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중간 까맣게 혹은 하얗게 비워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은, 누락된 곳을 헤아리는 것보다 기억나는 순간을 꼽는 편이 낫다. 새벽에 등산을 가자고 나와 차의 뒷좌석에 앉고, 이른 아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밥과 우동을 먹었다. 벌써 산에 다녀오신 어르신들도 보였다. 아침 일찍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을 밟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새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는 어쩐지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정상 근처 높은 곳까지 아이스크림 카트를 끌고 오신 분이 있었는데, 현금이 조금 부족해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살 수가 없었다. 엄마랑 나랑 동생은 망설였고, 주인 아저씨는 인심 좋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덤으로 주셨다. 덕분에 내려오는 길이 행복하고 달콤했다.
싫은 기억들을 전부 지워 버리고 잊어버리다 보니, 10대의 거의 대부분이 사라진 순간이다. 어떻게 중학교를 다녔더라. 고등학교는 어떻게 다녔었더라. 분명 소중한 친구도 있었고, 좋아하는 선생님도 있었는데. 벌써 치매가 온 걸까. 고등학교에 등교하기 싫어 엄마 차 조수석에 앉아 가다가, 갑작스럽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는 몇 번 물어보더니, 나를 그냥 집으로 다시 데려다주셨다. 그런데 나는 왜 학교에 가기 싫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글을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제일 좋은 상은 3학년 선배가 받았고, 그다음 좋은 상을 받았다. 그때의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또 글을 써서 냈지만, 그때만큼 좋은 상은 받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학교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았었다. 알고 보니 여고생들은 다 그러고 놀았다더라.
근현대사 과목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필기할 게 정말 많아서. 그러고보니, 나는 필기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빨간 펜으로, 선생님이 참고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건 파란 펜으로, 덜 중요하고 사소한 것들은 초록 펜으로. 교과서를 빼곡하게 메우고, 빈칸에 바른 글씨를 꼼꼼하게 적어 넣어 채우는 게 좋았다. 친구들에게 필기를 예쁘게 한다는 칭찬도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을 일본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커다란 타코야끼는 속이 왠지 덜 익은 것처럼 느글느글했고, 숙소는 커다란 호텔 방을 둘이서 썼다. 일본식 유카타 가운이 있었고, 물건을 팔아 치우기 위해 일부러 코스에 넣어진 할인 마트에서는 발바닥에 붙이고 자면 피로가 날아가고 몸이 개운해진다는 패드를 샀다. 엄마에게 주고 싶었다.
비교적 가까운 고등학생 때 기억은 떠올리고자 하면 몇 개를 이렇게 떠올릴 수 있는데, 중학교 때 기억은 가물거리고, 초등학생 때 기억은 정말 싫은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학교에서 이름 탓에 놀림을 받았던 기억,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던 기억, 나 때문에 친구까지 놀림 받았던 기억. 체육 시간에 혹은 발표할 때 잘난 척을 한다고 수군거리던 목소리.
유치원 때의 기억은 더욱 끔찍하다.
언제나 사라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무슨 감각인지 잘 몰라서, 알 수 없어서 죽고 싶다고 말하고 썼지만 아마 나는 사라지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모든 것을 훌훌 놓아두고 가고 싶었다. 내 20년은 참고, 또 참고, 삼키고, 그렇게 잊어버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싫은 것을 참고, 힘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삼키고. 그러다가 실수로 힘들어, 하고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기도 하고. 하지만 내 입버릇은 ‘괜찮아’였다. 엄마가 너는 항상 괜찮다고 그러더라, 라고 말해 줘서 알았다. 그렇구나. 나 계속 괜찮다고 말하고 있네.
어릴 때부터 자주 듣던 말이 있는데, 해외에서 살다 왔냐는 질문이었다. 미국 같은 곳에서 지내다 온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별히 이국적으로 생긴 외모도 아니고, 머리가 노랗지도 않은데. 학창 시절 간혹 들어 왔던 그 말은 대학에 와서도 계속 듣게 되었다. 어디 외국에서 살다 온 것 같았어.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알고 있다. 항상 세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살고 있었던 거다. 아무것도 내게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 무엇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식으로. 현실감 없이 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엇이 되어 버리든. 마치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것처럼. 아무런 책임도 없고, 의무도 없이 그냥 흘러가듯 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사라져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말로 나에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니까,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비극이 벌어졌어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약간은 멍하고, 약간은 피곤한 채로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뭐. 고개를 숙이고 잠시 울다가 나는 나의 세계로 도로 들어간다. 깊은 우울과 침몰의 성으로. 우울의 벽을 세우고, 반투명한 그 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너무 슬프고 우울해. 마치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게 눅눅하고 축축해. 나와는 정말 아무것도 관계없는 일인 것 같아.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나도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아.
한 번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 적도 있었다. 정말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는데, 알고 보니 속고 있던 거였어서. 그 이후로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내어 줬어도, 모든 해달라는 것을 다 해줬어도 사랑은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다. 그 뒤로는, 열정이 식었다고 해야 할까, 의욕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아마 두려움이, 걱정이 모든 것을 다 이긴 거다. 또 다시 그렇게 허무해질까 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내 삶의 전부가 우울이다. 약을 먹지 않으니 더 잘 알게 되었다. 나는 까딱 잘못하면 하루종일 잘 수도 있고, 까딱 잘못하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잠들었다가,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할 수 있다. 무엇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하루를 몇 번 보내고 나니, 내가 망가졌거나 혹은 망가진 채로 살고 있거나 아니면 뭔가를 더 망가뜨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을 새로 찾았다. 약을 다시 먹는다.
이 나이가 되도록 해 놓은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불안보다는 우울이 극심하게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반투명한 벽 안에 갇혀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라고 중얼거린다. 내 인생이 망가졌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이대로는 안 된다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욕도, 생각도, 힘도 나지 않으니까,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10년 넘게 이렇게 살아 왔는데도,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아지고 싶기는 한 걸까? 나는 정말로, 누군가에게 필요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우울증이 나으면 우울증을 치료하게 된 과정에 대한 글을 쓰려 했다. 책이 잘 팔리면 책이 잘 팔리게 된 과정에 대한 글을 쓰려 했다. 세상은 성공담에 관심이 많고,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해낸 일들에 대해 말해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성공하지 못했고, 해낸 일이 없다. 모든 것이 잘 안 되었다. 그렇게 뭐라도 해 보려 했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다 망친 걸까.
그래서, 차라리 망가진 채로도 어떻게든 살아 보는 과정을 써 보려 한다.
일기장 같은 거다.
이런 사람도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건, 위로가 될까. 누군가는 비웃겠지. 누군가는 한심하게 여길 테고. 누군가는 동정하고, 누군가는 연민을 보낼 테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 어쩌겠어요. 저도 이런 삶을 살아요. 이게 제 삶인걸요.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테지. 그 사람에게 어쩌면 이 글이 닿아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목적으로 나도 글을 쓰는 거니까. 나도 그런 글을 읽고 위로받은 적이 있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려면.
그래서, 어쨌든. 써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