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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Dec 12. 2021

다가오는 한 해

나는 그냥 내가 되기로 한다.












  스물여덟까지만 살아 보고 싶었던 나는 무사히 해를 넘기고 스물아홉이 되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것에 슬퍼하고, 많은 것에 기뻐하다가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몇 가지 버릇이 사라지고 몇 가지 버릇이 생겼다. 좋지 않은 습관이 생기기도 하고, 좋은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Halsey의 Colors에서 스물여덟까지만 살아 줬으면 한다고 해서 나는 잠깐 그것을 목표로 했었다. 어떤 천재들은 스물여덟에 요절하기 때문에 천재 같아 보이는 네가 스물여덟까지는 살아 줬으면 한다는 그 노래 가사는 분명 상대방이 스물여덟이 되기 전에 죽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천재는 아니지만, 스물여덟에 죽는다면 천재 비슷한 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는 말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살았다면 무언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더 살지 못해서 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 가능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보고 가능성에 중독되었다고 한다. 도전하지 않고 ‘가능성이 있는 나’에 만족하며 내가 하지 않았기에 안 된 것이지, 했다면 됐을 것이다, 라고 위안하는 것이다. 나도 그런 류에 속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회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았을 뿐이지, 나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우에다 후우코의 일러스트. 고등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좋아해 왔다.



  실은 살고 싶다는 욕망이나 생각이 없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누구도 답을 줄 수 없고 그런 질문을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들 하지만 나는 살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죽었을 때의 장점이 너무 많이 보였고, 내가 죽으면 더는 엄마에게 짐 덩이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급하게 고양이를 입양했다. 뭐라도 책임지게 된다면 섣불리 목숨을 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삶에 무게를 더해 놓아야 했다. 삶을 끝내기 전에 정리할 것이 아주 많아야 했다. 그래야 정리하다가 힘들어서라도 포기할 테니까.     


  다양한 죽음의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익사. 추락사. 약물중독. 자해. 아픈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싫었던 나는 자살했다는 연예인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들여다보았다. 자살에 대해 보도 지침이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그게 철저히 지켜지는 편은 아니었고 지난 몇 해는 죽어버린 연예인들이 자주 보도되는 해였던 것 같았다. 유독 그렇게 느껴졌다. 이름을 알고 있던, 얼굴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더는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지 않고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몇 해였다.     


  정말로 살고 싶지 않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취미를 만들어보려 했다가 금방 질려버렸고, 고양이는 나와 함께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았다. 스물여덟을 꾸역꾸역 넘기고 맞이한 스물아홉에서 나는 공허했다. 흔히 말하는 죽지 못했으니, 태어났으니 그 김에 사는 것 치고는 엄마에게 너무 죄가 많았고, 손을 벌리는 일이 많았다. 만화 씨엘의 주인공이 그런 대사를 했다. 살고 싶어서 사는 것도 아닌데, 돈까지 없는 건 너무 싫다는 대사였던 것 같다. 나는 정말 그랬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나는 해야 하는 일이 없는 삶을 무의미하게 지속해 나가고 있었다.     


  유일한 희망은 사주를 봤던 것이었다. 올해가 정말 힘들 거라고 했다. 연말로 갈수록 점점 더 힘들어질 거라고 했다.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그때가 6월쯤이었는데, 그때도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때보다 더 힘든 연말이 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보고 살아만 있으라고 했다. 그냥 버텨만 달라고. 그러면 내년부터는 정말 좋을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반쯤 믿었고, 반쯤은 흘려들었다. 올해가 힘들면 또 얼마나 힘들지, 내년부터 좋아진다면 또 얼마나 좋아질지. 그런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연말은 가혹하게 몰아닥쳤다. 돈을 벌지도 못하는데 쓸 곳이 너무 많았고, 사기도 당한 것 같았다. 호흡 한 번에 엄마에게 죄를 짓고 있었다. 자꾸 빚이 늘어갔다. 나는 엄마의 노후 대책인데, 내가 얼른 사라지는 게 엄마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진지하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가장 덜 아프고 가장 확실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곁에서 손을 잡아 주었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린다. 서른 살을 먼저 맞이한 선배가 어느 날 불쑥 나에게 연락을 했다. 중학생 때 처음 만났던 선배는 내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면서 연락이 끊겼었다. 다단계도 아니고, 돈 빌려 달라는 연락도 아니고, 사이비도 아니고, 종교 권유도 아니라는 말로 먼저 카톡을 보낸 선배는 한 번 만나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고 나는 별생각 없이 조만간 보자고 대답했다. 흔한 안부 인사라고 생각했다. 결혼하는 줄 알았다는 내 말에 선배는 아니라고 했다. 그냥 정말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선배가 내가 사는 곳까지 찾아와서 밥을 사 줬다. 맥주를 마시며 선배는 말했다.     



  “스물아홉까지가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서른이 되니까 너무 좋아.”

  “서른이 되고 모든 게 풀리면서 여유가 생겼어.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싶어지더라.”

  “그래서 왔어.”     



  나보다 먼저 스물아홉을 견디고 서른이 된 선배는 괜찮은 직업도 있고, 돈도 괜찮게 벌고, 바쁜 하루를 보내지만 이렇게 나를 찾아와서 밥을 사 줄 여유까지 가지고 있었다. 선배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말했다. 서른이 정말 좋아. 한 사람이 말하면 그렇구나, 하는데 사주에서 들었던 말을 선배가 다시 해 주고 있었다. 물론 선배의 사주와 나의 사주가 같지는 않겠지만, 선배는 내 눈앞에 있는, 살아 숨 쉬는 증거이자 증인이었다. 어떻게든 견디고, 버텨서, 살아있으면 뭐가 되더라. 선배도 파란만장한 순간들을 보낸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손을 잡아 주러 왔다고 했다. 너도 그럴 것 같아서, 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말이 닥쳐오면서 점점 나는 궁핍해지고 가난해졌다. 마음이 그렇고 생활이 그랬다. 생활 반경이 좁아지고, 정신과에 가는 것도 간혹 빼먹었고, 나를 돌보지 못하게 되었고,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지고,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진지하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선배의 얼굴과 목소리가 자꾸 생각났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야. 서른이 정말 괜찮아.

     

  누구는 나에게 아홉 수가 되었다고 하면서 시집 걱정을 했다. 이제는 묵은 말이 되어버린 노처녀라는 딱지도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존재하기도 버거운데 시집이니 연애니. 다 남의 일 같았다. 선배가 아니었다면 나는 무의미한 나이 먹음을 한탄하고 슬퍼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의 불행을 끄집어내 곱씹어 쓴물을 빨아먹는 게 나의 버릇이었으니.     







나는 괜찮아. 뒤집으면, 나를 구해줘.





  어느 날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주에서 말한 용신운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선배의 서른이 괜찮다는 말이 계속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등골을 빨아 먹으며 무의미하게 연명하던 시간을 끝내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급히 찾아보면서, 뭔가 해보기도 하고, 뭔가 실패해 보기도 하고, 또 뭔가 성공해 보기도 하면서 나는 문득,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고 싶지 않았다. 발치에서는 고양이가 따끈따끈한 몸을 둥글게 말아 잠을 청하고 있었고, 나는 어두운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죽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그랬다. 결코 죽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사라지고 싶었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찾아내고 싶어졌다. 살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먹어 온 항우울제가 드디어 약효를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삼 년 동안 꾸준히 받아 온 정신과 상담이 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나를 멈추게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고, 아무것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수 있지만, 나는 이제 죽고 싶다기보다는 살아 존재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기왕이면, 잘 살고 싶어졌다. 기왕 사는 거,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득 내가 줄곧 머릿속에 달고 마음속에 얹고 살았던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이제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이 지금이라고 느낀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오래 뜸을 들이고 나서야 간신히 깨달음이 왔다.     


  어쩌면 다음 한 해는 그리 빛나는 한 해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소한 성공들을 쌓아 나의 발판으로 삼고 싶어졌다. 나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생각이었다. 나는 무엇도 할 수 없고, 무엇을 해도 잘되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닌, 내가 뭔가를 해냈고, 또 그것을 꽤 성공적으로 해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에게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문득.




  내년의 한 해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해보려 한다. 되도록 많은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겨울잠에 들었다가 깨어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가오는 봄에,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한다. 아니,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어쩌면, 그냥 내가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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