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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산 Aug 12. 2020

내가 만났던 미군부대 풍경

미군은 어디든, 주둔지를 미국으로 만든다 02




미군부대에 들어가려면 우선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패스(미군부대 용역으로 일하는 업체의 중간관리자는 통행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통행의 기준은 잘 모름)를 지닌 사람과 함께 있으면 된다. 아침 일을 가려고 게이트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순서대로 들여보내준다. 이게 시간이 꽤 걸리는데, 아침에는 덕분에 일을 덜 할 수 있어서 좋고, 저녁에는 퇴근이 늦어서 답답하다. 재미있는 건 우리 통행을 관리하는 사람도 한국사람이라는 건데, 다들 옷차림은 묘하게 미국스럽다. 제 몸보다 큰 사이즈의 체크남방, 청바지 등을 입고 미군부대 군무원 자켓을 입고 있다. 한국 사람은 맞는데 어딘가 미국 소세지같은 느끼함이 풍겨오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미군부대 물건들을 쉽게 접했었는데 그중 백미는 피자, 햄버거, 치토스 등 음식이었다. 그때는 얼마나 짜고 느끼했던지, 한 입 먹고 남 다 줘버리기도 했었는데. 그런 음식들을 먹으면 사람도 겉모습으로 느끼해 지는 걸까. 아무튼 그렇게 게이트를 지났다. 이제 본격적인 미군부대 진입.

뉴스에 나온 평택 미군기지. 멀리서 찍은거라 올려도 되나?

첫 인상은 하늘이 뻥 뚫려 있어서 시원하다 였다. 평택의 특성상 언덕이나 산이 없기도 하거니와 한국 어딜가나 쉽게 볼 수 있는 고층건물이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는데, 하늘 아래는 수명이 오래된 듯, 허리둘레가 두터운 나무들이 길 따라 쭉 서 있어서 더 보기 좋았다. 길에는 미국 전통의(?) 노란 스쿨버스가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것 말고 차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통행이 금지된 대학 캠퍼스 도로 한복판 같다랄까. 도로는 당연히 미국 표지판을 쓰고, 달리는 차량도 미국 번호표를 달고 있다. 담장만 넘으면 분명 내가 평생을 살아 온 동네임에 틀림 없는데도 그 갭차이가 엄청났다. 우리 동네는 어깨 부딪쳐가면서 바글바글 살고 있으니까. 잘 믿기지 않을 수밖에 (나중에 안 사실인데, 미군부대 주소지는 캘리포니아로 되어있다. 그래서 이곳에 우편을 보내려고 하면 캘리포니아로 적어서 보내야만 하고, 실제로도 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온다고 한다)  적갈색 지붕, 높이 올려진 막사나 불시검문용 관문들을 보는데, 거기엔 군용 특유의 불편함이 있어서 괜히 몸가짐을 조심하게 되었다.


이 도로를 따라 정문을 나가면 우리 동네가 나온다. 정문을 나간 뒤부터 길은 갑자기 넓어지는데 대충 6차선 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길을 우리 동네 사람들은 '활주로'라고 불렀다. 활주로는 우리 동네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이다. 지금이야 활주로를 따라 평택 시내까지 나가는 넓은 길이 생겼지만 나 어릴 땐 활주로 끝에 객사를 돌아 굽이굽이 나가는 좁은 길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넓디 넓은 동맥 끝에 갑자기 미세혈관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다.


미군부대는 이런 물탱크가 많다. 어릴 땐 원자력 시설이라 생각했다.

머리가 조금 크고 알게된 즉, 활주로는 정말로 활주로였다. 우리 동네의 기원이 되는 미군부대는(일제강점기 일본 부대가 있던 곳이지만) 미군의 역사로만 따지자면 유사시 중국이나 북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군기지. 일제 공격을 감행해야 할 때 동시에 여러대의 전투기를 띄울 수 있을 임시 활주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미군은 전략적 이유로 부대 정문으로부터 길게 뻗어 나온 활주로를 만든 것이고, 우리는 그곳을 터전삼아 살아왔던 것이다. 


엄마 아빠 일하던 5일장도 있고, 누구도 들어가는 걸 본 적 없는 모텔도 있고, 국민학교 1학년 짝사랑하던 여자애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국집, 머리 감을 때 맨날 코에 물 들어가게 해서 가기 싫었던 이발소, 형들이랑 소풍 다니던 근린공원, 잔디밭에서 뛰어놀던 교회, 중학교 친구 집, 동네 하나뿐인 철물점, 우리 가족이 갈비 외식을 할 때 항상 찾아갔던 식당. 활주로 부근에 별에 별게 다 있는데. 그러고보면 새삼 분단, 전쟁, 미국 뭐 이런 상황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깊숙히 자리잡아 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씁쓸한 지점.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미군부대 이야기를 더 해보자. 한국 부대도 사단 단위가 되면 그렇지만, 부대가 오로지 전투의 목적만을 가지고 운용되지는 않는다. 우리도 px있고, 노래방 있고, 피시방 이라고 하기는 약간 모자란 싸지방, 전화부스 등이 있지 않았나. 미군부대도 똑같다(?). 대신에 스케일이 약간 크다고 할까. 어디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군의관이 있는 병원도 있을 것이고, 공군부대니까 전투기, 전투헬기 격납고도 있겠지. 그리고 길 가에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야구장(펜스가 높이 쳐 있는),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각종 유락시설들(스타벅스 험프리점에서는 한국 쿠폰을 사용할 수 없다. 왜냐? 여긴 미국이니까). 그 뿐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내가 투입된 현장은 미군 동물병원 신축공사였다.

지금은 없어진 용산 미군기지. 없어졌으니까 써도 되겠지?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했다. 미군부대에 왜 동물병원이 필요하지? 그런데 내 눈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는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대기실,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수술실. 개 그림이 그려진 대기실, 개 그림이 그려진 수술실을 못알아 볼 리 없었다. 병원장은 심지어 장교. 아, 미군 이거 완전 대박이네. 그렇게 생각했다. '미군은 주둔하는 곳이 어디든 그곳을 미국으로 만든다.' 이 말을 예전에 어떤 일본 만화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내부 실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미군부대 앞에 산다고 짐짓 아는척 아 당연하지. 하고 생각했었다. 정정해야 했다. 미군부대는 부대 주둔지가 아니라 미국인 이주시설이었다.



3편에서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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