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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19. 2022

자기 아이디어가 가능성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아 배우고 또 배워 최고에 오르다.

212번째 대가의 이야기.


1973년 미국 미시간주 이스트 랜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시간주립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였고, 엄마 역시 컴퓨터 교수였다. 컴퓨터를 전공한 부모를 두었다는 특화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다루며 컴퓨터 신동으로 성장했다.


6살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숙제를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다. 그 학교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학생이었다. 12살 때 그는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전기를 읽고, 그처럼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발명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미시간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교수가 되고 싶어 했던 그는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생각이 약간 바뀌기 시작한다.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바로 평생을 함께할 친구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게 된 것이다. 동갑내기인 브린과 그는 처음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웹 페이지에 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며 친분을 쌓아 절친으로 발전하게 된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오른쪽)와 세르게이 브린(왼쪽)

그와 친구 브린은 당시 막 세상에 등장한 월드 와이드 웹(WWW)이라는 환경의 가치에 주목했고, 어떻게 하면 방대한 월드 와이드 웹 속에서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 웹 페이지를 찾아낼 수 있을지 연구했다.


사실 그가 처음 주목했던 것은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기는 작업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모든 월드 와이드 웹을 백업하고 정돈(인덱싱)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하지만 월드 와이드 웹을 연구원 혼자서 백업한다는 것은 아무리 초창기라고는 하지만, 그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처음 연구를 시작했던 자신의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친구 브린의 아이디어인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기는 방법에 대한 공동 연구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구글을 공동 창업한 컴퓨터 과학자이자 경영자로, 2011년 4월 4일에 에릭 슈밋의 뒤를 이어 구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기도 했던 로렌스 에드워드 래리 페이지(Lawrence Edward Larry Page)의 이야기이다.


페이지는 구글의 검색 랭킹 알고리즘의 기초인 ‘페이지 랭크’의 창안자이며, 그와 브린은 서로 약 16%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상당히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엔지니어가 엔지니어를 관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매니저를 전부 해고하려 시도하는 등, 구글의 고유한 기업문화 상당 부분이 래리 페이지의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다만 이 때문에 20대 초반에는 CEO로서는 불안하다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에릭 슈미트를 CEO로 앉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후 그를 도와 구글의 기업 공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후 구글의 CEO로 돌아왔다가 구글의 조직 개편 이후 현재는 지주 회사인 알파벳의 CEO 자리에 있다가 현재는 그것마저 현 구글 CEO 선다 피차이에게 내어주고 자문역으로 내려왔다.


페이지는 2018년 6월, 페이지의 개인 재산은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목록 9위인 534억 달러일 것으로 추산한다.

그가 가졌던 생각은 학계에 진출하고자 했던 성향대로 마치 논문 검색의 방식과 똑같이 웹페이지 검색에 접근했다. 즉, 가치 있는 웹 페이지는 다른 웹 페이지와 많이 연결(링크)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한 것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특정 웹 페이지가 어떤 웹 페이지와 링크되어 있고, 얼마나 링크되어 있는지 횟수를 분석함으로써 웹 페이지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럽(BackRub)’이라고 이름 붙인 이 연구 프로젝트에서 페이지와 브린은 웹 페이지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웹 페이지를 뒤지는 검색 로봇(웹 크롤러)을 개발했고, 검색 로봇으로 수집한 링크 데이터를 분석할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완성하게 된다. 페이지와 브린은 이 검색 로봇과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이 웹 검색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개발 도중 프로젝트 명이던 ‘백럽’이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러워 대중성을 갖고 있지 못하는 지적을 받자, 세상의 모든 웹 페이지를 품겠다는 의미에서 ‘10의 100승’, 사실상 무한함을 의미하는 ‘구골(Googol)’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구골이라는 상표와 도메인은 이미 다른 곳에서 등록한 상태였다.

때문에 유사한 발음을 가진 ‘구글’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낙점된다. 그렇게 1996년 8월 마침내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 ‘구글’이 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다. 당시 구글의 초기 버전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URL을 이용해 구축한 것이었다.


물론 현재와 비교하면 초창기 검색 엔진이란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검색 로봇이 웹 페이지를 뒤져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방식이 아닌, 웹 페이지의 소유주가 검색 엔진에 자신의 사이트를 일일이 등록하는 일종의 수동방식으로 검색 엔진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말 그대로 ‘관문(포탈)’이라는 이름이 적합한 형태였다.

하지만, 구글의 등장은 그것만으로 충격 그 자체였고 큰 인기를 끌었다. 결국 시범 삼아 남는 PC 부품과 리눅스를 조합해 만든 서버와 스탠퍼드 대학교의 URL이 구글의 사용자들의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폭주량을 기록하게 된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IT 젊은 창업자들이 늘 그렇듯이 페이지와 브린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아이디어 덩어리, ‘구글’을 팔기로 결정하고 야후, 알타비스타 등과 접촉해 매각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각 대금으로 100만 달러 정도만 받아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소박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현재 구글의 기업가치가 약 4,000억 달러 가량 되는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금액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정작 구글은 매각에 난항을 겪게 된다. 그 이유가 더 기가 막혔는데, 구글의 검색 성능이 너무 뛰어나 사용자가 너무 빨리 포탈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웹 페이지 광고수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페이지와 브린은 매각을 포기하고 도리어 투자를 받아 구글을 하나의 회사로써 운영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구글에 최초로 투자한 사람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자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이었다. 두 창업자의 열의와 구글의 가능성을 알아본 벡톨샤임은 별다른 브리핑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끊어 두 젊은 창업자에게 건넸다.


투자를 받은 페이지와 브린은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실에서 독립한 후 수잔 보이키치(현 유튜브 최고경영자)의 집 창고를 빌려 구글을 창업한다. 이후 람 슈리람(벤처 캐피털리스트, 현 구글 이사), 데이비드 체리턴(스탠퍼드 대학교수, 페이지와 브린의 은사), 제프 베조스(아마존의 창업자) 등의 투자를 받아 구글을 키워나가는 것에 집중한다.


강력한 검색 기능과 검색어 광고를 통한 수익원 확보 덕분에 구글은 이후 말 그대로 급성장을 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속에서도 무너져가던 다른 회사들과 달리 구글은 굳건했고, 거품으로 뜬 회사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냈다. 최고경영자로서 페이지는 이러한 구글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기업공개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보기에 페이지는 한 기업을 이끌기에는 너무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다. 요즘은 워낙 젊은 20대 초반 창업자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20대 최고경영자를 보고 투자하겠다는 분위기는 형성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투자자의 우려에 페이지와 브린도 동의했다.


구글의 외적 성장을 내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내적 기틀을 잡고 대외 활동을 지휘할 경험 많은 최고경영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둘은 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 만이 구글을 이끌 적임자라고 여겼지만, 잡스가 ‘자신의’ 애플을 떠나 구글로 건너오는 기적은 바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

그렇게 그 두 사람이 적임자로 찾아낸 인물이 바로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였다. 슈미트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거쳐 노벨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인물이었다. 수십 년간 IT 업계에 종사하며 경영자로서 연륜도 충분했다. 처음 슈미트는 구글을 영 탐탁잖게 여겼지만 페이지와 브린을 직접 만나고 난 후 생각을 바꾸게 된다.


둘의 비전과 통찰력에 마음이 움직인 슈미트는 구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승낙했다. 2001년 페이지는 최고경영자 자리를 슈미트에게 승계하고 자신은 창업자로서 슈미트에게 지근거리에서 경영 수업을 받는 방식을 취한다.


이후 10년 동안 구글의 얼굴은 슈미트였고 이 기간 동안 페이지는 결코 대중들에게 자신의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정작 구글을 창업한 페이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유 중 하나가 그의 성향에서 나온 이러한 전략 아닌 전략 때문이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보이지 않았을 뿐, 회사 내에서 구글에 끼친 영향은 어마지대했다. 시작은 슈미트를 도와 구글의 기업 공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미션이었다. 그리고 이어 앤디 루빈과 만나 그의 아이디어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5000만 달러에 인수한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현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페이지의 선택은 현재 스마트폰의 운명을 지배하는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에릭 슈미츠를 통해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어깨너머 충분히 익히고 습득했다. 그리고 10년의 경영수업을 마친 2011년, 자신감을 갖게 된 페이지는 구글의 최고경영자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슈미트에게는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아준다. 최고경영자가 모든 것을 총괄하는 미국 기업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 형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페이지의 구상은 이러했다. 브린과 슈미트의 장점을 회사에 녹여 철저한 전문화 분업화를 이룩하되, 그 가운데 함께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시너지대로 뽑아낼 수 있다는 이상적인 밸런스를 찾아냈다고 확신한 것이었다. 페이지는 최고경영자라는 직함을 달고 구글을 현실적인 회사로서 이끌고 있고, 브린은 창업자 겸 구글 X 프로젝트 담당자라는 직함을 달고 구글 글라스, 자율 주행 자동차, 프로젝트 룬, 혈당을 체크하는 소프트렌즈 등 미래 기술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슈미트는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구글의 얼굴로서 활동 중이며, 창업자 둘에게 경영에 관한 조언을 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페이지는 컴퓨터 공학자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10년간의 경영수업을 통해 얻어낸 자신만의 경영자로서의 능력 역시 탁월함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IT 기업을 일궈낸 그의 경영철학은 현재 구글의 기반 시스템에 그대로 녹아들어 가 있다.

먼저 구글만의 독특한 소통 시스템으로 통하는 ‘TGIF(Thank God It's Friday)’를 들 수 있다. 구글은 매주 금요일 점심에 모든 직원이 한 군데 모여 자신의 생각을 전 직원에게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 회사 경영 방식에 대한 불만 등 무엇을 말해도 된다. 페이지를 포함한 모든 임원은 이 자리에 참석해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들의 생각을 직접 설명하는 기회도 갖는다.


TGIF를 통해 직원들의 불만은 줄어들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페이지의 아이디어는 주효했다. 이 회의를 통해 실제로 구현된 아이디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메일이다. 이메일 용량이 너무 적다는 직원의 아이디어를 듣고, 10GB 이상의 이메일 용량을 제공하는 지메일을 바로 출시한 것인데, 전 세계의 10억 명 가까운 인구가 지메일을 메인 메일로 사용하게 이끈 구글의 대표 서비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현재 TGIF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목요일 점심에 진행한다. 그 이유는 금요일에 TGIF를 진행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 세계 구글 직원들이 토요일과 겹치게 되면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또, ‘8:2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도 주목할 만하다. 구글의 모든 직원은 일주일의 4일은 자신의 본업(Job)에 하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선택하여 볼 수 있다. 구글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업무면 무엇이든 허용되며 강제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본업에 종사해도 된다. 하지만 8은 본업을, 2는 하고 싶은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직원들은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카드보드’이다. 직원 두 명이 장난 삼아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이제 가상현실 업계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기술로 거듭났다.


페이지는 전형적인 은둔형 최고경영자로 대중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 대부분 슈미트나 선다 피차이 부사장에게 위임하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대중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존재감이 감춰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구글 내부에서 그의 존재감이 빛을 낸다는 것은 구글 내부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구글의 직원들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래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는 마치 미래에서, 미래의 우리가 어떤 모습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온 사람인 것 같다”


래리 페이지는 항상 말한다.


“우리의 10년 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래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과 공동 창업을 하면서 “세상의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대성해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가장 유명한 사훈인 ‘악하게 굴지 말라(Don’t be evil)’를 만들었다. 물론 이 사훈은 구글의 탐욕스러운 독점과 확장의 부메랑이 되고 있다. 저 유명한 구글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다.


1.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2.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3.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이 낫다.


4. 인터넷은 민주주의가 통하는 세상이다.


5. 책상 앞에서만 검색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6.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


7. 세상에는 무한한 정보가 존재한다.


8. 정보의 필요성에는 국경이 없다.


9. 정장을 입지 않아도 업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10. 대단하다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오늘 내가 당신에게 이 은둔형 경영자에 대해 촘촘하게 소개한 이유는 그가 결코 은둔한 적이 없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옛말에 ‘작은 은자(隱者)는 산에 숨고, 큰 은자(隱者)는 저자에 숨는다’는 말이 있다.


그는 어리고 불안정하다는 투자자들과 시장의 우려에 고집을 세우지 않고 2001년 CEO 에릭 슈미트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기고 숨지 않고 바로 그의 곁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그래서 그 10년간 그에 대한 편견과 소문들은 마치 사실처럼 떠돌았다.‘스티브 잡스만큼이나 괴팍하고, 사교성이 없다’, ‘그가 괴짜라 구글에는 괴짜들만 모여 있다’ 등등.


하지만 래리 페이지는 그 10년 동안 묵묵히 구글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를 설계했다. 그리고 은둔이라기에는 너무도 활발하게 구글의 모든 직원, 엔지니어들과 교감하며 ‘소통과 실천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가 처음 당연히 부모처럼 교수를 꿈꾸고 학문을 하겠다고 했다나 새로운 세상과 기술을 접했을 때 그는 자신의 꿈을 수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기술의 연구주제로 삼았던 것이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미련 없이 접고 친구의 아이디어에 올인했다.

그리고 회사를 매각하려고 했지만 너무 앞서간 기술 탓에 매각이 어렵다는 점을 파악하고 그 점을 더 강화하여 회사의 기술을 키우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더 많은 투자를 받기 위해 자신을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과감하게 외부 CEO를 영입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더 큰 파격은 10년 만의 복귀 시점에 그 CEO를 회장으로 올려 그의 성과와 자질을 인정하고 활용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개발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시장을 흔들 정도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뒤로 빠지고 더 멀리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배워나가는 일은 그 어느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가 20대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금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자산이다. 무엇보다 그는 소통과 도전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은둔형이라고 부르기엔 거리가 멀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신의 부족함을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더 배우겠다고 언제든 자신이 올라있는 자리에서 잠시 내려올만한 도량을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은 페이지의 삶을 통해 당신이 이제까지 그러지 못했던 것을, 무려 20대에 이루고 현재의 성취를 이룬 그에게 배워야만 할 것이다. 물론 그의 삶을 대강 훑는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언제나 그렇듯 깨달음은 어느 한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계기를 통해서 오기 마련이다.

당신이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러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점에 대해 당신이 아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당신에게만 시간이 무한정으로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자 자연의 법칙이다. 그 귀중한 시간을 누군가는 깨달음을 통해 달려가고 있는데 당신 혼자서 늪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것인가?


아직 번쩍 정신 차리지 못한 당신을 향해 래리 페이지가 던지는 말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실패는, 대담하게, 담대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실패하는 이유는 야망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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