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피어난 이 순간을 만끽해요, 우리
첫번째 편지.
3월 초, 쌀쌀한 날씨 탓에 봄이 오긴 오는 거냐고 툴툴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놓은 봄옷은 옷장 속에 갇혀있고, 겨울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죠. 하지만 4월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봄기운이 물씬 풍기네요.
길을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곳곳에 봄꽃이 터져있었습니다. 아직 메마른 기운을 채 벗지 못한 나무 가지에도 꽃들은 화사하게 피네요. 신기하고 놀라워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거야 당연한 일이고, 꽃피는 계절을 처음 맞이해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봄이 올 때마다 매번 탄성을 뱉는 건 아마 저뿐이 아니겠죠?
사실 스무살 무렵에는 이 아름다움을 잘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어리다고 꽃이 어여쁜 걸 모르진 않았지만, 그 때는 내 마음을 앗아갈 것들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연애를 하게 되면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 외에는 모두 희미하게만 보였고, 사소한 일로 뒤틀릴까 불안했던 인간관계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죠. 하고 싶은 일은 왜 그리 많았는지 정신 차려보면 밖이 컴컴했고, 열심히 해도 별 성과가 없는 내 자신이 미워지면 마음이 캄캄해서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정신은 없습니다. 하하. 그래도 이제는 시간의 흐름을 만끽하기 위해 마음 한 구석을 비워둘 줄 알게 되었어요. 꽃은 내년에 또 피는데 뭐,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년에 피는 꽃은 지금 내 눈 앞의 그 꽃이 아니겠지요.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청춘’이란 곡의 가사입니다. 어느 늦은 퇴근길에 이 노래를 듣다가 길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원래 잘 우는 사람이긴 합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래서 세상이 변하고 내가 변한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이 살갗에 와 닿으면 왜 그리 낯설게 느껴질까요. 공기 중에 섞인 봄내음을 무심결에 들여마시는 순간, 작년 이맘때의 나와는 또 한계절만큼 달라진 나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꽃처럼 피어나는 이 순간들을 만끽하는 일, 오직 그것 뿐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