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이 바짝 날 선 목소리로 레시버의 부하들에게 주의를 줬다. 지난번 평창동에서 맥없이 당하고 그대로 끝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복수의 시간은 다시 정웅에게 주어졌다. 프랑스에서 용병으로 활동할 때도 작전 중에 당한 상대에게는 늘 곱으로 갚아주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던 꼬레아 용병이 바로 정웅이었다. 지난번 어떻게 당한 줄도 모르고 당했던 것이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한 상대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싶었다.
‘결국은 자경단에 불과한 테러리스트다.’
정웅은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주위를 살폈다. 정웅의 용병회사 말고도 기본적인 한국의 경찰기동대와 군부대까지 동원되어 집은 동네로 들어오는 어귀부터 상당히 삼엄한 검문검색과 철통 같은 경비로 쥐 한 마리 빠져나갈 틈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웅은 그런 상식적인 경계로 지난번에 신출귀몰하게 눈앞에서 사라진 상대들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직 법무부장관이자 현직 총리의 집을 저격하겠다는 공표를 한 것은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빈당은 단 한 번도 그들의 꼬리를 잡힌 적이 없었다. 워낙 장비들이 발달된 터라 멀찍이 높이가 조금 있는 집들에는 방송 기자들까지 포진하고 그 집을 주목하고 있는 판이라 흡사 잠실야구장에 모든 야간 라이트를 켜고 그라운드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을 대놓고 납치해보라는 미션이라고 벌이는 마법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오래된 집의 넓은 지하 공간에 모여 있는 당사자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목숨을 노린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그쵸?”
항상 거들먹거리며 점잖은 모습으로 방송에서 비쳤던 총리의 모습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구차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그가 물었다.
“그러니까 좀 기다리시라니까...”
남자의 곁에 가만히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던 마츠모토가 총리에게 힐난하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난리를 치는 건.... 나중에 제 정치적 이미지에도...”
“칙쇼! 오마에난카가 이마 와레와레노 메에레에니 시타가우 쿠세니 다이니혼테에코쿠노 슈쇼오니데모 낫타요오니 아에테 세에지카노 후루마이데모 스루토 유우노카?[젠장! 너 따위가 지금 우리 명령이나 따르는 주제에, 대일본 제국의 총리라도 된 것마냥 감히 정치인 행세라도 하겠다는 겐가?]”
나지막했지만 녹슨 쇠가 바닥을 긁는 것 같은 망토 속 남자의 목소리에 총리가 움찔하며 거북이처럼 목이 쑥 들어가는 느낌으로 몸을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것은...”
“카타욧테 시즈카니 마테로. 쿄오노 코노 세키와 키미오 에사니 시테 오오키나 츠리오 시요오토 스루 세키다카라나. 와시와 안따난가오 마모루 타메니 키타노데와 나쿠 소레라오 츠카마에니 키타 카류우도나노다.[닥치고 조용히 기다려라. 오늘 이 자리는 너를 미끼로 하여 큰 낚시를 하려는 자리이니 말이다. 나는 너따위를 지키러 온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잡으러 온 사냥꾼이란 말이다.]”
총리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초조해진 빨간 얼굴로 뒤의 자리에 가서 소파에 가만히 앉았다. 아까부터 망토의 남자는 앞에 신줏단지처럼 가져다 놓은 황금빛 보자기로 잘 싼 상자를 앞에 놓고 정좌한 채로 손을 모은 채 염불을 외우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순간이었다. 그의 눈이 망토 안에서 빠알간 색으로 번쩍하고 빛났다.
“키타노까이 에모노타치요. 흐흐흐. [왔구나, 사냥감들이여. 흐흐흐]”
남자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마츠모토는 마치 미리 준비된 계획이 있는 사람처럼 바로 레시버를 누르며 속삭이듯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용병팀만이 계획한 대로 피를 뿌리고 작전을 개시한다. 바로!”
마츠모토의 이야기를 들은 정웅이 바로 그들에게 받아두었던 작은 통을 열어 앞에 있던 기분 나쁘게 생긴 인형에 뿌렸다. 그것이 무엇의 피인지는 모르지만 전 세계의 전장을 누볐던 정웅은 본능적으로 그 피가 결코 좋은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과 생명체의 피임에는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용병도 군인이었고, 그는 시킨 대로 집의 사방에 여덟 군데에 지시받아 지키고 있던 부하들과 동시에 동일한 물체에 동일한 행동을 지시하고 기다렸다.
“아래? [응?]”
갑자기 상자의 보자기를 찬찬히 풀던 망토 속의 남자가 고개를 홱 돌리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난다로오, 코노 키운와? [뭐지? 이 기운들은?]”
“그쪽도 급했나 보군. 놈의 술법이 맞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부채를 꼬옥 쥔 회장이 마지막으로 열린 공간에서 걸어 나왔다. 그가 나오면서 벽은 다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다시 벽으로 돌아가버렸다.
앞서 왔던 우람이와 고운이, 그리고 승환과 마지막으로 회장까지 네 명이 집의 오른쪽 서재 쪽에서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같은 시각.
집의 지붕 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올라오며 각시탈과 할미탈이 각각 스님탈의 손을 붙잡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듯이 올라서고 있었다.
“이 집의 가장 아래, 지하로 가면 돼.”
할미탈의 눈동자가 전부 하얗게 변한 상태로 허공에 대고 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면 다시 그쪽으로 간다. 손을 잡아.”
스님탈이 다시 그 둘의 손을 잡고 건물 아래로 몸을 휙 하고 날렸다. 그들이 떨어져야 할 마당에는 전혀 그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그들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다시 검은 공간이 열리며 손을 잡고 저벅거리며 공간을 걸어가고 있는데, 양반탈과 선비탈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어떻게 여길...?”
각시탈이 놀라며 그들을 경계했다.
“이렇게까지 무모할 줄은 몰랐는데, 결국은 스님탈의 능력이 이래서 필요했던 건가?”
스님탈이 탐탁지 않은 듯 혀를 차며 그 앞을 나섰다.
“어차피 내가 활빈당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니 자네가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게 공간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를 찾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야.”
“아니. 공간을 타고 넘는 자네의 능력이라도 이번엔 경우가 달라. 놈이 일본에서 직접 이곳을 다시 왔다. 100년이 넘는 세월, 패하고 돌아가 감히 이 땅을 밟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그 놈이...”
“그놈인지 이놈인지는 몰라도.”
“함정이란 말이다.”
“우리 셋의 능력에 활빈당의 동지들이 있는 한, 우리가 패할 일은 없다.”
각시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놈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왔다고 들었다. 그걸 확인하지 못하는 이상 함부로 그들에게 활빈당의 존재들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물건?”
“아마도 부여의 그 물건을 가지고 온 것이라고 보인다.”
선비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무슨 대단한 물건인지는 모르겠으나...”
할미탈이 선비탈의 말을 막으며 나서려는데 스님탈이 신중한 목소리로 할미탈을 제지했다.
“그 물건이 어떻게? 그건 함부로 강탈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거니와...”
“아니, 그들은 충분히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 물건에 손을 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밀 수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물건이 놈의 손에 들어갔다면 이대로 놈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 위험한 행동이란 말이다.”
“우리 길을 막는다면 우리의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각시탈이 한 발을 뒤로 빼며 공격의 자세를 잡으며 선비탈과 양반탈을 보며 나지막이 마지막 말을 읊조리듯 뱉었다.
“길을 열어라. 마지막 경고다.”
양반탈과 선비탈이 서로 잠시 쳐다본 뒤 앞을 제지하려는데 스님탈이 각시탈과 할미탈의 손을 잡고 갑자기 지반이 꺼지는 듯 밑으로 쑥 빠져들어가며 외쳤다.
“만약 그 물건이 강탈당한 것이라면 그 물건도 함께 찾아와야 한다. 그것은 결코 그런 놈들의 손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지 않은가 말야?”
선비탈이 바로 손을 뻗어 그들을 잡으려 들었지만 이미 검은 공간은 닫히고 셋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하에 있는 공간 위로 스님탈과 함께 손을 잡고 있던 각시탈과 할미탈이 올라왔다. 아까까지 소파에 앉아 있던 총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고 방석에 정좌하고 앉아 있던 망토의 남자도 없어졌는지 방석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 앞에 놓여 있던 상자와 보자기 대신 묘하게 생긴 황금빛이 나는 물체에서 연기가 스멀거리며 나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함정이다. 얼른 이 곳을 빠져나가!’
각시탈들에게 양반탈의 전음이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각시탈이 움찔하며 움직이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읍!”
마치 안개처럼 황금빛 나는 물체에서 흘러나오던 연기는 덩어리가 되면서 흡사 용의 모습이 되어 지하 공간을 가득 연기로 가득 채워나갔다.
“이 연기를...마시면...”
스님 탈이 뭐라고 말하려는 사이에 이미 각시탈과 할미탈은 마치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스님탈이 다시 검은 공간을 통해 빠져나가려는데 연기 속에서 붉은 눈빛으로 보이는 이글거리는 빛이 환하게 스님탈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