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작' 필사 완료를 기념하며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에 필사를 떠올렸다. 언제나 생각은 해봤지만 한 번도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은 없는 필사. 무턱대고 아무 책이나 필사할 수는 없으므로 적당한 책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와중에 몇 년 동안 책꽂이에 꽂혀있던 이 책을 발견했는데 마침 꼭지별로 한 페이지 정도되는 분량의 짧은 글이 365개가 있어서 제격이었다.
오랫동안 글 쓰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던 나는 언젠가는 전업은 아니더라도 나를 설명하는 타이틀에 어디 조그맣게라도 작가를 넣고 싶은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꿈이 있었다. 이리저리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글을 쓰기는커녕, 책 한쪽 읽는 것도 너무나 먼 일이 된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런 꿈이 있어서 퍽퍽한 세상을 나름 잘 버텨왔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쾌하고 진지한 조언을 하는 내용이어서 더 마음이 갔나 보다. 내용도 좋군. 그래 그럼 이 책을 받아 적자.
큰일이 없는 거의 모든 날 필사를 했으나 빼먹는 날도 있었고, 아침 일찍부터 외출이 있다면 하지 않았고, 한동안 잊고 있다가 몇 주만에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주말에는 자주 건너 띄었다. 내 글씨가 맘에 드는 날도 있고, 다음 날 다시 펼쳐 봤을 때 못 알아볼 정도로 대강 흘려 쓴 날도 있었다. 이 책을 받아 적는 이 순간만은 집중해서 쓰고 싶었는데 그래도 순식간에 흐트러진 집중력으로 한 바닥 쓰는데 핸드폰을 열어보고 다시 닫고를 반복해야 하기도 했다.
맞춤법을 공부하는 계기도 되었고, 무엇보다 띄어쓰기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불안하고 답답한 시기, 손에 펜을 쥐고 글씨를 쓰며 내 마음을 다스렸다. 받아 적는 것 자체뿐 아니라 담긴 메시지가 마음에 박히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은 나도 내 글을 썼다. 자연의 이름을 알게 되어 바뀐 나의 태도에 대해 글을 썼고, 실천하는 글쓰기에 대해 깊게 공감하며 또 글을 썼다.
한 권의 책을 모두 받아 적는 동안 총 3개의 노트를 썼다. 마지막 세 번째 노트의 끝이 보일 때 즈음 이 책의 필사가 끝이 났다. 필사를 하는 동안 어느 펜이 더 편한지, 어떻게 자세를 취해야 조금 더 편한지 이런 고민도 해보았다.
필사는 이제 위태위태한 하루를 지켜주는 소중한 일상이다. 마치 수영할 때 마음 같다. 수영할 때는 몸에 집중한다. 선생님이 조금 전에 했던 설명을 떠올리며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 회사 일로 마음이 너무 힘들고 울고 싶을 때 유일하게 괜찮았던 시간이 수영을 할 때였다. 몸의 기능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시간. 필사를 하면서도 책을 읽고 받아 적는 일만 할 수 있으니 좋았다. 글자를 틀리거나 띄어쓰기를 틀리면 다시 고치고, 한 바닥을 다 받아 적고 나면 글씨가 얼마나 못생겼는지도 한 번 슉 봤다.
이 책을 모두 필사했지만, 이 책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으므로 나는 필사를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어떤 책을 이어서 필사해야 하나 책장을 아무리 노려봐도 못 찾았다가, 책장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심지어 여러 권 있는 그 책을 펼치고 새로 필사하기 시작했다. 성경의 시편. 오늘은 다윗의 '보호의 기도'를 읽고 받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