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집
우연히 발견한 북중길 5-17번지를 내 맘대로 저장해 놓고 가끔 들여다본다. 폐가에도 봄은 깊어 사람의 손길을 기억하는 사철나무와 수선화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샛노랗게 만개한 때 한번 더 가보리라.
북중길 저쪽에도 제법 번듯한 폐가가 한 채 있다. 마당 한편에 키 큰 오동나무가 있어 나는 오동나무집이라 부른다. 오동나무는 초여름이면 연보라 꽃을 피운다. 땀 흘리며 걷다가 골목 그늘로 접어들었을 때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사람이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보니 바로 옆집 몇 채가 헐려 주차장이 되어 있다. 주차장을 만들며 무릎 높이만큼 땅을 돋우는 바람에 오동나무집은 대문이 막혀버렸다. 집이 빈 게 먼저인지 앞을 막은 게 먼저인지 알 순 없지만 이 기이한 광경이 낯설지 않다. 구도심을 걷다 보면 발치와 옆구리가 개발로 떨어져 나간 뒤 길 잃은 집으로 남은 경우가 종종 있다. 대문은 막고 쪽문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채 버티는 집들도.
오동나무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 곁에 제법 큰 매화나무까지 꽃을 피웠다. 마당을 내려다보며 어느 여름밤을 상상한다. 오동나무집은 수제맥주집이 되어 있다. (최근 다녀온 청진동 구옥개조 맥주집에 완전 꽂혔다) 조롱조롱 알전구 아래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마당 여기저기 테이블마다 대화와 웃음이 오간다. 오동나무는 보랏빛 향기를 매달고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