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들을 모아서 더 맛있는 게 될 수도 있잖아요. 저처럼요.
안녕, 나는 샌드위치. 당신 앞에 놓인 샌드위치예요.
여유로운 일요일 오전, 한적한 스타벅스, 통유리로 된 한쪽 벽면에서 쏟아지는 햇빛. 모든 것이 훌륭한 데도 당신이 괜히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이유가 궁금한가요? 그건 나 때문이에요.
오래 전부터 당신이 날 닮았다고 생각해왔어요. 잠깐만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티가 확 나는데요. 표정 관리 좀 해줄래요? 나도 알아요. 샌드위치란 거, 식사도 아니고 간식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잖아요. 배는 고픈데 시간은 없고 끼니는 해결해야겠다 싶을 때 다들 찾곤 하죠. 그래서 내 앞에는 늘, 어김없이, 항상, ‘대충’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오늘 뭐 먹었어? 그냥, 대충 샌드위치로 때웠어.
좀 억울하긴 하지만 불만을 토로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빈틈에 끼어드는 게 좋거든요. 배고픔과 바쁨 사이의 틈새, 혼자 식당에 앉아 있기 싫은 외로움의 틈새, 혹은 신속히 식사를 마치고 싶을 정도로 어떤 것에 몰두해 있는 마음과 에너지를 낼 음식이 필요한 몸의 틈새…. 나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가장 다급한 지점에 있는 거라고 믿어요. 사랑스럽잖아요, 그런 거.
사실 샌드위치는 ‘요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구석이 있죠. 가만 보면 각 재료들을 그냥 얹어 놓은 것뿐이잖아요.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계란은 계란대로, 구운 닭가슴살은 닭가슴살대로. 무슨 양념장을 정해진 분량으로 넣어야 하는 것도, 뭐 하나 빠진다고 해서 못 먹을 음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두툼하게 구워진 비프스테이크를 넣으면 충분한 저녁 식사 거리가, 땅콩 잼과 바나나를 넣으면 썩 괜찮은 디저트가 되는 식이죠. 나, 이런 부분이 당신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질서가 없는 게 내 질서고, 방향이 없는 게 내 방향이야.”
술에 취하면 당신이 종종 하는 이 말, 마치 내 얘기 같았거든요. 나도 뭐, 정해진 게 없으니까요. 당신은 어릴 적에 그게 불안했다고 했죠.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어 하고, 이것도 저것도 좋아하며 살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자신이 마치 여러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욕심꾸러기 같다고 여기기도 했고요. 글 쓰는 것, 노래하는 것, 음식(그중에서도 술)에 대해 공부하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 여행하는 것, 춤추는 것.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좋아할 만큼 뻔한 일들이라 더 시무룩해지기도 했겠죠. 하지만 그러면 뭐 어때요? 사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재료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맛있는 것들뿐이에요. 토마토, 맛있죠. 양상추, 맛있죠. 데리야끼 소스를 바른 닭가슴살이든 마요네즈를 섞은 참치든 얇게 썬 햄이든, 다 맛있어요. 치즈는 두말할 필요 없고요. 그렇게 맛있는 것들을 모아서 더 맛있는 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처럼요.
샌드위치 주제에 엄청 으스댄다고 여길 수도 있겠네요. 것보단 당신을 좀 다독여주고 싶었어요. 이래 뵈도 당신이 제일 정신없고 힘들 때 늘 곁에 있었잖아요. 새로운 지면을 맡아 처음 취재를 나갔을 때, 한창 입사를 준비할 때, 과제와 시험에 시달리던 때, 홀로 외국 어딘가를 헤맬 때,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당신이 시시한 사람이었던 때도요.
결국 지금 약간의 울적함과 멜랑콜리를 느끼는 건 그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일 거예요. 그 자체가 슬퍼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그렇게 몰두하고 방황하지 않는 현재가 안타까워서요. 나와 너무도 오랜만에 만났단 게 그 증거죠. 할 일이라고는 월요일을 기다리는 것뿐인 직장인의 일요일 아침, 호사스런 기분으로 샌드위치를 먹는다니. 진짜 이상해.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걱정 마요.
당신이 늘 나하고 가까웠던 건 아니에요. 항상 안정적인 일상을 시작하면 나와 멀어지곤 한 걸요. 연애를 시작하면 번번이 나 따위는 세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는 것 같았고요. 하지만 지금처럼 조급해하지 않아도, 또 나랑 질리도록 붙어 있어야 할 때가 올 거예요. 분명이요. 왜냐면 당신은 아직 너무 젊어서, 아니 어려서, 어떻게든 위태하고 혼란스러운 날들이 찾아올 테니까요. 그것도 앞으로 여러 번이요. 그러면 나를 붙들고 어디든 나아가요. 질서 없는 질서의 정수리를 뚫고서!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