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간 여름성경학교에 다녀왔다. 1~3학년 유년부 캠프였고, 나는 유년부에서 어린이 예배 피아노 반주자이기도 하고, 3학년 담당이기도 하다.
매주 주일에 어린이들을 만나면 너무나 사랑스럽고, 말 안 듣는 아이도 기분 좋게 대하고 달랠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런데 2박 3일을 내내 붙어있으면서 케어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지. 나는 나도 모르게 괴물 같은 목소리를 내고 핏대를 세우고, '하지 마!' '안돼!' '줄 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게 된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해맑은 아이들 사진을 찬찬히 둘러보니, 역시 이 아이들이 나에게 정말 큰 기쁨이구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감사하는구나,라고 (뒤늦게) 깨닫게 된다.
나는 9명의 여자 아이들을 케어하고 인솔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그 안에서 아이들의 미묘한 감정변화와 관계에 대해 지켜볼 수 있었다. 어른인 나는 대놓고 개입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그런 것. 평소에 친하지 않고 얼굴만 알더라도 하루만 붙어있다 보면 세상 친한 친구사이가 된다. 유년부 최고 고인물인 A와 B는 단짝처럼 붙어 다니지만, A는 항상 새로운 친구와도 사귀고 싶고 놀고 싶어 한다. 그에 비해 B는 A와 더 붙어있고 싶은 것이다. A는 2개월 전부터 교회에 새로 나오는, 춤도 잘 추고 키도 큰 C와 친해지고 싶다. C는 얼굴이 예쁘고 선생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D와 더욱 친해지고 싶다. 또 다른 유년부 고인물인 E는 D와 친했으나, 점점 멀어지는 중이다. D는 너무 순수하고 착한 아이지만, "너는 그것도 모르냐?" 같은 말투를 너무 해맑게 내뱉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씩 소외되고 있다. F는 욕심이 많고 힘이 세지만 어쩐지 인기는 많다. 덩치가 작은 D를 힘으로 제압하려 해서 내가 발견할 때마다 제지하곤 한다. 여자아이들 그룹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A는 2박 3일 내내 곁에서 지켜보니 놀랍도록 총명하고 언어 수준이 뛰어나다.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이 있고 흥분하는 동생들이 있어도 같이 화내거나 열 내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하면 다른 아이들이 받아들이게 된다. D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만 소외되거나 혼자 있는 상황이 오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 세계에서 이것은 정말 놀라운 점이다.
같은 방에서 둘째 날 밤을 보내는 아이들은 잠에 들 생각이 없다. 그런데 아이들이 과밀하기도 했고 에어컨이 고장 난 방은 너무 더웠다. 거실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고 있으니까 문을 열어놓고 있자고 제안하니, 리더인 A는 본인들만의 공간이 오픈되는 것이 싫은지 거절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아이들에게 물으니 다들 A 의견에 따라 그냥 닫자고 한다. 그중에 C는 너무 덥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 방 시원한데 그리로 올래? 했더니 망설이며 그건 싫다고 한다. 친구들과 있고 싶고, 소외되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는 그냥 문을 닫는 게 좋겠다며 아이들에게 다시 동조한다. (결국엔 문을 열어두었고 에어컨도 정상 가동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그전에 선생님 방과 바꾸자고 제안했는데 그들이 구축한 어떤 자리 시스템...? 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여자 아이들은 모여 있으면 놀랍도록 다양한 놀이를 하는데 그중 가장 재밌었던 것은 이야기 놀이(?)라면서 자기들끼리 역할을 부여하고 그 역할대로 목소리를 내는... 일종의 역할극이었다. 주로 어떤 가족의 첫째 둘째 셋째, 부모, 할머니 이런 역할이 있다. 마지막날 밤에 이 역할놀이를 또 한 모양인데 D가 나에게 오더니, 자기는 이제 누워서 자고 싶고 저 역할 놀이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C에게 제안한 것처럼, 선생님 방으로 올래?라고 했더니 선뜻 네! 하고 본인 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내가 있는 방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이랑 떨어져도 괜찮아?라고 물어도 고개를 끄덕이고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간다.
버스를 타고 성경학교에 가는 길과 오는 길에는 짝꿍이 바뀌어 있다. 그 과정에서 혼자 앉게 된 아이는 못내 신경이 쓰인다. 시무룩하고 의기소침한 것이 내 눈에 보인다.
나도 그랬다. 소풍을 가거나 수학여행을 갈 때, 항상 내 옆에 친구가 있을지를 고민하는 아이였다.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없으면 그 순간이 너무 괴로웠다. 누가 나를 볼까 봐 숨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앉는 아이를 볼 때면 마음이 쓰인다.
어른이 되고 나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나를 일부러 소외시키고 억지로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면 혼자가 되는 상황이 크게 불편하거나 괴롭지 않다. 혼자서 밥 먹는 것? 좋아! 옆자리에 앉는 사람 없는 것? 오히려 좋아!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좋아한다. 누구에 맞출 필요 없이, 눈치 볼 필요 없이,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고독하긴 해도, 외롭지는 않다. 고독한 시간은 사유할 수 있다. 나는 그래서 혼자인 나 자신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기껏해야 10살 밖에 안된 아이들에게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지만 이 사이를 내가 개입해서 교통정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그저 지켜본다. 힘으로 누르거나 통제하려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지켜보고 혹 마음이 상한 아이 곁에서 말을 더 거는 정도로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려고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랄 것이다. 소외되는 상황에 의연해지고, 오히려 좋아! 를 외칠 수 있으려면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시간 동안 너무 상처받지는 않기를. 사실 다 별 거 아니란 걸 어서 깨닫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