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과 야망 그 자체, '배구' '선수' 김연경을 떠나보내며
여자배구의 열렬한 팬이다. 많은 여자배구 팬이 그러하듯, 내가 이 스포츠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김연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배구를 모르는 사람도 김연경은 모두 알 듯이, 나도 그를 통해 배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내향성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배구 직관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나는 배구를 좋아하고 선수와 경기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지만 직관을 선뜻 가지 않는다. 처음 직관을 갔을 때, 엄청난 응원열기, 앉았다 일어났다 춤을 추는 듯한 구호, 선수별 응원가, 환호 소리... 이런 것들이 즐겁기는 하지만 그만큼 위압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따라 하기 벅찼고, 조용히 집에서 우리 집 소파에 누워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배구를 좋아하지만, 직관은 버거운 것이다. 많은 인파 속에서 눈에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안쓰럽다고 했을 것이다. 나의 내향성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이런 내가 기를 쓰고 직관을 가려고 노력했다. 김연경의 은퇴 발표 이후였다. 내가 그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이제 정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럴 시간이 없어, 나는 경기를 보러 가야 해!!"라고 나를 채찍질하며 직관 티켓을 구하고, 경기장에 갔다. 운이 좋게 챔피언 결정전 1차전 티켓도 구하여 좋은 자리에서 그의 마지막 시즌까지 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나 혼자서) 그를 이제 보내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김연경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 첫 번째는 단연 압도적인 실력이겠다. 운동선수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그 은퇴시즌에서 그는 여전히 반짝 빛났다. 그리고 그 위치에 있으면서도 엄청난 투지를 보여주고 후배들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다그치고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상대편에게 김연경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벽으로, 그러니까 넘사벽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김연경을 통해 배구에 입덕하게 되면서 김연경 외에도 좋아하는 선수와 팀이 생겼다. 김수지와 박정아, 그리고 이 선수들이 뛰고 있는 팀을 응원하게 되었다. 김연경은 그러니까...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디폴트로 먹고 들어가는, 최애 중에 디폴트인 사람인 것이고, 김연경도 좋고 김수지도 좋고 박정아를 함께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김연경과 상대방으로 만나는 팀이 순위가 낮은, 페퍼저축은행(박정아 소속)이라면 안타까운 마음에 페퍼를 더 응원하기는 했다. 그러면서 "연경언니(언니 아님)... 살살해.... 그 정도 했으면 됐잖아...."
나는 여러모로 김연경이라는 사람을 흠모하는데, 위에 설명한 그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서나 당당한 태도, 자신감, 큰 목소리, 이런 것들이 내가 도무지 갖고 있지 않는 면모를 갖추고 있음에서 비롯된 동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언젠가 그가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방통대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으며 스쳐가는 말이지만 문화체육부 장관이라는 야망을 밝혔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의 가능성은 '배구' '선수'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확장 중인 것이다. 재단을 설립하고 유소년 육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을 하는 사람.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을 진행하면서 보이는 당당함과 자신감. 선수로서의 야망은 (올림픽 메달은 못 이루었지만...) 모두 이루었을 것이다.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고, 충분한 찬사를 받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닌 것이다.
본인의 영향력과 능력을 알고, 그것을 적절하고 진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 많은 이들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겸양, 자신을 낮추는 자세뿐 아니라 본인의 성과와 능력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야망을 감추지 않는 사람. 나는 일찍이 이렇게 당당한 여성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의 압도적인 실력만큼이나 이러한 면모를 무척 사랑한다. 닮고 싶다. 언니(아님)라고 부르게 된다. 멋있으면 언니지, 암, 그렇고 말고.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였던 도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을 마치고 했던 인터뷰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의 여전한 눈물버튼이다. 울컥하는 마음을 붙잡고 한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후회는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최선을 다 한 사람만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말의 울림이 있었다.
통합우승으로 마친 마지막 시즌에 이어 KYK 인비테이셔널을 마지막으로 그의 선수인생은 그야말로 최최최종 버전으로 저장되었다. 선수 한 사람이 은퇴하는 것뿐인데 배구계는 지금 배구계 전체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김연경 시대의 끝. 그러나 '배구' '선수'로서의 한 챕터가 끝이 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너무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무언지 알 수 없는 그다음 행보는 분명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멋질 것이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응원할 것이다. 그를 통해 배운 것이 너무나 많다. 나이는 내가 더 많아도 그를 존경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김연경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