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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산 Jul 28. 2020

그 많던 혼혈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현민과 같은 스타를 보면 문뜩 옛 생각이 나고는 한다. 나의 고향은 평택 미군기지 동네. 지금은 전보다 더욱 슬럼화 되어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지만 당시는 달랐다.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노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어른들은 돗자리 펴고 허허롭게 저녁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다른 동네들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태권도장을 다녀오면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흑인, 백인들과 인사를 해야 했다는 것 정도. 그리고 한 학년 당 다섯 명 정도는 흑인의 얼굴, 백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 당시 나에게는 일상 과도 같았으니 그다지 특별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었다. 술에 취한 이들도 어린이는 건드리지 않을 정도의 앞가림은 할 수 있었고, 종종 같이 놀게 된 혼혈 아이들은 피부색, 머리 모양만 다를 뿐 조성모를 좋아하고 떡볶이를 즐겨 먹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동네가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폭력을 곁에 두고 있는 데다, 학력이 높다 할 수 없었던 대부분의 미군들이 보일 한 행동들은 우리 곁에 부지기수였으니까. 이후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할 예정이다)


우리 체육관이 있던 미군부대 정문. 밤마다 술에 취한 미군들이 비틀거렸다.

미군부대 동네는 미군부대에 가까이 살수록 가난할 가능성이 높았다. 미군부대 주변은 [내국인 출입 가능 업소]라고 일부러 붙여놓지 않으면 갈 엄두도 안 날 정도로 미군 판이었다. 미군을 상대로 장사하기에는 바 만 한 게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술집이 많았다. 아무리 호화로운 집을 지어 놓아도 안전하지 않아서야 살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이 이치다. 설상가상 쪽방촌이 길게 형성되어있던 당시로서는 정문 앞이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일 수밖에. 


아버지를 따라 가끔씩 찾아갔던 목욕탕. 지금도 건재하다

정문 앞 동네, 편모슬하 초등학교 2학년 지미가 생각난다. 나와는 동급생. 피부도 하얀색이었지만 머리는 그보다 더 밝은 백색에 가까웠다. 푸른 눈.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줬던가, 아니면 아이가 태생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엄마가 지어줬겠지. 성은 엄마를 따라 ‘배’씨였다. 별명은 자연스럽게 베지밀이 되었다. 동네도 조금 떨어져 있었고, 우리 학교를 같이 다니지도 않아서 자주는 아니고, 가끔 같이 노는 정도였다. 한 가지 내게 남아있는 인상이라고 한다면 베지밀은 또래 친구들보다 힘이 셌다는 것 정도. 누군가 자기를 놀리는 뉘앙스만 풍겨도 실력을 행사하니, 자연스럽게 주변 친구들의 놀림도 줄어들었던 것 같다. 힘이 세고, 자주 실력을 행사하는 아이 치고는 무리를 형성하지 못했고, 고독한 늑대 느낌으로 주변에 서성였다. 드문드문 만나서 실랑이를 벌이거나 같이 뛰어놀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지미 말고도 우리 윗 학년, 아래 학년에 혼혈 친구들이 많았는데, 내가 중학생이 되어 팽성을 떠날 무렵 마침내 다른 아이들마저 보이지 않게 됐다. 혼혈이 아닌 친구들은 부모님을 통해 종종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유독 혼혈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 이후로도 들을 수 없었다.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 건지, 갔다면 어디로 간 건지.


비정상회담이 인기를 끌고, 우리말을 하는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다. 일전에도 윤미래 씨나 인순이 씨 같은 혼혈인 스타들이 있었으나 지금처럼 다른 것이 개성이 되는 시대는 아니었다. 여러모로 지금까지 없던 시대가 찾아오기는 한 모양이다.


서울에 올라와 일을 시작하고 일 년, 놀기를 좋아하는 직장 선배로부터 이태원 이야기를 들었다. “김 카피, 이태원 가봤어? 이태원은 천국이야. 가면 한국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 껄?” 결국 놀기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였지만 또 다르게도 들렸다. 이태원에는 외국인들도 자기 문화를 고수하면서 함께 어울린다고. 다른 종교는 배척하는 한국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모스크도 떡 하니 있다고. 낯선 음식을 실제 그 나라 사람들이 만들어준다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딘가 서글퍼졌던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지역 한정, 유명인 한정이지만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한국에서 편안히 지낼 곳이 생겨났다는데. 같이 떡볶이 먹으며 숨바꼭질 하던 우리 옛 친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지내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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