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내기에서 흰머리 가리기로 바뀌며 느끼는 현타
나는 오렌지빛 헤어 컬러가 잘 어울린다. 까무잡잡하고 누리딩딩한 피부빛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웜톤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오렌지빛의 밝기만 조금씩 조절을 하긴 했지만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오렌지빛 컬러를 유지했다.
이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염색을 꾸준히 해야 했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색을 맞추기 위해 미용실에 가야 했다. 머리가 조금 밝은 편이라 검은 머리가 올라오면 얼굴은 급격하게 못생겨지고, 칙칙해 보였다. 뿌리염색을 하고 나면 급격하게 얼굴은 밝아지고 발랄해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현타를 맞게 되는데, 오른쪽 앞머리의 흰머리 때문이다. 머리를 쓸어 올릴 때 보이는 오른쪽 앞머리에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머리를 염색하고 나면 2주가 지나면서 눈에 띄는 흰머리 때문에 거울을 보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2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가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니었지만, 2주에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 미용실에 가는 것은 무리였다.
마침 그 무렵 나는 서서히 외모에 관심을 잃고 있었으므로, 집에서 염색을 해보는 도전을 하게 된다. 균일하고 아름답게 물들인 염색보다는, 그저 거울 볼 때마다 눈에 띄는 흰머리만 어떻게 처리하는 정도의 염색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나는 머리와 색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으므로 예전 밝은 빛깔보다는 어두운 톤으로 선택해서 염색을 했다. 칙칙함을 얻었고, 거울 앞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미용실에 가는 횟수는 많이 줄었다. 염색을 안 하기도 했고, 어떠한 머리를 예쁘게 꾸미고 치장할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2개월 전 즘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갔는데 거의 1년 만에 간 거였다. 미용실 원장님이 미용실 바꾼 건 줄 알고 속상해했는데, 머리 보니까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기른 거 맞네, 라며 어쩐지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머리 상태는 엉망이었고, 색깔은 얼룩덜룩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꾸준히 집에서 염색을 한다. 색을 바꾸면 전체적으로 염색약을 발라야 해서 처음 택했던 컬러를 어쩔 수 없이 계속 유지 중이다. 혼자서 슥슥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끔은 뒤쪽 머리를 염색해야 할 때는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엄마는 그때마다 "내가 딸 흰머리 염색을 해주는 날이 오네..."라며 씁쓸해한다. 그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되도록 혼자 하려고 한다.
염색을 할 때마다 멀게만 느껴졌던 나의 나이가 확 와닿는다. 내가 나이는 많지만, 사실은(?) 난 어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지만 흰머리를 볼 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염색을 할 때 매번 처절하게 내 나이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철 없이 굴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내가 대학생일 때,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시절에 내 나이의 사람을 볼 때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지를 상기하려고 한다. 왜냐면 내가 그 나이니까. 철없이 굴지 말고, 어른답게 굴라고 스스로 채찍질하곤 한다.
매일매일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갑작스럽고 당황스럽다. 내가 기성세대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아직 어렵다. 언제쯤 자연스러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