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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22. 2022

배운 대로 행하기만 한다면 성인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인용(智仁勇)의 경지란 무엇인가?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미혹(迷惑)되지 않고, 仁한 자는 근심하지 않고, 용맹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장의 내용은 이후 공부하게 될 ‘헌문(憲問) 편’ 30장의 절반에 다시 그대로 반복 인용되는 내용이다. 군자가 지향해야 할 덕목 중에 세 가지, 지, 인, 용(知, 仁, 勇)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그 개념을 설명하는 대신에 공자식으로 그 덕목들을 완성한 군자의 모습을 형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첫째, 지혜로운 자가 미혹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밝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물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앞서 공부했던 ‘옹야(雍也)편’ 21장의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둘째, 어진 사람은 도리에 따라 행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없으므로 마음이 항상 평화롭기 때문에 근심하는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이것 역시 앞서 요산요수(樂山樂水) 장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셋째, 용감한 사람은 거리낄 것이 없으므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자는 이 세 가지를 단순히 대표적인 덕목을 뽑은 것이 아닌, 공자가 가르치는 데 있어 배움의 순서로 삼은 것이라 여겨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지혜의 밝음이 사리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의혹하지 않는 것이요, 천리(天理)가 사욕(私慾)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 것이요, 기운이 道義(도의)에 배합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학문의 순서이다.


왜 주자가 이것을 공자가 일러주는 배움의 순서라고 해설하였을까?


그것은 우리가 내내 공부하며 공자의 가르침에서 익혔던 배우고 익힌 후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실천하는 것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매번 강조하고 말했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의 내용이 궁극적으로 성인(聖人)이 갖춘 지인용(智仁勇)으로 환치되었음을 고급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라는 일종의 힌트와 같은 것이다.

당연히 배우고 익히는 것은 제대로 알기 위함이니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장에서의 설명대로 미혹되지 않을 정도의 배움을 갖춘다는 것은 ‘불혹(不惑)’인 마흔이 되어서야 인생의 경륜과 융화되면서 이룰 수 있는 경지임을 잘 새길 필요가 있다. 


즉, 앞의 원문과 그 설명에서는 내가 지(知)라고 쓰고, 다시 부연 설명할 때 지(智)라고 쓴 것은 이 개념이 여기서는 넓은 의미로 모두 포용하는 지평의 확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지(知)라고 쓸 때는, 배워서 아는 ‘지식’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고 지(智)라고 쓸 때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지혜를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배우고 익힌 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온전히 인생의 경륜과 융합시킨 단계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첫 번째 그렇게 배움의 단계를 다지고 나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수양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인(仁)이라는 것은 결국, 천리(天理)로서 사욕(私慾)을 이겨낼 수 있는 단계의 것으로 응축된다. 이 장의 내용을 반대로 환치하면 어질지 못한 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근심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질지 못하다고 해서 왜 근심하는가? 아니, 무엇을 근심하는가? 배우는 이들이 그와 같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주자가 힌트로 내놓은 것이 바로 사욕(私慾)이다. 본래 배우고 익힌 것을 수양하는 과정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옳다고 여기는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내가 가진 본성을 온전히 제어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억누르거나 거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단계의 경지이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천으로 행하기 위해 마음에 새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본래 가지고 있는 사욕(私慾)의 본능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온전히 굴복시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단계가 될 때까지 수련하는 것이 바로 수양이다.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한 이들, 즉, 사욕(私慾)을 위해 배우고 익힌 것을 활용한 자들은 자신들의 부정이 밝혀질까 봐 두려워하고,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자가 나타나 자신의 알량한 지위가 무너지고 빼앗기지 않을까 싶어 내내 두려워하고 근심한다. 

근심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자신이 움켜쥔 그것이 정당한 방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짊(仁)을 얻게 되어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면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면 된다. 그런데 왜 배우고 익힌 것을 수양하여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용기와 관련이 된단 말인가? 의아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을 겪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해가 되는 말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 지식이 지혜가 되는 단계를 얻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본성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단련하고 수양한 자가 이제 실생활에서 그것을 그대로 행하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주변 사람들이 그와 똑같은 경지라면 그가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주변엔 그와 비슷한 사람보다는 사리사욕을 추구하며 늘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다른 사람의 것을 어떻게 서든 탐하고 그를 끌어내려 자신이 올라갈 기회를 보는 자들 뿐이다. 그런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올바른 소리로 자신을 꾸짖고 올바른 행동으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양심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고, 그나마 그런 양심도 없는 자들은 머리로는 지식을 담아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이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고 불쾌하다. 


특히 그들이 다수일 때, 그들은 자신들의 부정과 어둠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만드는 존재를 빨리 사람들의 눈앞에서 치워버리고자 한다. 한시라도 그와 함께 있는 것이 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실생활에서 배우고 익힌 바를 수양을 통해 구현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눈총과 질시, 심지어 린치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래서 그것을 실생활에 구현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주자의 해설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행동과 자신의 그렇게 행하고자 하는 기운 자체가 道義(도의)에 배합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칫 그저 단순무식 용맹한 것으로 오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주자가 풀어서 해설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장에서 성인의 경지라고 여겨지는 이 세 가지 덕목이 결국 이제까지 그렇게 강조하고 매번 이야기했던 학문의 궁극적인 순서라는 고급과정의 깨우침을 주자는 배우는 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국민들은 도무지 관심도 없고 알 필요도 없을 ‘검수완박’이라는 기괴한 신조어를 가지고 연일 뉴스가 시끄럽다. 국회의원도 그렇고 검찰간부는 물론이고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아니 심지어 검찰 수사관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결코 배움이 짧은 자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이는 행동이 이 장의 가르침에 맞는지 당신은 공부를 통해 상세히 살펴보고 시비(是非)를 가리는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다.

기어코 이번 달 내로 통과시키겠다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파란당과 현실적으로는 막기 어렵지만 이것을 통해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끼치게 하고 자신들이 여당이 되었음을 못 박고 싶어 결사반대로 잔머리를 굴리는 빨간당의 모습은 점입가경으로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한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황당한 헛소리와 뻘짓을 통해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사람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 당신이 놓치고 넘어갔을 어이없는 사례이자 이 장을 이해하는데 아주 적확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어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검수완박’을 통과시키기 위해 파란당은 거의 당의 사활을 건 듯 밀어붙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처럼회’라고 하여 주로 법을 전공한 판사 및 변호사로 구성이 된 초선의원들로 이루어진 돌격조가 그 행동대장 역할로 선두에 서고 있다. 


그런데, 복잡한 국회 내의 법안 통과를 위해 무소속(이라고 쓰고 파란당 소속이라고 읽는) 여자 국회의원을 사, 보임이라는 국민들에게는 다소 어색한 용어로 법사위에 집어넣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서류상으로 그녀는 무소속이기 때문에 파란당에 속해 있지 않다는 이유를 활용(?)해서 강행처리를 위한 포석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어제 그녀가 사고(라고 쓰고 뒤통수, 혹은 등에 칼 꽂기라고 읽는다)를 치고 말았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데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유력한 카드라고 배치했던 그녀가 ‘검수완박’에 반대한다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처리 반대 입장문’라는 해괴한 문서를 버젓이 내놓고 장자연 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커밍아웃(이라고 쓰고 ‘본색을 드러내다’라 해석한다.)을 해버린 것이다.


그 인터뷰에서 그녀는 “정치를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에 따라 반대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며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에게)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또 다음과 같이 사족을 덧붙였다.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모른다. 법사위에 오고 나서 여러 번 회의를 하는데 말이 안 됐다. 나름 공부 열심히 해서 질문도 많이 했는데, (민주당 내 강경파인) ‘처럼회’ 이런 분들은 막무가내였다. 입장문이 유출되니까 내가 국민의 힘에서 (대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자리를 약속받았다고 하는 말까지 나오더라. 너무 황당했다.”


어떠한가? 당신의 눈에는 그녀가 양심선언을 하며 제대로 된 정치인으로서 잘못된 무리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밝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인으로 보이는가?


당신에게 정보가 부족한가? 그녀는 당신에게 그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말을 쏟아냈다.


“대충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법안을 공부했고, 이렇게 강행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오늘내일 사이에 바로 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 생명을 걸고 하는 말이다.”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내 정치생명을 건다’라는 말처럼 공수표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다. 이제 초선인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그녀가 보이는 행동은 초선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능수능란함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이다.


그녀가 듣보잡일, 대부분의 발검 스쿨 학도들에게 그녀에 대한 정보를 조금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그녀는 전라도 깡촌 출신으로 상고를 나와 삼성 반도체 연구‘보조원’으로 취직했다가 어깨너머로 심부름을 하면서 익힌 기술과 처세로 무려 삼성의 임직원(상무)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다. 거기서 그쳤으면 그녀가 갑자기 국회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후 문재인이 당대표를 하던 2016년 신년 벽두에 영입 인재 대우를 받으며 당당하게 파란당에 입당한다. 그녀의 악착같았던 상고 출신 여자 삼성 임원이라는 스토리텔링이 그녀를 정치 입문까지 이끈 것이었다. 


그렇게 그해 4월 현재 지역구에 후보로 전략공천을 받아 나서지만 천정배라는 벽에 어마어마한 표 차이로 대패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번 올라간 정치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스토리텔링으로 전국여성위원회 위원장(겸 최고위원)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듬해 연말에 다시 광주시장 선거까지 나섰지만, 경선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또 물러선다. 그리고 이듬해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원장(차관급)으로 임명된다. 그렇게 그녀는 결국 4년을 보내고 이전 선거에서 천정배라는 큰 벽을 무너뜨리며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굳이 그녀의 프로필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당신이 배움을 통해 시비(是非)를 가릴 안목을 갖게 되었는지 시험해보라는 의도이다. 그녀는 그렇게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무소속이 되었다. 


왜? 지역구 사무실에 그녀의 외사촌을 당당히 등용했는데 그가 사무실 여직원을 성폭행한 사건이 형사사건으로 크게 비화되면서 그 책임을 물어 제명해버린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도 당에 떠밀려 사과하면서 성폭행을 끝까지 ‘성추행’이라고 표현하여 여기저기서 욕을 먹었다.


정작 숨겨진 행간은, 그녀가 지금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스토리텔링, 삼성의 상고 출신 여자 임원이라는 것이 양날의 검이었다는 것이다. 기억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그녀는 반도체 연구보조원으로 시작해서 그 분야의 상무가 되었다. 반도체 연구원들이 그 업무 때문에 얻게 된 백혈병을 수년간 보상하지 않아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항의하는데, 임원급 책임자로 나와서 ‘귀족노조’라는 둥, ‘피해자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은 나서지 마라!’라는 말을 한 것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삼성 부회장을 옹호하는 발언부터 현 삼성 임직원과 돈독한 사이임을 국회에서 시연하며 역시 욕을 먹었다. 

당신에게 묻는다. 만약 파란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하더라도 그녀는 위와 같은 퍼포먼스를 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어제 배웠다. 날이 추워지면 송백(松柏)인지 잡초인지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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