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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Oct 01. 2019

처음은 영원하니까

영원한 내 첫 고양이 요미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었다. 혼자 사는 원룸은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하고, 바닥엔 어제 그제 지난 주에 벗어둔 옷가지들이 뒹굴고 있었으니까. 내 끼니도 못 챙겨 먹는데 누구 밥을 챙겨? 내가 기를 동물이 아니라 나를 길러줄 동물이 (그런 게 존재한다면) 필요할 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열살쯤 어렸던, 요미와 쿠키를 만나기 전의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9월 중순.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초입이다. 요미와 나는 이맘때 만났다. 그날 뭘 입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겉에 얇은 가을 코트를 걸치고 있던 건 확실하다. 왜냐면 나에게 안겨있던 요미가 거기에 오줌을 쌌거든… 택시 안에서….


우리는 성균관대 중앙 도서관 앞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성균관대 학생이 아니었고, 심지어 대학생도 아니었다. 당시 대학생 타깃의 주간지 [대학내일]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는데, 해당 잡지는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가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주요 학교의 배포대를 돌며 배포가 잘 되어 있는지 체크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날은 성균관대 담당이라 학교를 다 돌고 중앙 도서관 앞에 도착했는데 배포대 근처에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아니 [대학내일]의 인기가 이만큼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었고, 배포대 앞에 손바닥만한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학생들은 귀엽다고 시끌시끌하고 몇몇이 가까이 가서 쓰다듬기도 했지만 아무도 데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양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천하태평한 놈일세. 무튼간 사람들도 고양이도 가야지 배포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모두 떠나고 나와 고양이만 남았다.


구조한지 며칠 후, 밥그릇보다 작은 요미


어… 음… 이를 어쩌지. 귀여워하던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다 가버리다니. 내가 다 황망한 기분이 들었지만 고양이는 자꾸 졸았다. 사진을 다 찍고도 고양이를 두고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나보다 고양이가 먼저 와 있었는데, 발길을 돌리려니 왜 버려두고 가는 기분이 드는 거지. 하는 수 없이 사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저… 고양이 한마리를 줏었는데요. 동물병원 좀 들렀다 가도 될까요?” 바쁜 선배는 시큰둥하게 다녀오라고, 너무 늦지 않게 빨리 다녀오라고 했다. 그제서야 고양이를 안아올렸다. 두 손을 모으면 그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아주 작았다. 그리고 너무… 너무 가벼웠다. 고양이는 졸던 눈을 떠 나를 올려다봤다. 반가운 눈빛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거든.


동물병원에 가서야 알았다. 고양이는 태어난지 3개월 정도 됐고, 3개월치고는 너무 작고 말랐다는 걸. 아까 꾸벅꾸벅 졸던 건 “아사 직전이어서 그랬던 거에요.” 검사를 받다보니 뒷발에 약간 물린 상처가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어미가 버리기 위해 물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큰 질병은 없었다. 나는 병원에서 고양이를 맡아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에야 당연히 안된다는 걸 알지만(심지어 병원측에 좀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땐 그런 상식도 없었다. 그럼 회사에 가야하니 퇴근할 때까지만 고양이가 여기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아이들을 두고 가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나도 그럴 사람이라고 내 앞에서 얘기하는 건가!? 지금은 그 의사분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지만 그땐 그걸 모르고 기분만 나빴다. 어정쩡하게 고양이를 안고 동물병원을 나서며 선배에게 다시 전화했다. “저… 선배, 진짜 죄송한데…”


그리고 십년 후, 뚱냥-스


그 날부터 그 고양이의 이름은 요미가 되었다는 이야기. 요미는 지금 내 침대에서 내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20분.) 언제 먹었는지 모를 나이는 11살이 되었고, 몸무게는 10키로에 육박한다. 뚱냥이지만 잘생겼으니까 괜찮아. 고양이도 무서워하고 사람도 무서워하고 천둥번개는 물론 창 밖에 바람만 세게 불어도 숨어버리는 쫄보 할아버지. 6년을 같이 살았던 내 동생에게도 3년을 같이 살고 있는 내 남편에게도 하악질을 하지만 나에게는 무한 사랑꾼으로 자란, 영원한 내 첫 고양이 요미는 그렇게 나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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