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4부 – 1

하나. 옛날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 상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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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옛날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태초에 아무것도 없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하늘’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하늘에 상대되는 땅이 있다는 것을 하늘에 있는 존재들은 알 필요가 없었다.


하늘이 크게 울고 천둥벼락이 치고 비가 내리면서 그것을 받아줄 ‘땅’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즈음, 큰 비는 산과 골짜기를 타고 흘러 시내를 만들고 이내 물줄기가 굵어지며 강이 되었으며 그렇게 강이 모여 흐르며 큰 물이 모여 움직이는 바다라 하는 것도 생겨났다.


땅은 모두 붙어 하나로 이어져 있어 바다로 끝나 물이 이어지는 세상과 구분되던 시기였다.


세상을 만든 존재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질서가 생겨났고 위계가 생겨났으며 누구라고 할 것이 그것은 지켜야 할 규율이 되어 하늘을 지배하는 자들의 사회를 만들어냈다.


누구도 다투는 일은 없었다.


다툴 일이 없었고, 다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천지에 널려있었고,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수양을 쌓는다는 목적이 분명하였기에 다른 이들의 것을 탐낼 필요도 없었다.


다툼이 없으니 그들의 세상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질시를 만들어내고 서로의 사랑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그들 사이에도 다툼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수양을 한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감정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고, 그들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점유 등이 사유해야 할 재산으로 여겨지지도 않았으나 무엇보다 그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다툼은 없으래야 없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들 간의 감정이 뒤엉키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격렬해지고 그것이 이내 질시를 낳고 그 질시가 기어코 미움을 낳고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조물주는 생각했다.


‘아! 이들에게 감정을 넣어준 것은 내 실수였구나.!’


하지만 조물주는 자신 역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감정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물주는 자신 혼자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외로웠기 때문에 그 외로움의 감정이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들고 그들에게 하늘에서 살 수 있도록 했던 사실을 깨닫고 땅 위의 세상에 그들과 닮은 존재들을 만들어 그들의 감정이 똑같은 존재, 하지만 유한한 생명을 갖고 연약하기 그지없으며 동물에게도 위협을 당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만들기로 했다.


조물주와 마찬가지로 천상계에서 살고 있던 존재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감정이 생겨날 즈음 그들은 그것이 결국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까지는 하지도 못했다.


그들에게 시간의 개념이 의미가 없고, 늙음이라는 것이 없었기에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인간이라는 그들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존재를 땅 아래로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상계에 모습을 드러내자, 천상계의 존재들은 무료한 그들의 영원한 시간을 서로 간의 질시와 감정의 소모로 보내는 것을 인간에 대한 관심과 관찰로 바꾸어나갔다. 그리고 자신들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 불안정한, 한정된 생명을 가진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삶에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그들 중에서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질을 가진 자들에게 자신들의 관심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물론 조물주는 엄격하게 지상계의 인간에 천상계의 존재들이 참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했다. 한동안은 그 엄격한 규율을 감히 깨뜨리면서까지 조물주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슬아슬하게 지켜지던 약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빛이 바랬다. 자신들의 모습과 닮아 있는 인간의 삶을 관찰하거나 몰래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지상계에 내려가는 이들이 적지 않아 졌던 것이다. 그들은 조물주의 엄격한 금지 규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어 했다.


사실 조물주는 애초부터 천상계의 존재들이 그 규율을 지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천상계의 존재들이 탄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결국 그들의 감정 때문에 천상계의 질서를 깨뜨리고 그들 사회에서 균열을 일으켜 싸움이나 전쟁이 되기보다는 비슷한 존재로 만들어낸 지상계의 인간들의 삶에 참견하는 정도로 해소할 수 있다면 본래 인간을 창조한 의도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다만, 그것이 천상계의 존재들 간의 대리전쟁이 되지 않는다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천상계에는 본래 선과 악의 구분이 없었다, 아니 있을 여지가 없었다.


선과 악의 구분은 결국 상대적인 것이었다. 조물주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피조물들에게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라고 규정한다고 될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감정이 생긴 것처럼 그들이 지향해야 할 바를 지정해주었다. 조물주의 경지에까지 이르기 위한 수행을 일러준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방식으로 수행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저마다의 성향에 맞게 이루어졌다. 누군가는 극한의 단계까지 몸을 단련하는 것으로 수행의 날들을 계속하였고, 또 다른 이는 정신을 수양하기 위해 좌선(坐禪)을 통해 명상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것으로 수행을 하기도 했다.


조금 독특한 이는 술법을 익혀 조물주가 세상을 만들어냈던 모습을 따라가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부리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였다. 또 어떤 이는 물건에 기운을 담거나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천상계의 여러 가지 불편한 것들을 개선해내는 물건을 발명하고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인간들이 동물에게 잡아먹히고 쫓기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활용하여 동물들을 사냥하고 씨앗을 뿌려 허기를 해결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옷이라는 것을 만들어 입게 되기까지 다양한 천상계의 존재들은 인간들을 도와가며 그들의 발전을 즐겁게 누르며 함께 세월을 흘러 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천상계와 인간계밖에 없어야 할 세상에 조물주가 분명히 의도하지 않았던 존재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요괴라는 형태의 그 존재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근원을 알지 못하였다. 물론 조물주가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것은 아니었다.


천상계의 존재들 중에서는 자신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야 할 존재들이 필요했고, 천상계까지 올라올 수 없는 지상계의 인간들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물주가 공들여 만들었던 동물들과 식물들도 감정을 갖고 그 감정으로 인해 단순히 생존을 위한 약육강식이 아닌 감정을 이용한 서로 간의 살육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그들 간의 교묘한 융합을 통해 본래 가지고 있던 오래된 식물과 동물들에게 영혼을 불러 넣어주거나 자신의 수양법인 도술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천상계의 존재들은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들은 대개 떳떳한 존재일 수 없었다. 그들은 주로 자신들이 태어난 어둠에서 생활하였다.


그들은 천상계의 존재들을 두려워했지만, 지상계의 인간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잉태해낸 천상계의 존재들에게 절대는 넘어서는 안될 선에 대한 경고를 수차례 들어왔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함부로 인간을 해할 경우, 그것은 조물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존재가 언제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수 없다는 존재의 존폐를 뒤흔들 수 있는 철칙 아닌 철칙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어둠을 먹으며 그 세력을 키워갔다. 동물과 융합된 존재들은 몸집을 키웠고, 인간과 결탁된 자들은 천상계의 존재들을 흉내 내며 도(道)를 닦는 수양을 하기도 했다. 바다에도 강에도 그리고 나무에도 모든 자연물에도 깃들어있던 영혼의 형태들이 세월을 거듭하게 되면서 그것들은 정령 혹은 요괴라는 형태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었다.


간혹, 인간을 직접 잡아먹고 싶다는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사고를 치는 요괴들도 있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조물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전에 천상계의 존재들에게 미리 제어되거나 응징되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그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그라져갔다.


그렇게 수백수천이 흐르고 보이지는 않고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지상계의 인간들이 천상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지혜와 경험이 쌓일 즈음, 인간계에서도 도술을 익히고 천상계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사(道士)라고도 불렀고 술법사(術法師)라고도 불렸으며, 신선(神仙)이라고도 불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천상계와 인간계, 그리고 정령계가 구분이 없어지는 시기가 왔다. 그들에게 있어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심판하는 심판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묘한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면서 서로 간의 존재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평화스러웠고, 인간들 역시 땅이 갈라지기 전의 한 덩어리였던 터라 자신들의 영역을 갖기 위한 다툼이나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명확하게 있다는 것을 인지한 세상에서 그들이 섣불리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게 헛된 시비를 거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 인간들은 저마다 모여 무리 생활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들과 달리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인간 중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천상계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계보를 이어나가면서 인간계에서도 여러 계층의 다양한 부류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지혜와 능력을 계승 발전시켜나갔고, 그것을 흡수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특정한 능력을 갖춘 인간에 한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천상계의 존재들이 깃들어 어느 순간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있었기에 인간계에서도 그들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일반인들과 섞이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계에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거나 발휘하여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을 벌이지 않았다. 그렇게 불문율로 평형을 이뤄가던 시대였다.


수명이 한정된 인간들의 영혼이 다시 소멸하지 않게 되면서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해 천상계의 존재들은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으로 저승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그곳을 관할하는 천상계의 존재들도 생겨났다. 이른바 자신들의 특성에 맞게 직무가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특화되어 인간계를 다스린다는 표현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세상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동의하였다.


문제는 언제나 불안정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정령계 속에 숨어 지내던 어둠, 요괴들이었다. 그들은 짐승과 융합된 경우도 그러하지만, 사람과 결탁한 경우도 있었고, 죽은 사람에게서 나온 영혼이 가야 할 곳으로 순리대로 가지 못하면서 안 좋은 기운으로 뭉쳐 과거의 기억조차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존재를 망각한 채 살의(殺意)에 가까운 본능만 남아버린 악령(惡靈)이라는 것으로 변해버린 것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는 감정과 함께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라는 것이 생겨났고, 세상에 대한 것은 물론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일반 인간들은 어둠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를 경험에 새기게 되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그렇게 태초에 인간이 있고 나서 하나로 붙어있던 땅에서 천상계와 지상계, 그리고 정령계, 또 어둠의 요괴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던 시대의 어느 한 자락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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