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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17. 2022

생산 지역에 따른 와인(Wine) 분류법

프랑스 와인(Wine) - 2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024



• VdT(Vins de Table, 뱅 드 타블르)

가장 일반적인 와인에 적용하며 프랑스와 이태리인들이 식사 중에 많이 사용하여 테이블 와인, 일상 와인이라 부른다. VdT는 주로 프랑스 전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블렌딩 한 와인에 적용되며 이 등급용 와인의 라벨에는 지역명을 표기하지 않는다. 값이 저렴한 만큼 품질이 낮은 와인도 있지만 뱅 드 페이보다 비싼 와인도 적지 않다.


프랑스 전역, 심지어는 외국에서 들여온 포도로 만드는 와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생산지명을 쓸 수 없다. 이 등급의 와인은 대체로 테이블 와인이며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35%를 차지한다. 사실 프랑스 와인의 대부분은 간편한 음료처럼 즐기는 용도로 나온다. 뱅드 타블에 속하는 와인 대다수는 상표명을 내세워 팔리며 값싼 캘리포니아 저그 와인(jug wine)의 프랑스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와인을 사러 프랑스의 식료품점에 들어갔다가 라벨도 없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는 와인을 볼 수도 있다.


레드 와인인지 화이트 와인인지 로제 와인인지는 플라스틱 용기에 비치는 색을 보고 구분해야 한다. 용기에는 달랑 알코올 함량만 표기되어 있는데, 대체로 9~14%대 수준이다.


결국 정리는 ‘AOP 법’으로

• 2009년 8월 1일 EU에 속한 국가들의 와인에 대한 지리적 표시를 보호하고 와인 라벨 표기를 새롭게 규정했다.


• 유럽 각국은 이 법령에 따라 자국의 와인법을 수정했으며 프랑스도 2009년 빈티지부터 AOP(Appellation d'Origine Protégée)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랑크뤼(Grand Cru)’라는 것도 있다면서요?

프랑스 와인의 등급으로는 특급 포도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보르도(Bordeaux)에서는 메도크(Médoc) 지구와 생떼밀리옹(Saint-Emilion) 지구의 특급 포도원들을 의미한다. 메도크는 1855년의 그랑크뤼 클라세(Grand Crus Classés)에 의하여 61개 와인 생산자를 5개 등급으로 분류한 것이며, 생떼밀리옹은 46개의 특급 포도원을 의미한다. 특히 보르도 지역에서는 1등급을 의미하는 프리미에 그랑크뤼(Primier Grand Cru)가 5대 샤토*로 일컬어지며,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으로 널리 이해되고 있다.


* 5대 샤토란?

샤토 라피트 로쉴드(Château Lafite-Rothschild), 샤토 마고 (Château Margaux), 샤토 라투르 (Château Latour), 샤토 오 브리옹 (Château Haut-Brion), 샤토 무통 로쉴드 (Château Mouton-Rothschild)

반면에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에서는 그랑크뤼라고 하면 1~2%의 최고급 특급밭을 칭한다. 그 아래로는 프리미에 크뤼로 1등급밭을 구분하고 있다. 보르도에서는 그랑크뤼라고 하면 61개의 샤토 중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나, 부르고뉴에서는 특급밭을 의미한다. 또한 보르도의 프리미에 그랑크뤼는 특급밭이지만, 부르고뉴의 프리미에는 1 등급 밭을 의미하니, 보르도와 부르고뉴에서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명칭이 대단해보기인 한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1976년에 열린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프랑스 와인 업계의 자존심이 박살나버린 사건’을 지칭한다. 어떠한 제품의 퀄리티를 결정짓는데 있어 이미지와 브랜드 효과가 얼마나 큰지 실증한 유명한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원래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던 ‘파리스의 심판’을 뜻하는 표현인데, 아래 나오는 기사 제목에 'Paris'를 이용한 언어유희로 쓰이며 이름이 굳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 와인은 와인 중에서도 최고급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프랑스 와인이 아닌 와인은 와인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는 자부심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지역 외에서도 프랑스 와인을 따라잡거나 능가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그중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가 품질 좋은 포도가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각광받았고 이 지역의 UC DAVIS 양조학과 출신들이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와인의 품질이 급격히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나 프랑스 본가에서는 여전히 미국산 와인을 웃음거리로 치부하고 있었다.

2011년 인터뷰 당시의 스티븐 스퍼리어

이런 세간의 인식 속에서 영국의 와인 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2011년 5월 인터뷰)는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공정한 평가를 위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개최했다. 영국은 국토의 대부분이 와인용 포도 재배의 북방 한계선을 넘어 있는 데다 날씨까지 좋은 편이 아니라 예로부터 와인은 곧 수입산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와인 수입국이었기 때문에 와인의 품질이나 홍보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 생산은 못하지만 와인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워져서 유명 평론가가 다수 배출되고 거래 시장도 컸다. 프랑스 와인의 주요 수입국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입김을 발휘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블라인드 테스트의 개최 목적은 스퍼리어가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다가 미국 와인들의 품질이 상당히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국도 괜찮은 와인들도 괜찮은 편인데, 그래도 프랑스 와인엔 안 되겠지? 한번 비교해 보는 건 어떨까?’라고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스퍼리어 본인은 당연히 프랑스 와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라 굳게 믿었으며, 심사위원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사와 전통의 프랑스 와인이 미국의 와인 따위에게 질 리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1976년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평론가 11인들이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평론가 11인 중 9인이 프랑스인으로 선발되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이 테스트를 개최한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가 프랑스에 설립한 와인 학교인 Académie du Vin의 미국인 원장 Patricia Gallagher이었다.


언뜻 보면 불공정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점에서 어느 게 프랑스 와인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진검승부에 가까운 것이라 편파적이라는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사실 그 누구도 미국 와인이 이길 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편파판정을 할 생각조차 없었으며, 미국 와인업계 입장에서도 “우리가 제법 많이 성장했으니, 종주국 프랑스로부터 한번 배우는 자리를 가져보자”라는 마인드로 나섰기 때문에 미국 와인업계에서도 손해 볼 일은 없다고 편하게 시작된 테스팅이었다.


원래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시음 결과를 동시에 발표하려고 했지만, 레드 와인의 시음 준비가 늦어져서 화이트 와인의 시음 결과를 먼저 발표했는데, 여기서부터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화이트 와인의 결과부터 볼까요?

1등 와인의 2011년산

화이트 와인 시음 순위는 이렇게 나왔다.


1 Ch. Montelena 1973 미국

2 Meursault Charmes Roulot 1973 프랑스

3 Chalone Vineyard 1974 미국

4 Spring Mountain Vineyard 1973 미국

5 Beaune Clos des Mouches, Joseph Drouhin 1973 프랑스

6 Freemark Abbey Winery 1972 미국

7 Batard-Montrachet, Ramonet-Prudhon 1973 프랑스

8 Puligny-Montrachet Les Pucelles, Domaine Leflaive 1972 프랑스

9 Veedercrest Vineyards 1972 미국

10 David Bruce Winery 1973 미국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의 화이트 와인이 프랑스의 것보다 낫다는 총체적인 결과가 위와 같이 나와버린 것이다. 게다가 1위를 포함하여 상위 5위권 안에 미국산 화이트 와인이 무려 3개나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 입장에선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시음 전까지만 해도 “그깟 미국 와인이 위대한 프랑스 와인의 적수가 될 턱이 없지.”라며 희희낙락 축제 분위기였던 전원이 바짝 긴장했으며, 시음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처럼 가라앉고 말았다.

여담으로 <타임>지의 기자 조지 M. 테이버는 화이트 와인 시음에서 평론가들이 위대한 프랑스 와인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평가했던 것이 사실상 캘리포니아 와인이었고, 향이 없으니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했던 것은 프랑스의 몽라셰였음을 자신이 보고 들은 대로 기사에 담았다. 와인 세팅을 도왔던 소믈리에들은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수석 소믈리에가 캘리포니아 와인에 프랑스 와인보다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레드 와인의 시음이 진행되었는데, 이때 심사위원들은 미국 와인이 1등을 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다 같이 심기일전 마음을 다졌다. 조금이라도 미국산이라는 의심이 가는 와인에는 가차 없이 낙제점을 주고, 프랑스 와인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자는 무언의 사인이 오갔던 것이다.


레드 와인 시음의 결과를 볼까요?

순위  제품명         연도   국가명    평점


1 Stag's Leap Wine Cellars 1973 (미국) 14.14

2 Ch. Mouton Rothschild 1970 (프랑스) 14.09

3 Ch. Montrose 1970 (프랑스) 13.64

4 Ch. Haut-Brion 1970 (프랑스) 13.23

5 Ridge Vinyards Monte Bello 1971 (미국) 12.14

6 Ch. Leoville-Las-Cases 1971 (프랑스) 11.18

7 Heitz Martha's Vineyards 1970 (미국) 10.36

8 Clos Du Val Winery 1972 (미국) 10.14

9 Mayacamas Vinyards 1971 (미국) 9.77

10 Freemark Abbey Winery 1969 (미국) 9.64


이미 한 번의 충격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마음을 먹고 미국 와인을 쳐내자고 했음에도 그들이 뽑은 1위는 미국 와인이었다. 물론, 화이트 와인을 심사했을 때보다 프랑스 와인이 점수를 많이 얻었으며, 1등부터 4등까지는 점수 차이가 그만큼 근소했다. 심사 당시에 그랑크뤼 2등급이었던 샤토 무통 로쉴드는 1위와 근소한 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1등을 차지한 와인은 미국의 Stag's Leap Wine Cellars 1973이었다. 미국 와인이 감히 프랑스 와인을 꺾는 어마어마한 대이변이 기어코 일어나고 만 것이었다. 가격만 놓고 봐도 2위 Chateau Mouton Rothschild의 가격이 Stag's Leap Wine Cellars의 3배가 넘었기 때문에 와인업계의 당시 쇼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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