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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ry는 PM May 21. 2024

24년 5월 21일

1. 날씨가 부쩍 더워졌고 정신없는 한 주가 또 시작 됐다. 주말에는 본가에 내려갔다 왔다. 150여 페이지의 기획서 확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먹는 시간 잠시 뒹굴거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그걸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기 싫다고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몸을 배배 꼬게 되더라도 한 페이지라도 더 보는 게 이득임을 알고 있었다. 결국 주말 이틀 동안 90여 페이지를 확인했고, 나머지는 월요일 오전 중에 확인을 마쳤다. 최종이라 굳게 믿었던 기획서는 역시나 '진짜' 최종이 되기 위해 담금질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라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2. 눈여겨보던 키보드를 결국 주문했다. Lofree Flow... 가까운 사람이 정말 필요해서 사는 거냐고 물었지만 나는 당당하게 필요한 게 아니라 갖고 싶은 거라고 설명했다. 키보드를 이미 13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내가 키보드를 필요로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래도 가지고 싶어서 주문했다. 소비에서 오는 만족감은 반감기가 아주 짧은 인스턴트 같은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말이지... 갖고싶어!


3. 주말에 본가에서 꽃게찜을 먹었다. 예전에 지나가는 말로 꽃게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그걸 기억하고 계셨다. 거의 매년 철이 되면 한 번쯤은 먹는 듯. 가족들한테 더 잘해야지...


4. 본가 내려가는 길에 기흥 휴게소에 들러서 소시지를 하나 사 먹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맛있는 소시지는 아니지만 휴게소 갬성을 느낄 수 있어서 하나씩 사 먹고는 한다. 소떡소떡보다 소시지가 더 좋아. 근데 가격이 점점 사악해지고 있다. 커피랑 소시지만 사 먹었는데도 만 원이었다. 쯧.


5. 약 한 달쯤 전부터 퇴근길에 완행 지하철을 타고 있다. 급행을 타면 10여분 일찍 내릴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과 서서 부대껴 가야 하고, 완행을 타면 앉아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보통 나는 완행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 무조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진정한 의미의 '쉼'을 모른다고 하는데, 나도 어쩌면 그런 꼴 아닐까. 그래도 이렇게 밖에서 에너지를 몽땅 쏟아내면 집에서는 기절하듯 쓰러져 잘 수 있다.


책은 여전히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있다. 이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 물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언제나 이야기가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그치만 노동의 신성함, 어떤 상황에 처하든 노력하여 문제를 타개하려는 열정, 주체적으로 사고하면 결과물이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교훈(?)이 기저에 깔려있다. 마치 자수성가한 친척 어른이 어떻게든 무지몽매한 자식들과 조카들을 계몽하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알케미스트>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 떠올랐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기 위해 간 곳에서 만난 영국인이 웬 책을 잔뜩 싸들고 온 것을 보고 주인공이 물었다.

“Well, then, why do we need all these books?”
“So that we can understand those few lines,” the Englishman answered.

'책에 쓰인 그 몇 줄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에 쓰여있는 것 딱 몇 줄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이든 의미가 있는 거지. 아무리 개떡 같은 자기 계발서라도 맘에 와닿는 부분이 한 줄이라도 있을테니. 그래도 '나 잘났소'하는 척쟁이들의 자기 계발서는 읽고 싶지 않다. 세이노 아저씨의 잔소리가 그나마 들어 줄만 한 건, 이 사람은 적어도 고귀한 척, 스스로 대단한 척은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아가 비대한 건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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