听观
잘 듣고 잘 보다(관찰하다). 이건 보이차 찻잔에 새겨진 말이다.
아침의 기운은 조용하며 느긋하다. 이건 차 한잔이 주는 여유다. 보이차를 꺼내는 순간 풍겨오는 쌉싸름하고 오랜 세월을 견딘 듯한 향은 전신을 이완시켜 준다. 윈난의 어느 산자락에 자란 나무의 나뭇잎이, 나의 오늘을 열어준다.
쪼르륵-
차 내리는 소리는 감미롭다.
호로록-
차 마시는 소리는 명상이다.
펄럭이며 한 장 두 장씩 넘기는 책장에도 보이차 향이 묻는다. 살짝 찻방울이 튈 때도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연홍갈색의 투명한 찻물을 바라보면 영롱하니 공하다. 순간 생각은 사라지고 의식만이 자리 잡는다.
나는 물었다.
“수련자의 상태를 어떻게 해야 잘 관찰하고 지도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답했다.
“나의 관찰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나를 먼저 잘-- 관찰하고 그다음 판단 없이 수련자를 보는 겁니다.”
그렇다. 나를 포함하여 잘 보고 잘 관찰하는 것, 판단 없이.
금요일 수련자들에게 한 말을 살펴본다. 내뱉어진 이 말은 동시에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 자신의 호흡을 지켜보십시오. 명치인지 가슴인지 머문 위치가 어디인지. 들어온 생각이 있다면 그냥 보고 다시 놓아보세요. 그리고 다시 호흡에 의식을 가져와 보십시오. / 한 주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마스떼.”
茶杯里写着听观二字,晨光里步入缓慢宁静,这是一杯茶带来的悠静。
倒一杯普洱,苦后甘甜里蕴藏着岁月的缓流,茶香舒展。细想这一片叶,源自云南某山间的古树,它慢慢展开枝叶,落入人间,今日蔓延于此,实在有缘。
倒茶- 声如风;
喝茶- 声如禅。
翻开书本,片片纸张吸收茶香,偶尔不小心也会把茶水溅在纸面上,其实也无妨。浅褐色的透明茶滴犹如空,所有念想也随之消散。
我问:“指导瑜伽的时候,怎么才能好好观察修炼者?”
老师回复:“认可自己不足,理解自己也有可能看错。先仔细--观察自己,然后再用心观察修炼者。”
放下判断之心,先观己。
周五瑜伽课结束时,坐在垫子上跟修炼者和自己说的几句话,记录于此。
“观察自己的呼吸,观察呼吸停留的位置。观察念想,再放手,试着把意识放回呼吸上。愿大家度过平安的周末,辛苦了。Nama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