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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Mar 07. 2022

성취감으로 나의 삶을 지속하려면

그물을 쳐 둔다. 절망에 빠졌을 때 언제든 붙잡고 나올 수 있게.









  성취감은 중요하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다면, 그 의욕을 양분 삼아 꾸준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영감을 가지고 작업을 해낸 다음 얻을 수 있는 것. 완성된 작품을 보며 ‘그래, 괜찮은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약간의 성취감과 함께 뿌듯함, 자랑스러움, 대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기분으로 우리는 다시 ‘다른 거 뭘 해볼까?’ 하는 의욕이 생기게 된다. 긍정적인 선순환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일을 해나가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나와 비슷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이다. 사소한 실패는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들 하지만,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너무나 사소한 일이 누군가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커다란 비극이 된다. 개미와 코끼리가 타격을 느끼는 돌의 크기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의 마음이 모두 코끼리가 될 수는 없고, 누군가는 솜털 같은 마음을, 누군가는 강철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지만 솜털이 더 좋고 강철이 더 나쁘고는 없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인터넷과 SNS, 매체의 발달로 우리는 타인의 삶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시하는 이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삶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영상으로, 사진으로, 글로 등장하는 다른 이들의 삶의 조각을 맛보며 그 조각과 조각들을 이어 하나의 멋진, 완벽한 삶을 만들어내기가 너무 쉬워졌다. 나와 같은 나이인데 재산이 벌써 몇 억이고, 자가도 있고 자차도 있고, 생일 파티에서 명품을 선물 받고, 휴가를 길게 내서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멋진 연애도 하면서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효도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가족도 잘 챙기고 문화생활과 취미 활동도 즐기는. 각각 놓고 보면 다 다른 사람인데, 그게 모여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니 나의 삶은 언제나 부족하고 빈곤할 수밖에 없다. 이걸 해냈어도 다른 사람이 해낸 것만 못하고, 또 다른 것도 해야 하고, 다른 것도 챙겨야 하고. 해야 할 일도, 성취해야 할 일도, 성공해야 할 일도 너무나 많다. 시간은 짧고, 기력은 한정되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정작 하고 싶은 건 하나도 못 하게 되고. 그렇게 영혼이 굶주린다. 마음의 토양이 빈곤해진다. 난 왜 저렇게 못 하지. 그런 질문 하나가 가시처럼 박혀 뿌리를 내리고 주위의 양분을 전부 빨아 먹는다. 나는 실패한 인생이구나. 내 삶은 뭣 같아. 비관과 비난, 자책과 자괴.     




  무수한 실패 끝에 얻어낸 한 번의 성공. 소박한 성취에 기뻐하기에는 주위에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나 가까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러니, 현혹되거나 속지 말아야 한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을 때 불행해진다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전보다 남과 비교가 쉬워진 요즘, 나 자신만의 삶을 찾기도, 살아가기도 쉽지 않다.     




  우울증에는 요리가 좋다고 한다. 요리는 과정이 있고, 공을 들여야 하고, 그렇게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고 나면 성취감이 드는 동시에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소박한 성공이 나를 배부르게 하고, 기쁘게 하고, 풍족하게 한다. 내가 만든 요리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하거나, 먹방에서 묘사하는 맛보다 맛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성취감은 사라진다. 애써 해낸 요리가 실패작 같다. 전혀 실패한 거 아닌데. 완전 맛있기만 한데. 모양도 예쁜데. 어차피 먹으면 안 보이게 되는 모양이 뭐가 중요하다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는 법을 잘 모른다. 낯부끄러워서, 자뻑 같아서, 잘난체 하는 거 같아서 망설이고 수줍어하고 겸손을 떨게 된다. 무언가를 잘 해내서 누군가 칭찬을 해 줬을 때,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게 된다. 겸손하다고 칭찬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잠깐 기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 것은 ‘저 정말 고생했어요.’ ‘애써서 해냈더니 기분 좋네요.’ 같은 태도일 것이다. 내가 해냈어. 역시 내가 해낼 줄 알았어.     


  그러니까 사소한 일에도 우리는, 성취감을 닥닥 긁어서라도 맛봐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을 때가 오히려 잦다. 애써 쓴 글이 조회 수가, 별점이 낮을 때. 애써 그린 그림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열심히 해낸 일인데 지적만 받을 때. 발상의 전환, 말은 쉽지. 지금까지 계속 해 오던 생각의 흐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연습을 해야 한다. 습관이 생기려면 한 달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석 달 정도 지속하면, 몸에 완전히 배어서 안 했을 때 오히려 불안하고 허전하다고 한다. 일부러라도 우리는 나의 성취감을 느끼는 말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을 정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무언가를 하나 해냈을 때, 달콤한 생초콜릿 한 조각. 내가 집중하기로 한 시간 동안 집중했을 때,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거 하나 결제. 물론 이루지 못했어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냥,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오늘은 좀 실수했네, 그럴 수 있지. 그런 생각으로 나를 위로해야만 한다.     


  그럴 수 있지. 무심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좀 더 자비롭고, 넓은 이해심을 보여줘야 한다. 그럴 수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소리 내어 말해 보고, 그게 부끄럽다면 어디에라도 적어 보자. 빈 종이와 펜이어도 좋고, 패드에 펜으로 적어도 좋다. 타이핑을 해도 좋다. 나도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나에게 자비롭기 위해서 지금 글을 적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뭐 어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들어 둬야 한다. 절망은 너무나 깊고, 달콤하고, 끈적하다. 늪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자칫 잘못해서 헛디디는 순간 끝없이 끌려가는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물을 쳐 두고 근육의 힘을 길러 둔다. 붙잡을 것을 만들어 두면, 언제든지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다. 타인의 손을 기다리는 것보다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     




  성취감이라는 그물을 촘촘히 쳐 두면, 언젠가는 알이 가득 찬 성공을 낚을 수도 있을 테다. 기대와 희망을 갖자. 그게 우리를 다시 도전하게 하고, 시도하게 하고, 의욕을 내게 하고, 그렇게 다음을 불러오니까. 다음이 생기면 내일이 있고, 내일이 있으면 삶이 이어진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속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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