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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Feb 13. 2016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다

아니다. 나를 을로 만드는 건, 사랑 그 자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사람들이 곧잘 하는 얘기다. 너무 많이 사용돼서 이제는 마치 당연한 사실처럼 들릴 정도다. 나는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이라도 미간을 덜 찡그리려고 애쓴다. 굳게 닫히는 입은 어쩔 도리가 없대도.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 말을 바탕으로 연애에서 지지 않는 법이라는 둥,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밀당(밀고 당기는) 기술이라는 둥 이상한 것을 잘도 만들어낸다. 잠자코 듣고 있자면 사랑이 아니라 격투나 게임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기고 지는 게 대체 왜 중요한 거지? 아니 애초부터 이기거나 지거나 할 수 있는 건가?   


안다. 나 혼자만 마음 졸이고 기다리는 것 같으면 누구라도 서운하겠지. 메시지 보냈는데 5분, 10분, 30분이 지나도록 답이 없으면 내 생각을 안 하나 싶고, 먼저 애정 표현을 안 하면 나를 안 좋아하나 싶고. 애초에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사랑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한 건 나다.




뭐, 사랑해줄 것 같은 사람을 골라 연애를 시작하는 취향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건 짐작도 가지 않으니까. 내 세상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세상 어딘가에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려 노력하고 무정하게만 대하려 하는 사람이 있으리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분명 각자의 사정과 성향이 있어 마음을 주고받는 패턴이 조금씩 다르게 이뤄지는 것이리라. 그건 서로 조율하거나 합의, 혹은 (슬픈 경우지만) 포기할 일이지 이겨서 쟁취할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어린 시절엔 꽤 격렬하게 격투를 했다. 사랑이 아니라 거의 격투였다. 더 많이 사랑받고 싶었고, 그 마음이 정당하다고 믿었다. 함께 있기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하는 일이나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바꾸는 것을 애정의 척도로 삼았다.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내는 약속들의 사소함은 또 얼마나 대단했는지!


늘, 더 많이 알아주고 더 많이 안아주길 바라던 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을, 그러지 못한 순간을 미워하고 마음 아파했다. 죄악시하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 나의 행복을, 우리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나? 좋은 순간을 깨부수고,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마음을 잘라내고, 헤어짐을 앞당겼을 뿐이다.    




내 마음을 정말 괴롭게 한 아이가 있었다. 나는 늘 사랑을 갈구하는 입장이었다. 모두들 말하는 을의 입장이었던 거다. 매일 연락을 기다렸다. 천성이 다정한 아이였음에도 더 많은 표현을 요구했다. 오랫동안 만난 연인이 있었던 그 아이에게 보이는 옛 애인의 흔적이 너무 싫었다. 아주 많이 싸웠고, 대부분의 싸움은 내가 촉발한 것이었는데도 그 아이는 헤어지자 말하지 않았다. 결국엔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어쩌면 그 시간이 나보다 그 아이에게 더 아팠을 것이란 걸. 사람을 잊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내게 기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좋아했으니까. 우린 서로를 사랑했으니까.


그 이유가 아니라도, 우린 언젠가 헤어졌을 거다. 하지만 그동안 조금이라도 더 충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답답하고 속상하면서도 네 곁에 있고 싶었던 건 내 마음 때문이었다. 그 마음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줬다면 그때의 기억이 지금보단 덜 아팠을 텐데.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을이다.


상대에게 서운해서, 미안해서,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의지되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서…. 나를 을로 만드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을로 만드는 건, 사랑 그 자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어마어마한 감정을 갑으로 두고, 매일을 헤쳐 나가는 두 사람의 을이다. 영원히 갑이 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좋다. 사는 마지막 날까지 을이고 싶다.



사는 마지막까지 '을'이기를 택한

사랑의 용기를 위하여,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http://durl.me/cxea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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