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을 읽자, 나라의 카레가 떠올랐다

by 강화

갑자기 그날이 떠올랐다. 아니, 갑자기가 아닌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을 읽자 떠오른 것이다. 인간의 대뇌란 참 요물이다.


* 2019년 설날쯤


그곳은 나라 공원 (일본의 나라현에 위치한 공원)으로 가는 상가거리였다. 기념품 샵이 줄줄이 서있었고 먹거리도 띄염띄염 박혀있었다. (뭐 맛집이라고는 하지만 정녕 맛집이기는 한지 의심부터 들었지만)

아침부터 졸졸 굶어 뱃가죽이 허리뼈에 붙을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대충 먹기는 왜인지 싫었다. 뭔가 간만에 여행 떠난 나를 위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상가거리의 한 복판에 무언가 아주 낡은 카레집이 눈에 띄었다. 딱 봐도 낡다 못해 음침한 정도였지만 왜인지 이런 곳이야 말로 맛집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밖에서 쇼윈도에 배치해둔 카레 모형을 찬찬히 보다 결국엔 문을 삐걱 열어보았다.

흠... 뭐랄까?? 진짜 어두웠던 기억이다. 이런 곳에서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스치긴 했지만 이왕 들어온 거 착석하고 메뉴판의 시그니처 카레를 짚어 주문시켰다. 아직까지도 그 사장님의 얼굴은 기억나진 않는다. (사장님 얼굴 보려고 들어간 건 아니니까) 다만 나이 드신 분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일렁이는 정도라고 할까?

한 참을 조용히 말없이 석상이 되어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살집이 있는 15~20살 정도 되는 손자?/손녀와 할머니가 마주 앉아 카레 먹는 모습이 나의 시각 110도 언저리에 걸려들어 온 것이다. 얼핏 보아 지극정성으로 손녀/손자를 돌보는 할머니의 자상함에 뭔가 뭉클하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눈동자를 돌리지 않은 체 최대한의 마음속 도덕을 지키며 그들의 행동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는 찰나 손자/손녀의 입에서 "우엑"하는 소리가 나더니 카레가 반 정도 남은 접시에 반을 더 채우는 것이다 (말 그대로 오바이트한 거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돌려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과 이 난처한 상황을 모른척하고 넘어가는 도덕심과 곧 나오는 나의 음식에 대한 예의와 맛집이라고 확정 지은 내 선택에 대한 존중을. 이때 마침 시그니처 카레가 사장님 손에 들려 나왔다. 다행이지 싶었다. 우유부단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준 셈이니까.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카레는 맛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산해진미와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건 다들 알 테고.

그러나 먹는 내내 옆 테이블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동들이 나의 시각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이다. (주동적이 아닌 피동적인 상황이었다. 인간의 눈이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시각의 각도를 좁힐 수도 없고) 어두컴컴한 가게 안 나의 숟가락은 다행히도 입을 잘도 찾아서 카레를 떠먹여 주었다. 호기심이란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남게 한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호기심과 도덕사이를 줄타기 하며 한 입 두 입 그리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잘도 먹었다.

"아리가도 고자이마스"라는 말과 함께 식당 문을 나오면서까지도 난 그 테이블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이 진실일 것 같아서. 두려운 것에 대해 직면할 용기는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걸음 내딛고 식당을 떠나려는 찰나, 위에서 구르륵- 꼬오르륵- 울렁울렁 거리는 것이다. 배에서 전쟁 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탄알과 폭약은 모두 장전되었고 뇌 대령의 발사하라는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단계라고 할까?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행이지 싶었다. 뇌가 달려있기 망정이지.

그렇게 나의 여행 고질병-변비는 한 방에 나아버렸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생각에 잠겼다. (인간은 왜 늘 화장실에 가면 영감과 생각에 사로잡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 손자/손녀는 오바이트한 게 맞는 걸까? 둘 사이는 할머니와 손자/손녀 사이인 것일까? 사장님은 그 상황을 보았을까? 카레가 문제였을까 아님 나의 착각이 문제였을까? 내 변비를 고쳐준 건 대체 누구일까?라는 쓰잘 떼기 없는 생각들을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보내버렸다. (식사 중은 아니길 바라며 그냥 여행 중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적은 것일 뿐. 오해는 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