짜증이 났다. 엄마와 친구들이 타고 온 대한항공은 히드로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로 보이는 한국인들은 이미 나오기 시작한 지가 오래됐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가는데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내 짜증 나던 마음은 다시 걱정하는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혹시 세관에서 걸려서 못 나오는 건 아닐까? 뭐지?' 들어가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탓에 답답함과 걱정되는 마음만 고조되어 갔다. 그렇게 하염없이 Exit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두리번두리번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촘촘한 발걸음으로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미니미처럼 걷는 엄마의 모습이 순간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순간 다시 또 짜증의 감정이 올라왔다(안에서 도대체 뭘 했길래 바로 나오지 못했는지에 대한 기다림에 대한 억울함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반가움이 먼저 앞서 나는 불렀다.
"엄마!"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려는데 민망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순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괜스레 짜증 섞인 말투로 말을 걸었다.
"엄마!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다른 사람들은 아까 전에 다 나왔는데 진짜. 여기 난방도 안 돼서 기다리는데 추워 죽는 줄 알았어."
엄마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타지에서 내 하나뿐인 핏줄에게 어리광 부리는 듯한 말투로 투정을 부린다는 것이 반가워서라는 것을 말이다.
"아고, 짐이 우리께 빨리 안 나와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나왔어. 기침을 이렇게 콜록콜록하는데, 목 좀 뭐로 가리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나왔어."
"나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나올 때 세관은 어땠어? 별 일 없었어?"
"어구야, 그래. 그 뭐지 지문 찍는 걸로 하니까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도장 찍어줘서 나오기는 바로 나왔어."
2017년 6월 초부터 실시된 자동입국 심사에 한국이 포함된 덕에, 세관 통관할 때 잘 나올 수 있나 어쩌나 하는 걱정 하나를 덜 수 있었던 것이었고, 실로 그 힘은 위대했다. 나와서도 엄마와 친구들은 얼마나 편하고 간단하게 통과했는지, 신나서 조잘조잘 대며 영국공항에 첫 발을 내딛던 순간의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게 풀어냈다. 그 모습에 부슬부슬한 날씨에 오랜 시간 기다리며 울컥하던 마음도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