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되지 마라.

너의 한계를 네가 긋지 마라.

by 발검무적
子曰: "君子不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글이 짧다.

고문은 글이 짧을수록 함축된 의미가 많아져 해석이 다양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해석을,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이해하기 쉬우라고 하는 최대한의 배려이고 힌트이다.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이렇다.

밥그릇은 밥그릇으로서의 용도 한 가지만 사용될 뿐,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찬 접시에 밥을 떠서 먹지 않는 것처럼 그릇은 그 원래의 용도가 정해져 있으니, 사람이 학문을 하고 덕을 닦아 어느 정도 이상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그 어느 곳에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공을 묻는다.

이상한 것은 아니다.

외모를 보고 체육 관련 전공일 것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긴 했지만

사람들은 교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전공을 했는지 묻곤 한다.

쓸모없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직업으로

먹고살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 질문은 의미가 없다.


전공이라고 해서

그 전공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그에 합당한 답변을, 혹은 응대를

해줄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공자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목표점을 제시해준다.

대강 한 단계 한 단계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최종 지향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군자'라는 말이 나온다.

자칫 놓치기 쉬우나 이 글의 방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자라는 주어를 그저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인군자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전인류에서 몇 명 안된다.


그 구체적인 군자의 능력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 글에서는 제시하고 있다.

어디에 가져다 놓더라도

쓰임이 있는 사람이 '군자'라는 것이다.


공무원이랍시고

입만 열만 '업무분장'을 노래하며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처럼

군자는 고사하고 '사람'이라고 할만한가를

논하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지금 10대라면,

아니, 20대라면

최소한 '늙었다'는 표현을 쓸 나이가 아니라면

당신은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지식을

숨 쉴 틈 없이 당신에게 쏟아부어 넣어줘야만 한다.


지식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명상과 철학은 공허한 담론일 뿐이다.


당신이 지금 아이들의 부모이고

조금 나이가 먹은

30대나 40대라면

여전히 당신은 당신이 부족한,

그리고 필요한 부분의

지식을 숨 쉴 틈 없이 쏟아부어 넣어야만 한다.


그 지식이라는 것은

당신이 읽는 책일 수도 있고,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고

시대가 변하였으니 드라마나 영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새로운,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나이가 먹을수록 그것이 효율적 집약성에 의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이미 나이가 든 50대와 60대라고 한다면

그저 인생을 소일하고 찬찬히 음미하고 그래도 되지 않겠느냐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당신은 최소한 20~30년을 더 살게 될 것이다.

오늘 그렇게 살다가 내일 죽을 것인가?

당신이 어디에서 어떤 용도로 발탁되고 등용되는지

그것이 곧, 당신 삶의 궤적이 될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멋진 삶을 살고 싶다는

인간의 본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당신은 끊임없이 당신의 활용범위를

그 지평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당신의 대학 전공 분야에서조차도

전문가가 아니면서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일인자 레벨에 들지 못하면서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고단하지? 라던가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라던가

하는 쓰잘데기없는 피해자 코스프레 같은 거

할 생각 하지 마라.


당신의 한계를 당신이 스스로 긋는 짓을

하지 말란 말이다.


기왕 한 번 사는 삶이다.

그릇된 삶을 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