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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19. 2022

내 영혼을 훼손할 수 있는 이는 나 말고는 없다.

도둑맞은 영혼을 훔쳐간 자는 바로 자신이다.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군(三軍)의 장수(將帥)는 빼앗을 수 있지만, 필부(匹夫)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이 장에서는 삼군(三軍)의 장수(將帥)와 필부(匹夫)의 뜻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가르침을 편다.


‘삼군(三軍)’은 앞서 공부했던 ‘술이(述而) 편’ 10장에서 자로(子路)가 삼군(三軍)을 통솔한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고 스승에게 묻는 과정에서 나왔던 그 개념이다. 1군(軍)의 규모가 12,500명이니, 무려 37,500명이나 되는 군대 병력을 일컫는 대군대에 해당한다. 위용은 대단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은 모두 내 의지대로 모아졌거나 내 의지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내 수족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즉, 그저 눈에 보이는 거대한 외형일 뿐 군사 한 명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내가 하나로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한 이유로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환경을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무너뜨리고 모두 패퇴시키고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낮 필부의 의지는 오롯이 그 자신만의 것이라 내가 무너뜨리거나 빼앗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한 명에 불과하지만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한다면 그 어떤 강력한 힘이나 군사도 그의 의지를 굴복시킬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후씨(侯仲良(후중량))는 이 장의 가르침을 이렇게 정리한다.


“三軍(삼군)의 용맹은 남에게 달려 있고 匹夫(필부)의 뜻은 자신에게 있다. 그러므로 장수는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匹夫)의 뜻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뜻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의미하는 바의 울림이 큰 해설이다. ‘쉽게 빼앗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뜻이 아니다.’ 굳이 이 장에서 비교의 대상을 똑같이 장수와 필부로 삼지 않고 장수와 필부의 ‘뜻’을 비교한 것은 동일 선상의 비교가 아닌 비유이기 때문에 그런 불균형이 생긴 것이다.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뜻이 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을 빼앗아오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는, 아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문법적 장치인 것이다.

오늘의 공부 표제어로 삼은 글은 사실, 발검 스쿨의 학도로 아침 논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부산의 한 경찰관 친구의 브런치 소개글에서 살짝 발췌하여 변형한 것이다. 그녀가 이 장을 공부하고 그 내용을 담고자 한 것은 아니었겠으나 참 묘한 우연스럽게도 그녀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는 표제의 설명은 이 장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맞다. 그녀는 이른바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의 온상인 ‘복마전(伏魔殿)’, 경찰 조직에 속해 있는 경찰관이다. 그녀는 그 안에서 그들이 저지르는 비리와 부정에 대해 바로잡아달라고 온갖 발버둥을 다 쳤더랬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그것이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겠다는 출발이 아니라 자신을 갈그치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들에 대한 방어행위의 일환으로 마지막의 마지막 수단으로 뽑게 된 칼이라고 하였으나, 결국 그녀의 그 모든 버둥거림은 그들이 조직을 보호한다는 미명하게 묻혀버렸다.

그 복마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결국 동료라고 하는 그 조직 안에 있는 것들이 서로 묵인하게 영혼을 도둑질하는 것이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것을 보았고, 그런 의미에서 그 안에서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그저 같은 공간의 공기를 나눠마시면서 그들의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자신의 영혼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도둑질당하지 않겠다는 간절함으로 저 표제어를 자신의 소개 박아두고 뼛속 깊이 그 의미를 새기는 것임을 내 멋대로 짐작해본다.




여기 또 한 명의 그녀가 있다. 그녀는 최순실이 딸을 기어코 들여보내려던 그 허접한 성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 여대 출신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을 착실하게 듣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넌 아이들이 살던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니 그녀 역시 중산층 내지는 지도층들이 사는 강남과는 멀어도 한참은 먼 사람이었다.


그리고 법학이 전공도 아니면서 빠득빠득 출세를 원했던 지, 사법고시를 치르고 검사가 된다. 그녀의 이름과 얼굴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2018년 언론을 통해서였다. 지금 당선된 자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연루됐던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와 관련하여 자신이 외압을 받았다며 전면적으로 폭탄을 터트린 것이다. 나름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며 사람들은 그녀를 썩어빠진 검찰 내에 있는 정의로운 ‘필부(匹夫)’라고 포장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폭탄은 불발탄으로 그쳤다. 그렇게 떠들어댔지만, 결국 그 조직 출신의 대선배였던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검찰 출신이면서 죄를 지었다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자들의 끝은 결코 감옥이 아니다. 어중간한 위치이거나 빼도 박도 못하는 현행범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 끝이 감옥을 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결국 그는 굳건히 먼지를 털어내고 지금 당선인의 최측근이라며 감히 당내에서 아무도 상대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하며 원내대표가 되어 허수아비 피라미 당대표와는 달리 묵직한 존재감으로 거침없는 질주를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 갈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경성제대는 고사하고 고작 모여대의 법대 출신도 아니라는 이유로 불발탄을 쥐고서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그 일이 터지고 1년이 지난 후 2019년에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그 시끄럽던 시기 취임하자 진행된 ‘검사와의 대화’라는 행사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개혁이라는 기치를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써서 이마에 묵고 있던 조 장관과 한판 뜨겠다며 물고서 안 놓는 1대 1 토론의 개싸움으로 몰고 간 것이다. 당시 일개 여자 평검사와의 대화가 길게 이어지면서 ‘검사와의 대화’가 아닌 ‘안미현 검사와의 대화’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당시 한 매체가 ‘안미현과의 대화, 나머진 들러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자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발 소설 말고 기사를 쓰시라.”며 공개 반발하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 언론에 자발적으로 불발탄을 터트릴 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그녀의 이름이나 존재가 다 사라질 즈음인 엊그제 그녀가 언론에 등판했다.

엊그제 자수의 형태로 궁지에 몰려 잡힌 ‘계곡 살인’ 사건의 주요 용의자 이은해, 조현수의 그 말도 안 되는 살인 사건에 대해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했던 검사가 바로 그녀였던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그녀는 그놈의 페이스북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피해자 분과 유족 분들께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입이 한 개밖에 없는데 구구절절이 사과의 말이랍시고 이렇게 떠들어댔다.


“저는 계곡 살인사건 관련해 경찰의 내사종결 의견에 대해 의견대로 내사 종결할 것을 지휘했다. 저의 무능함으로 인해 피해자 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묻힐 뻔했다. 피해자 분과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이 정도만으로도 욕이 스멀거리며 나오기 직전이었지만 여기서 그쳤다면 그녀의 이야기가 오늘 이 소중한 논어 공부 시간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 뒤에 다시 예전 버릇을 버리지 못한 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었다.


“저는 이 사건이야말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검사로 하여금 경찰이 수사한 내용을 오로지 서류만 보고 판단하게 했을 때, 검사가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검사에게 영장청구권과 수사지휘권이 있어도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 본다.”


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며 멀쩡히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최근 검찰의 최대 이슈라는 ‘검수완박’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물론 내가 그녀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어떤 겁박이나 조직의 길들임에 변한 것인지 아니면 초지일관 관종 기질이 끓는 피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녀의 손끝에서 나온 그녀의 글만으로 파악하는 데에도 그녀가 지금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는 것만은 명확하게 분석하고 지적할 수 있다.

그녀가 멀쩡한 악녀와 그의 내연남이 공조하여 선량한 남편을 죽인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변사사건으로 종결시키는 도장을 찍은 것은 엄연한 잘못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일단 여기서 이 사인이 대강 뭉뚱그리며 ‘잘못’이라고 대강 얘기하고 사과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부터 짚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이 사건을 담당하던 당시는, 현재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고사하고 작년부터 시작된 경찰로의 수사권 이전도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즉, 검찰이 그렇지 지금 놓치고 싶지 않아 하던 그 옛날의 방식 그대로 수사권 기소권 전권 다 쥐고 있던 때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걸 경찰에서 올린 그대로 서류에 도장만 기계적으로 찍어놓고서는 ‘미안?’ ‘사과?’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지금 제출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실체적 진실을 놓칠 거라고?


그런데 그녀가 이 말을 하기 전에 최근 맘카페나 백수들의 커뮤니티에서 가장 핫하다는 이은해, 조현수의 ‘계곡 살인’ 사건을 통해 공식 ‘개돼지들(이라고 쓰고 국민이라 번역한다.)’들을 흔들겠다고 검찰 지검장급의 인사들이 연이어 검수완박이 이루어진다면 ‘계곡 살인’ 사건은 묻혔을 것이라며 약을 팔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 만약 그들의 논리대로 앞뒤가 맞으려면 경찰에서 뒷돈을 받았던 아니면 무능했던 ‘계곡 살인’ 사건을 변사 종결로 대강 묻어버리려고 했을 때 검찰이 그것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고 재수사를 지시하고 진실을 밝혀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계곡 살인’ 사건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2년 전 보험사가 이상한 짓을 한다며 제보했던 이은혜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제보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진실을 파헤친 것으로 인구에 회자된 사건이었다. 즉, 경찰이나 검찰이 지들이 알아서 뭔가 이상하다고 재수사를 한 사건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검찰의 간부라는 자들이 그따위 약을 팔고 그 흐름에 맞춰 당사자인 그녀가 그 지긋지긋한 페이스북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리듬에 맞춰 나팔을 분 것이다.


정작 수사권까지 멀쩡히 가지고 있었으면서 사건이 많아서 일일이 수사할 수 없어 그냥 서류만 보고 도장을 찍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그따위 말을 사과랍시고 해놓고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시작해놓고 ‘그래도 이 말만큼은 해야 하겠다’로 시작하여 ‘이 사건이야말로 검수완박을 하게 되면 놓칠만한 사건이 많아 국민들이 고통받을 수 있을 것이다.’로 끝내는 게 앞뒤가 맞는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논리로 언론플레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경찰에게 수사 종결권을 가지고 갔다고 하는 작년부터도 현행 제도에 따르면, 경찰이 불송치로 종결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 검찰에서 그 사건에 대해 살펴보고 다시 기소할 수 있게 시스템적으로 갖춰져 있다. 정말로 검찰이 제대로 일을 한다고 보여주고 경찰에게 수사 종결권을 주었더니 국민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작년 이후 수사 종결권이 넘어가고서 경찰이 향응을 제공받고 덮어준 직무유기나 무능함으로 대강 넘어간 사건을 검찰에서 솎아내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주면 그것으로 명백한 증명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일선 검사들이 맡고 있는 사건이 많으셔서 위의 여자 검사처럼 쌓인 서류를 경찰이 보내온 대로 그냥 대강 도장 찍어서 처리하는 게 일상이었던 것이다.

전 국민을 분노에 떨게 했던 정인이 사건은 달랐나? 몇 번이나 신고가 들어갔지만, 경찰은 무혐의 처리했고, 그 내용은 당시 수사 종결권이 없던 경찰에게서 수사지휘 검사실에 넘어갔다.

개돼지들이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경찰서만 욕을 먹을 때, 검찰은 이빨에 이쑤시개 끼우고 남의 불행 보듯 슬쩍 지나갔다. 당시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던 검사라는 작자는 위의 그녀처럼 버젓이 아직도 검사 짓을 어딘가에서 또 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그런 민생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뒷돈이 오갈 수 있는 기업 관련, 권력 관련 사건에 대해 자신들이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권한이 넘어갈까 봐 똥줄이 타는 것이다.


뜻을 가지고 있는 필부(匹夫)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다. 그런데 뜻조차 없으면서 이익만을 쫓아다니는 들개 같은 무리들은 세운 뜻이 없으니 빼앗길 영혼도 없다. 그런 자들에게 휘둘리고 그런 자들에게 표를 던져준 이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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