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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질 없음의 축복

by Swimmer in the Forest

나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한다. 유년부 (어린이) 주일학교 반주와, 시니어 교구 예배에서 반주를 한다. 두 예배 모두 화려한 실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기본적인 코드 반주를 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다. 딱히 연습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교회 반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7살 무렵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혹은 6학년) 정도에 배우는 것을 그만 두었으니 6년 남짓 배우지 않았나 싶다. 그 어린 시절에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나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놀랍다.


엄마는 내가 교회 반주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시켰다. 나는 내가 봐도 영~피아노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유일하게 재밌다고 느낀 것은 코드를 배우고 내 마음대로 반주를 만들 때 였다. 빡빡한 악보를 그대로 오른손 왼손 반주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웠다. 그리고 아직도 잘 하지 못한다. 중학생이 되어 대예배 반주를 하게 되었을 때, 찬송가 반주가 너무 어려웠고, 성가곡을 연주해야하는 메인 피아노 반주자가 되었을 때는 울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어려운 반주는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모교회를 처음으로 떠나 여의도에 있는 대형교회에 다닌 약 6년의 시간을 제외하고,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반주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내가 피아노라는 악기를 너무 많이 사랑하지 않고, 소질 역시 별로 없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피아노를 배우는 시절, 거의 매일 피아노를 꼬박꼬박 다니면서도 스스로 내가 잘 한다고 느꼈던 적은 없다. 물론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성실했고, 엄마가 다니라고 하니까 다녔고(사춘기 시절에는 반항도 쪼끔 했지만..), 피아노를 반주해야 할 일이 계속 생겨서 계속했다. 피아노에 소질이 있고 내가 이 악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조금 괴로웠을 수는 있겠다 싶다. 그러나 나는 그저 숙제같이 느껴졌다.


나는 이 긴 시간을 악기에 대해, 음악에 대해 애타는 마음이 없고, 실력도 뛰어나지 않고, 재능 또한 없었기에 유지할 수 있었다. 너무 애타는 마음이라면 나의 재능없음이 불행으로 다가왔을테지만, 나는 그저 내 수준에 만족하고, 제발 어디서 어려운 반주 안 시키기만을 초조하게 바라기만 할 뿐이다. 일주일에 두 번,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이 즐거울 따름이다. 그리고 매번 생각한다. 6년 배운 것을 2n년을 써먹네...효율 좋다...나의 피아노 실력...!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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