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3부 –마지막 이야기

열둘. ‘백제’의 이름으로 - 하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018


“이미 그들이 도착해서 공간을 옮길 테니 우리가 그리 급히 서두를 것도 없는 것이야.”


방상씨가 재미나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턱에 가져다 대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들이 누군데?”


“너 백제의 미마지(味摩之)*라고 들어본 적 있느냐?”


“미마지?”


세찬이가 전혀 처음 들어보는 개념을 언급하는 방상씨의 얼굴을 보며 되물었다.


“쯧쯧! 양반 녀석도 참! 역사 공부를 시키려면 이런 급한 내용부터 가르쳤어야지. 자기네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한 하늘 아래 살면서 통성명도 하지 않는다고 아예 가르치지도 않았던 게냐?”


“그게 무슨 말이야? 미마지(味摩之)라는 게 뭔데?”


“한반도를 지키라고 만들어낸 이 땅의 영혼들은 하회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지.”


“응? 하회탈 말고도 또 다른 땅의 영혼이 있다구?”


“백제의 땅에서 태어난 영혼들이 있지. 그들의 이름을 미마지라 한다.”


“백제에도 하회탈처럼 탈의 영혼이 있었다구?”


“암! 있구말구! 녀석들은 훨씬 더 거칠고, 훨씬 더 오래된 역사와 맥을 함께 하고 있지. 물론 하회탈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양반 녀석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게다. 그들이 가진 소명은 따로 있었거든.”


“소명?”


“그렇지. 그들은 그들의 땅과 그 영혼이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 소명을 가진 채 그 향로 안에 함께 봉인되어 있었거든.”


“그 향로를 아까 하회탈의 영혼을 가두기 위해 깨웠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렇다면...?”


“그렇지. 원래 그 안에서 잠들어있던 존재들이 일어난 거지. 그놈이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그 안에 담겨 단 한 번도 잠에서 일어나 본 적이 없는 존재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게야. 일본에 흘러들어 갔던 것은 그저 전설 정도라고 여겼던 게지. 이제부터 이 판은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그들이 해결할 것이야.”




“도,도오시테 코코오 다레다? [어, 어떻게 여길, 누구냐?]”


“하아! 이노무자슥 말하는 것 보소? 니가 지금 남의 귀중한 신물을 가져다가 몇 천년만에 깨워놓고 하는 말이 뭐시 어쩌고 어째?”


부리부리한 눈을 희번덕거리며 윗도리를 벗어젖힌 듯한 복장의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발을 쿵하고 굴렀다.


쿵--


빛나는 향로의 앞에서 팔괘의 정중앙에 서 있던 망토의 남자는 사방에서 나타난 존재들에 흠칫 놀라며 급한 손놀림과 함께 주문을 외우며 소매 안에 있던 부적을 사방으로 뿌렸다.


“세에류우, 큐우친, 리쿠고오, 스자쿠![청룡(靑龍), 구진(勾陳), 육합(六合), 주작(朱雀)!]”


날아간 부적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그의 주문과 함께 사방의 네 존재를 향해 각기 다른 형체로 바뀌며 망토의 남자를 호위하듯 막아섰다.


푸른 빛을 내는 비늘이 번뜩이는 괴물 같은 존재부터 붉은 기운이 감도는 새의 형상을 한 체격이 건장한 날개를 펼치는 존재까지 종이에서 점점 그 형상을 불리듯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가서던 네 명의 탈을 쓴 존재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사람과 연결되지 않은 그저 탈의 영혼들이야?”


“본래 사람이었던 이들이다. 처음 그 탈을 만들고 그 탈의 영혼과 일체화된 이들의 영혼이기에 더더욱 하회탈을 다루는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지.”


방상씨가 빙긋이 웃으며 세찬이를 보며 물었다.


“그들은 물 건너온 존재들과 아주 친하거든”




네 명의 탈을 쓴 사방의 존재에게 다가가 재빠르게 달려들던 무시무시한 존재들을 보며 망토의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기괴한 웃음을 냈다.


“도오시테 코코니 하이루 코토가 데키타노카, 오마에타치가 돈나 손자이나노카와 와카라나이가, 주우니신쇼오니 타이테키데키루 하즈가 나이자 나이카/[어떻게 여길 들어올 수 있었는지, 네놈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으나 십이신장(十二神將)을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큭큭큭.”


그러나 그의 득의만만한 미소는 하늘을 찢을 듯한 괴성과 함께 붉은 기운의 날개를 가진 주작의 날개가 상대의 초록색 손에 찢겨나가며 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하아! 어디서 천축의 것들을 흉내 내서 만든 식신(式神)따위로 우리를 막아? 금강! 역사! 아무래도 이 놈이 우리는 아주 만만한 존재로 여기나 보구나. 잡술을 쓰는 정도의 녀석이 감히 백제를 지키는 영혼들을 깨워?”

가루라

초록색의 묘한 새 모양의 얼굴을 가진 키가 훌쩍 큰 존재가 이미 부적으로 화해버린 종이를 손에서 불꽃을 일어 날려버리며 다른 쪽의 두 존재를 불렀다.



“그러면 그들은 현세에 아무런 함께 할 영혼을 다룰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거야?”


“물론이지. 그들은 원래부터 사람과 하나가 된 존재들이니까 말야. 게다가....”


“게다가?”


“그들은 이미 살아 있을 당시 제약 조항을 통해 백제를 지킨다는 소명 하나만을 위해서라면 천하무적의 힘을 부릴 수 있지.”


“제약 조항?


“인간에게 약속처럼 영혼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제약이라는 것을 둘 수 되지. 즉, 어떤 특정 조건을 제약으로 걸어 약정을 맺게 되면 그 조건하에서 영혼의 존재들은 결코 바닥이 없는 끝없는 능력을 뿜어낼 수 있게 되지.”


“끝없는?”


말하면서도 세찬이는 그 정도의 탈 영혼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푸른 비늘을 가진 청룡이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며 붙어 있던 머리가 하나도 없이 작은 체구에 다부진 몸을 보이던 탈의 존재가 무릎을 꿇을 듯 밀리는 듯했다.


“금강! 역사! 언제까지 노닥거릴 셈인 게냐?”

금강과 역사

이마에 잔뜩 주름이 잡힌 검은 수염이 턱에 잔뜩 뒤덮인 존재가 이미 상대를 끝내버린 듯 망토의 존재가 쳐놓은 결계마저 찢어버리며 손을 털고 말했다.


“후우우우웁!”


방금 전까지 무릎을 꿇을 듯 손이 접혀 밀릴 것 같은 작고 다부진 금강이라 불린 남자가 조금씩 몸을 일으키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일어서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이 마치 풍선에 바람을 넣듯 점점 거대해져 이제는 그의 팔을 양쪽으로 잡고 푸른 기운을 뿜던 청룡의 수염이 날아갈 정도의 강한 기운이 뿜어나며 미간을 찌푸리듯 힘을 쓰는 탈의 얼굴로 양팔의 근육으로 마치 손뼉을 치듯 청룡을 압착시켜버렸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부적이 푸른 연기를 내며 사그라져버렸다. 반대쪽에서 ‘끄악’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금관 같은 것을 끼고 검은 턱수염이 가득한 역사라고 불린 존재가 거대한 검붉은 피부를 드러내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망토의 남자가 급하게 불러냈던 십이신장 중 대표적인 네 명의 존재들은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놀라고 있는 망토의 남자에게 어느 사이에 다가섰는지 앞서 금강과 역사를 부리듯 소리친 검은 턱수염의 존재가 커다란 농구공을 잡은 농구선수처럼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제 그 잡술을 거둘 때가 되었구나. 우리는 이 공간 안에서는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이들이라 네가 어떤 짓을 벌여도 천벌을 피할 길이 없구나.”




“그들은 향로가 펼쳐낸 시공간 내에서는 자신들이 수천 년간 쌓은 능력을 무한정으로 사용하도록 허락받는 제약을 자신들의 몸에 새기는 일을 행하였단다.”


“향로의 시공간에서는 무한정이라구?”


“그렇지. 그래서 그들이 현세에 나올 수는 없는 거야. 어찌 보면 내 능력의 복사판 같은 것인데, 나는 너라는 그릇을 통해 현세에 나올 수 있지만, 그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현세에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할 것이라는 제약조건에 동의하고 그 향로의 시공간에 갇혀 수천 년간 백제의 땅과 영혼을 지키는 존재들로 남기로 한 것이다. 그런 그들을 그 무지몽매한 여우 요괴 놈이 깨운 것이지.”


“여우 요괴?




“오호라! 네 놈! 여우였던게로구나? 오호? 신기하구나!꼬리가 이게 몇 개씩이나 되는 게냐? 네놈도 천년 가까이 살아온 놈이로구나?”


꼼짝없이 머리를 잡힌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남자가 움찔하자 검은 털보의 탈이 말했다.

바라문(婆羅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네 머리를 수박이나 참외보다 더 못한 존재로 내 주먹에서 으스러뜨려주마. 나 바라문(婆羅門)님에게 걸린 이상, 넌 오늘 드디어 성불을 이루게 될 것이야.”


그의 말에 초록색의 탈과 금강과 역사가 각자의 위치에서 향로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의 기운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좋게 말할 때, 어서 이 어쭙잖은 팔괘진을 풀거라. 그러면 고통 없이 성불시켜주마.”


“와라와세루 하나시 코노 핫케진와 다레모 도오 시요오모 나이 코토 와타시가 타토에 코코데 시누 코토니 낫테모 소노 나카니 토지코메라레타 손자이모 잇쇼니 호로보사자루오 에나이다로오[웃기는 소리. 이 팔괘진은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것. 내가 설사 여기서 죽게 되더라도 그 안에 갇힌 존재들도 같이 멸할 수밖에 없을 게다.]”


“아, 그래? 거짓이 아니로구나. 귀찮게 되었구나. 가루라(迦樓羅). 오공과 취호왕께 이 사실을 알려라. 아무래도 이 놈이 오늘 나 바라문님과 끝장을 보길 원하나 보구나. 다시 향로를 잠재우려면 그곳으로 공간을 통째로 들어 바꿔주마.”


바라문의 우렁찬 목소리에 초록색 새와 같은 탈의 존재가 합장하는 듯한 자세로 한 손만을 모으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금강과 역사! 너희들은 얼른 취호인과 오녀들을 통해 팔괘진 안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공간을 '그 안'으로 들인다고 알리거라.”




“그러면 우리는, 아니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지?”


세찬이가 다시 친구들이 걱정되었는지 물었다.


“이제 저 문으로 나가면 되는 거지, 그들의 마중을 나가야지? 진을 깨지 못하면 결국 그 파급이 어디까지 나오더라도 향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그들의 제약조건이 강화되는 곳으로 옮겨올 것이거든.”


방상씨가 설명을 하며 소매를 흔들며 손을 한번 휘젓자 연옥의 공간에서 천이 열리고 호수의 파문이 하나로 갈라지듯 밖으로 나가는 공간을 만들었다.


“여긴?”


세찬이가 밖으로 연결되는 열린 공간을 보며 익숙한 장소에 눈이 커졌다. 터벅거리며 먼저 밖으로 나가는 방상씨의 앞에 초등학교의 졸업 여행할 당시 눈여겨보았던 무령왕릉의 입구가 펼쳐져 있었다.




바라문의 손에 잡혀 있던 망토가 안에 마치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먼지가 푹 꺼지며 안에 있던 존재가 사라지며 소리가 퍼졌다.


“칙쇼! 오마에타치가 돈나 손자이카와 와카라나이가 와타시가 코노 마마 야라레루 와케니와 이카나이! 스데니 코오로노 나카노 스베테노 손자이와 와타시노 메에레에오 우케테이루 조오쿄오. 키미타치모 잇쇼니 코노 핫케진노 나카니 이레테 혼고쿠니 카엣테 진자노 지요오분토 시테 카이테아게요오[젠장! 너희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이미 향로 속의 모든 존재들은 내 명령을 받고 있는 상황. 너희들도 함께 이 팔괘진안에 담아 본국으로 돌아가 신사의 자양분으로 써주마.]”


스러진 망토를 버리고 바라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합장을 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중생. 너는 우리를 깨운 그 순간부터 여기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방상씨의 탈> 3부 -끝-

다음 이야기는 4부에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ahura/1041


주) 미마지(味摩之) 탈

1500여 년 전 오(吳) 나라에서 기악(器樂)을 배워 온 미마지(味摩之)라는 인물이 만들었다는 백제의 탈. 백제 무왕 때 미마지는 백제 기악을 일본에 전해 일본의 가면 무곡인 기가쿠를 탄생시키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당시 백제 미마지 기악은 악(樂), 가(歌), 무(舞)가 합쳐진 종합예술로 백제 예술인들이 궁중에서 펼쳤던 화려한 연회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탈의 원형만 있을 뿐 제대로 된 기록이 많지 않아 복원이나 역사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기록에 남은 사실을 토대로 복원된 탈들의 면면을 보면, 취호왕, 오공, 바라문, 가루라, 취호인, 오녀, 금강, 역사 등 다양한 캐릭터의 탈들이 있으며 이야기도 상당히 복잡다단한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되어 공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탈춤과 연회 문화의 원형에 해당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기타 다른 지역의 탈춤과 상당한 공통점도 눈에 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