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3부 –23

열둘. ‘백제’의 이름으로 - 상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014


열둘. ‘백제’의 이름으로



“돈 리(Don Lee)?”


정웅이 자신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검은 거대한 그림자의 정체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같은 부대에서 같은 한국인 입양아라는 이유로 전장을 헤쳐나가 왔던 전우의 얼굴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돈(Don)!”


정웅이 다가서며 큰 덩치의 양쪽 팔에 특유의 문신이 새겨진 남자에게 물었다.


“길을 열어라. 시간이 없다.”


돈이라고 불린 거대한 몸집의 남자가 정웅의 인사를 뿌리치듯 말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투 격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델타포스(Delta Force)* 부대에서 교관까지 지냈던 돈이었다. 어둠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성기 때의 몸집이나 움직임으로 봐도 전혀 뒤처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돈(Don), 잠깐....욱!”


미국의 대학에서 쿼터백으로 프로팀에서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몸이 부딪히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정웅역시 민첩한 몸놀림으로 충격을 곁으로 흘리며 몸을 바닥으로 굴리긴 했지만, 제대로 부딪혔다면 여지없이 몇 미터쯤은 날아가버릴 만한 가공할만한 힘이 느껴졌다.


“돈(Don)!”


정웅이 반사적으로 총을 막 꺼내려는데 총을 든 정웅의 손을 천 같은 것이 말려들 듯 감싸버렸다.


“에헤에! 그건 아니지. 대한민국에서 총기 사용은 불법이라구.”


언제 나타났는지 초랭이가 상모의 끈으로 정웅의 손과 총을 묶어 봉쇄했다.


“어이 덩치! 들어갈 수 있겠어?”


천천히 기계를 들여다보며 걸어오던 우현이 외쳤다.


“결계다. 이중, 아니 삼중.”


돈이라고 불렸던 남자가 묵직한 저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지금 막 3D 랜더링 작업을 마쳤어. 선생님이 왜 나만 밖에 남겨두셨는지 알겠네. 이거 결계도 결계지만 안의 공간에 팔괘진으로 다시 공간을 꼭꼭 가르고 가두고 난리가 아니네. 복잡하게 만들어놨네. 중앙에 엄청난 영적 에너지가 느껴지긴 하는데 그것 때문인지 오히려 안에 갇힌 탈의 영혼들은 전혀 잡히질 않아. 초랭이는 느껴져?”


정웅을 누에고치처럼 감싸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초랭이가 고개를 무겁게 가로저었다.


꽝---


결계에 두 주먹을 마주 대하며 에너지 파장을 만들며 돈의 양쪽 팔에 새겨진 문신이 야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이봐! 덩치! 아무리 그래도 힘으로 그걸 깨는 건....”


꽝----


찌지직---


첫 번째 막처럼 쌓여있던 빛나던 부적 덩어리로 엉킨 벽 같은 것이 금이 가면서 한 꺼풀 무너져 내렸다.


“되는 거냐? 힘으로? 정말 어이가 없네. 단순한 문신이 아니라고는 대강 짐작했었지만, 정말 무식한 힘이네. 회광이 사람으로 환생했다고 해도 믿겠다. 야!”


계속해서 우현이 다시 시뮬레이션된 화면을 돌리며 에너지의 흐름을 살폈다. 두 번째 결계에 주먹을 합치려는 순간, 화면을 리와인드하는 것처럼 떨어져 나갔던 빛의 부적들이 덕지덕지 다시 엉기며 첫 번째 막을 회복하고 결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복구되는 듯하더니 안쪽에서 검은 에너지가 나오며 쑥 하고 그림자가 튀어나오듯 물컹거리는 것이 돈과 초랭이 그리고 우현을 잡았다.


“뭐야, 이건?”


“웁! 이거 뭐야! 떨어지질 않잖아.”


순식간에 물컹거리는 그림자 같은 기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검은 기운은 초랭이와 돈, 그리고 우현 세 사람을 집어삼키듯 꿀꺽 삼켜버렸다.


그 모습을 묶인 채 보고 있던 정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해진 공간을 보며 도저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편, 방상씨의 연옥 수련장에서 매일같이 수련하던 세찬이는 수련을 거듭하면서 조금은 눈에 보이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대련에서도 그렇고 움직임이 완벽하게 상황을 제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쉬자.”


“아니야. 더 할 수 있어. 헉헉!”


“쉬는 것도 훈련이다. 100일째다. 잠도 자지 않고 수련에 매달려온 게...”


“후우후우”


숨을 몰아쉬며 땀을 비 오듯 쏟는 세찬이에게 방상씨가 작은 환약을 내밀었다.


“이게 마지막 선약(仙藥)이다. 얼른 입에 털어 넣고 운기조식을 해보거라.”


지쳐서 쓰러질 것 같던 세찬이가 환약을 받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를 단전에 모으며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다.


“후우우우우”


“운기 조식하면서 듣거라.”


눈을 감고 있는 세찬이가 명상에 들어간 듯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세찬이를 둘러싸고 있던 오라가 훨씬 더 맑아지고 단단해진 것이 확연하게 외연에 드러났다.


“지금 다른 탈의 영혼들이 신물에 잡혀 버렸다. 그 신물은 수백 년이 지나도록 발동되지 않았던 것인데,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중에서 절대 그것을 손에 넣어서는 안 될 놈이 그것을 발동시켜 탈의 영혼들을 가두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것을 부리는 존재도 존재지만, 그 신물을 다시 잠재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들이 하나로 모여야 하는데, 각시탈과 할미탈은 강제로 물아일체에서 분리되어 갇혀버렸고, 나머지 영혼들과 네 친구들까지 모두 갇혀버렸다.”


세찬이의 눈썹이 꿈틀 하고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네가 지금 그 정도 상황에 평정심을 잃는다면 100일간의 수련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내가 지금 100일 채운 너에게 이 설명을 해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네 수련의 성과가 빨랐다. 이제야 말하는 것이지만, 너는 성취가 없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네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계속해서 수련의 난이도를 높여왔다. 지금 너의 수련 정도라면 현세에서 나를 소환하는데 최소한 한 식경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


“후우우우”


호흡을 내뱉는 세찬이의 입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흘려보내는, 방상씨에게 배운 그대로의 호흡 방식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몸이 훨씬 가벼워졌고 머리가 맑아졌다.


“정확히는 어느 순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왜 계속 대련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지 그리고 동작이 느려지는지 그렇게 진보가 없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어. 하지만, 그게 어떤 것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 점에 대해서는 더 고민하지 않았었어.”


세찬이가 털털하게 대답했다.


“그래. 연옥 수련장의 가장 큰 특징은 감각할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 등이 없어져버린다는 거지. 지옥을 가기 전의 영혼들에게 그런 개념들이 남아 있게 되면 여러 가지로 곤란하기 때문이거든. 그런 점에서 너에게는 최상의 수련장을 제공해준 셈이지.”


“그런데, 지금 다들 위험한 거 아냐? 우리가 가봐야...”


“아니. 너를 지금까지 굳이 이 공간에 둔 건, 놈이 노리는 것이 탈의 영혼들만이 아니라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원래의 목적이 따로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바로 맞췄다. 놈은 그릇을 찾고 있던 중이었고,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이 한반도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게지.”


“방상이 네가 깨어난 것을 알고서도 직접 찾아왔다는 건, 너에게 필적할만한 수준의 경지라도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풋! 웃기는 소리. 나 방상씨에게 필적할만한 존재는 없다. 그것이 인간이든 요괴이든 신선이든...”


“그런데 그릇을 찾는다는 건 무슨 말이야?”


“놈을 담고 있던 그릇이 못쓰게 되어버린 지경인데 주술로 버티고 있었거든. 그런데 내가 깨어나면서 나를 담고 있는 너라는 그릇을 인지하고 침이 넘어가기 시작한 게지.”


“나?”


“맞다. 넌 나를 담을만한 그릇이라고 선택된 인간. 수천 년 만에 내 잠을 깨울만한 그릇이니 그놈이 탐을 낼만도 하지.”


“아까 그 놈이라는 게 도대체 누구지? 그리고 나를 그릇으로 삼는다는 건, 내가 친구들을 도우러 갈 수 없다는 뜻이야?”


“아니.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인간의 그릇은 동시에 두 개의 영혼을 담을 수는 없지. 나는 놈을 잘 알지만, 놈은 내 존재를 잘 몰라. 그저 전설을 통해서만 들었을 뿐이지. 놈이 활동했을 즈음에 나는 지옥과 천계에서 노느라 인간계의 혼란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거든.”


“그 말은, 바로 너와 내가 가서 친구들을 구해주고 그 나쁜 놈을 혼내주면 되는 거 아냐?”


“결론이 아주 간단하구나. 그러기 위한 100일이었고, 원래 내가 너를 힘들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3000일의 수련분을 따라와 버릴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너는 이제 첫번째1개 차크라(Chakra)*를 완전히 개방하면서 두 번째로 이어지는 문까지 열어둔 단계에 이르렀다.”


“차크라(Chakra)?”


신물(神物)에서부터,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연옥에서 수련했다는 3000일에 대한 100일 축약 수련에 처음 듣는 이상한 차크라라는 용어에 이르기까지 세찬이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흐흐흐흐...민나 하잇테키나사이. 코노 나카니 젠부 이레테 야스쿠니진자니 못테키테 렛토오노 지요오분토 시테 카이테아게루카라[다 들어오너라. 이 안에 모두 담아 야스쿠니로 가져다 열도의 자양분으로 써줄 테니까...]”


망토의 남자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눈앞에 있는 향로 속에서 나오는 존재들을 다시 팔괘의 비어있는 공간으로 지휘하듯 밀어 넣었다. 3D 영상처럼 8개의 팔괘 중에서 각시탈이 한 칸, 할미탈이 한 칸, 스님 탈이 한 칸, 선비 탈이 한 칸, 백정 탈이 한 칸, 부네탈이 한 칸, 초랭이탈이 한 칸, 양반이 따로 한 칸씩 채워졌다. 그 와중에 선비 탈이 갑자기 형상을 없앴다.


“야레 야레 분신주츠오 츠카우 야츠가 이루 소레니 칙쇼![이런 제길! 분신술을 쓰는 놈이 있다더니 젠장!]”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하는데 그가 쳐놓은 결계의 안쪽으로 묘하게 생긴 존재 4명이 어느 사이엔가 그를 가두듯 합장을 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연방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 검은 그림자로 가만히 얼굴을 드러낸 처음 보는 탈 모양의 존재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로구나. 인간도 아닌 놈이 감히 우리 땅에 발을 들여 우리 신물에 손을 대다니...”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022




주) 델타포스(Delta Force)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분류 체계에서 미 해군의 미합중국 해군 특수전 개발단(DEVGRU)과 미 공군의 제24 특수전술 대대와 함께 1등급(Tier 1)으로 분류되는 미합중국 최고의 특수부대이자 미합중국 육군의 최정예 특수부대이며 전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 중 하나이다. 미군 내, 그리고 여러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해서 DEVGRU와 제24 특수전술 대대보다 더 윗급인 특수부대로 평가를 받으며 합동 특수작전사령부의 지휘체계에 따라 작전을 수행해 제75레인저 연대, 미국 육군 특전단이나 네이비 씰이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거나 비밀스러운 민감한 임무들에 투입된다. 이런 임무 중에는 적국에 대한 군사 공작이나 암살이나 흑색선전, 적지에 민간인으로 위장해 들어가 군 첩보 수행, 대테러 작전 및 테러리스트에 대한 방해 및 예방 공작 등이 있다


차크라(산스크리트어: चक्रम्, Chakra)

산스크리트 용어로 원 또는 바퀴를 의미한다. 많은 철학 시스템과 종교적인 계율과 개인적인 규율을 지지하는 차크라 모델, 철학과 학문에 관한 폭넓은 문헌이 있다. 차크라에 관한 이론들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연결하는 시스템 때로는 나마루파라 불리는 것에 맞춘다. 에너지의 중심으로서 차크라의 철학적인 이론과 모델은 고대 인도에서 처음 성문화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