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순환을 믿는 사람
배구 직관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먼지를 마셨는지 목에 이물감이 갑자기 느껴져 헛기침이 나왔다. 간지러운 느낌을 뱉어내려고 우에에엑 일부러 뱉어내려고 했다. 마스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이들에게 괜히 불편함을 줄 수 있었겠다 싶었다. 다행히 금방 진정되어 멍때리고 있는데 버스 옆자리에서 갑자기 손이 훅 오더니 그 손안에 작은 것이 들어있었다.
(나) 에....?
(옆 사람) 목캔디예요^^
(나) (못 알아들음) 네??
(옆사람) 목캔디예요~
(나) (알아들음) 어머,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버스에 오는 내내 그 작은 다정함이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괜히 한번 고개를 돌려 인사를 하고, 내릴 때도 인사를 하고 그랬다. 버스를 내릴 때 생각난 것이, 아 내 가방에 초콜릿이 있는데 그걸 그분에게 줄 걸, 이라는 것. 왜 버스 내리고 생각 나는지...증말...다정함이란 마음만 있어서는 안 되는 거구나, 그것이 전달되려면 순발력도 필요해!
생각해 보면 나는 얼굴도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친절과 다정함을 선물로 받았다.
지금은 거의 안(못) 먹지만 한창 술을 많이 마시던 시기에 만취하며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멀쩡하게 집에 잘 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영락없는 고주망태 만취녀였을 것이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정신 놓고 잠에 빠졌는데 누군가가 나를 쿡쿡 찔러 깨웠다. 그는 나에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며 도착지를 놓쳐버릴까 봐 물어본다고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곧 내가 내려야 하는 환승역이었다.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후다닥 내렸다. 그는 아마 취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나 보다. 나를 쿡쿡 찔러 깨우기 전에 몇 분간 고민도 했을 테다. 그래도 나를 깨웠고, 그 덕분에 나는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바로 그날, 여전히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걷는 그 짧은 몇 분 동안에 누군가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경계심이 들어 '뭐야... 무서워...' 싶었는데 그가 나를 힐끗 보더니 편의점으로 들어가기에 조금 안심하고 나는 내 갈길을 가는데 편의점에서 나온 그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초콜릿우유를 건넸다.
(나) 에....?
그는 갈지자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걱정스러워 후다닥 편의점으로 달려가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달달한 초코우유를 사서 나에게 건넨 것이다. 놀랍고 민망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서 또 잘 먹었다. 내가 다 먹는 것까지 보고 조심히 가라며 그는 먼저 떠났다.
하루 저녁에 나에게 베풀어준 그 두 번의 친절과 다정함이 황송해서 그 와중에 이날 밤을 잊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조잘거리기도 했다.
계절마다 화분에 예쁜 꽃을 심어두는 이들의 마음도 다정하다. 꽃과 식물을 보고 행복하게 웃고 사진을 찍는 이들을 상상하며 꽃을 심었을까? 나중에 언젠가 그들을 만나게 되면, 이 꽃과 식물 덕분에 산책이 매번 즐겁노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냥 스쳐 지나가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 오히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를 위해 말을 걸고, 초코우유를 사고, 가방에서 목캔디를 꺼내어 건네는 다정함.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다정한 적이 있던가. 친절한 마음으로 대한 적이 있던가.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순간이 오면 친절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이웃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면 그 다정함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 순환되겠지.
내가 갖지 못한다면 남도 가질 수 없고, 내가 대우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굴욕 시켜야 하고,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일종의 놀이 같은 것이 될 세상에서 다정함을 지키고 그것을 베푸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길을 찾는 어르신에게 시간을 내어 설명하고, 키오스크 앞에서 버벅이고 있는 누군가를 차분히 기다려주거나 돕는 것.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누군가 조금 편해진다면 그것을 선택하며 살고 싶다.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작은 용기나 관심으로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질 테다. 인간이 하는 많은 것이 AI와 기계로 대체될 것이 분명하지만, 다정함과 친절한 행동은 인간만의 몫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