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소설 3권은 모두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양천구립도서관에서 밀리의 서재 3개월 이용권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신청 일정을 메모해 두고 곧바로 신청했고, 선정되었다. 밀리의 서재 전자책은 디바이스가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보기엔 화면이 너무 작음) 오디오북만 주로 이용 중이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할 때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반납해야 할 때면, 그냥 며칠 늦게 반납할까 하는 유혹이 있는데 그래도 꼬박꼬박 제때 반납하길 잘했다. 선정조건에 연체이력이 없는 것이 있었다.
종이책으로 읽을 때는 어쩐지 손이 덜 가는 해외문학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참 편하다. 읽기 어려운 고유명사 단어 같은 것을 읽어주니 거기에 따르는 수고로움이 덜게 된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대사를 성우가 직접 연기까지 해주니 몰입도 빠르게 된다.
최근에 읽은 책(읽었다고 해도 되겠지)은 스물두 번째 레인(카롤리네 발), 너무 늦은 시간,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이렇게 세 권이다. 스물두 번째 레인은 특히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도 시간이 꽤 소요되었으므로 책으로 읽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이것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등장인물의 (가상) 캐스팅을 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읽는다. 해외문학의 경우 해외 배우를 캐스팅해야겠으나 잘 알지 못하므로 현지화(한국)하여 국내 배우로 뽑는다. 초반에 캐스팅했던 배우가 소설 마무리 즈음엔 달라져있기도 한다. 한 역할에 여러 명을 캐스팅해 두고 비교해보기도 한다.
최근 읽은 스물두 번째 레인의 주인공은 박주현 배우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쇠소년단을 가끔 볼 때마다 출연진의 순수한 열정에 놀라곤 하는데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혔나 보다. 답답한 현실에서 유일한 탈출구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빅토르는... 박진영 배우가 좋겠다. 젊은 남자 배우 중에 가장 기대되는 배우다. 나는 사실 그를 알게 된 것이 유미의 세포들을 아주 뒤늦게 보게 된 이후였는데, 그가 아이돌 가수라는 것 역시 최근에 알게 되었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의 시선은 윤여정 배우다. 책 읽기 시작한 초반부터 나의 캐스팅은 변하지 않았다. '3월의 마치'(정한아 작가)에서 마치는 고두심 배우.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가녀장의 시대'는 사실 이슬아 작가 본인이 연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캐스팅을 하자면 공효진 배우와 김고은 배우.
배우 캐스팅을 마쳤다면, 이제 나는 감독이 된다. 내가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겨 담는다고 할 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읽는다. 소설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순 없을 테고, 어느 정도 생략된 이야기가 있을 테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친절하게 활자로 알려주는 주인공의 감정과 현장의 분위기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내레이션으로 넣을 것인가? 그건 너무 재미없겠지. 그렇지만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 이런 것들을 상상하며 읽는다. 주인공의 방은 어떻게 꾸밀지, 틸다가 들르는 수영장은 야외수영장인데 배경은 어떤 모양일지를 머릿속으로 만들어본다.
연기하는 배우를 떠올리고, 감독이 되어 연출을 하며 책을 읽었다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작가를 떠올린다. 이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와 배경이 궁금하고,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사전조사를 어떻게 했을지도 궁금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만나 인터뷰했을지, 많은 글을 미리 읽어 봤을지도 알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느꼈던 희열과 고통과 슬픔과 기쁨도 듣고 싶다. 사람들은 그래서 작가의 북토를 가는 것이겠지. 특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작품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를 읽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파독 간호사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글로 녹여냈을까. 파독 간호사라는 뭉쳐진 단어 안에 가려진 개인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작가의 필력은 어떻게 수련하는 것인가.
소설을 잘 읽고 나의 감상까지 잘 남겨놓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나의 글로 남기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그저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목록만 잘 간직해 두는 정도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당신만의 방법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