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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16. 2022

처음 차린 회사가 기술 도용으로 공중분해되고 말았지만,

미국 회사를 카피해가며 그들을 위협하는 대륙의 실력자로 올라서다.

222번째 대가의 이야기.


1969년, 중국 후베이 성 셴타오 시 출생으로 쟈오완 촌에서 9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창의력이 뛰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여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발명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홉 살이 되던 해 그의 집은 시내로 이사를 갔다. 젠써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멘양 사범부속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지역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멘양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87년 7월 대학 입학시험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고 우한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을 제공했다고 그가 이후 이야기했던 <실리콘밸리의 불>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난 그는 스티브 잡스에게서 많은 것을 느끼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부라면 어려서부터 늘 최고로 인정받아왔던 그였기에 대학에서도 역시 총명하고 능동적이고 우수한 학생으로 교수들의 총애를 받으며 최고의 성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불과 2년 만에 졸업에 필요한 대학 4년의 전 과정을 마치고 2학년 때에는 이미 바이러스 백신 전문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후베이 성 공안국에 초빙되어 강의를 할 정도로 실력과 명성을 갖춘 인물로 성내의 천재로 불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2학년 때부터 우한 전자상가에서 현장 실무자들과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인 교류와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야말로 그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실질적인 제품의 상용화를 바로바로 실험해볼 수 있는 그의 인생에 있어 상당한 자양분이 되었던 시기라고 그는 회상하였다. 


대학교 4학년 때 전자상가에서 만난 훗날 킹소프트의 부회장이 되는 왕촨궈와 리루슝과 함께 중국어 입력 시스템인 진산 한카를 모방한 제품을 발명해 '싼써(三色)'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이 회사는 이른바, 영어 대신 중국어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업체에게 기술을 도용당한 후 공중분해되고 만다.

중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인으로, 마흔한 살에 샤오미를 창립하여 회장 및 CEO를 맡고 있고, 샤오미와 더불어 킹소프트와 UCWeb의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레이쥔(雷军; Léi Jūn)의 이야기이다.


2010년 7명의 파트너와 공동 창업한 후, 2011년 9월 샤오미 M1을, 2012년 10월 샤오미 2세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성공신화를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있다. 


한 때는 중국 내 스마트폰 1위, 세계 스마트폰 4위를 기록하면서 기업 가치를 높여나갔다. 성장 속도면에서도 가히 폭발적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급성장을 기록하며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되는데, 세계 최고의 IT기업들이 창업 후 이룬 성과 대비 시간과 비교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급성장 속도와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마화텅 텐센트 CEO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초기 '대륙의 실수'라고 비아냥을 받던 처지에서 지금은 세계적으로 '대륙의 실력'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실패를 맛본 레이쥔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다. 주위의 부추김으로 허영심만 가득했던 것이 실패 이유라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을 조기 졸업한 이듬해 ‘프로그래머로서의 꿈’을 위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과학연구소를 떠나 킹소프트에 입사하며 절치부심 자신의 실패를 만회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PC용 오피스와 백신 프로그램을 만드는 킹소프트에서 두각을 드러낸 레이쥔은 입사 6년 만인 1998년 킹소프트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킹소프트의 대표로 재직하며 동시에 온라인 서점인 '조요'를 창업해 아마존에 매각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보여줬다. 킹소프트에 재직하며 레이쥔은 회사를 세우고 경영해서 성공으로 이끄는 방법을 스스로 깨쳤다.


그렇게 킹소프트의 상장에 크게 기여해 2007년 킹소프트에서 가장 빛나는 한 해를 맞이했지만, 그는 돌연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 눈에는 갑작스러운 퇴사였겠지만 그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퇴사 이후 그는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는 퇴사 전, 2004년 제삼자 지불 플랫폼으로 사업을 시작한 라카라에 처음으로 투자를 했다. 그 이후 리쉐링이 창업한 '뒤완'이라는 기업에 개인 명의로 1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는 그가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사업이었다. 퇴사 직전 2006년에는 렌샹 투자회사 부회장 위융푸의 추천으로 UCWeb에 투자했다. 퇴사 후에는 UCWeb의 CEO를 맡기도 했다. 위의 회사들 이외에도 여러 회사에 투자를 하며 엔젤투자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했다. 


모바일 의료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하오다이푸,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따지에왕, 모바일 회사 예커, 신발 쇼핑몰 러타오 등등 그가 투자한 기업 모두 몇 년간의 발전을 거쳐 성공적인 기업이 되었다.

엔젤투자자로 활동하며 레이쥔은 인터넷, 모바일, 전자상거래, SNS 등이 IT 시장의 새로운 대세로 떠오름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과 모바일 운영체제였다.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격언을 되새기며 자신과 함께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기회에 올라탈 파트너를 찾아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린빈 구글 차이나 엔지니어링 총괄, 저우광핑 모토로라 중국 R&D 총괄, 리우데 베이징 과학기술대 산업디자인학부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지를 모았다. 이후 쟁쟁한 창업자들의 면면을 보고 테마섹홀딩스, 퀄컴, IDG 캐피털 등 유명 벤처캐피털과 회사들이 샤오미에 투자를 단행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그의 계획 중 하나였다.


레이쥔은 2007년 퇴사 후 일상이 한가해지고 앞으로의 방향을 잃어버리며 방황했다. 그에게 이른 은퇴로 인한 한가한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UCWeb의 CEO 요청에 응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삶이 계속되던 중 2009년 12월 16일 레이쥔은 베이징의 한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를 빌려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자신의 처지를 모두 털어놓고 그날 밤 생각해보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찾게 되는 발판을 마련한다. 즉,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뒤흔드는 비즈니스 청사진을 위한 중요한 한 획을 긋기로 그의 생각과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정한 것이다.

레이쥔은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스마트폰으로 정한 후 그 사업을 위해 능력 있는 멤버들을 찾아 총 7명으로 구성된 이른바 '드림팀'을 꾸리게 된다. 


그는 스마트폰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전 샤오미만의 특성을 갖춘 MIUI(안드로이드에 기반한 변형 운영체제)와 미랴오(모바일 SNS 플랫폼)를 개발해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 진출하는 데 두 개의 중요한 수단을 마련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은 사실상 레이쥔이 모바일 인터넷 분야로 진출하는 매개체였다는 사실이다. 즉, 처음 창업후 레이쥔과 샤오미가 주력한 분야는 소프트웨어였다.

 

‘미우이(MIUI, 미 사용자 환경)’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 기반 커스텀 펌웨어를 선보였다. 그러나 레이쥔의 진짜 목표는 스마트폰 하드웨어였다. 2011년 미우이를 기본 탑재한 최초의 스마트폰 ‘Mi1'을 선보이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2011년 8월 16일 샤오미 스마트폰을 정식으로 발표하고, 2012년 5월 18일 샤오미 청춘판 스마트폰, 2012년 10월 샤오미 2세대를 차례로 발표하며 샤오미의 영향력을 펼쳐나갔다.


샤오미는 중국어로 ‘좁쌀’을 뜻한다. 좁쌀만한 스마트폰 제조사였던 샤오미는 이제 중국을 넘어 인도, 브라질, 동남아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애플과 삼성전자를 흉내 내는 저가 브랜드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샤오미 로고의 ‘Mi’는 ‘Mobile Internet’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로 ‘Mission Imposibe’을 포함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샤오미가 창립 초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도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샤오미는 ‘모두를 위한 혁신’이라는 비전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고품질의 제품에 모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또 샤오미 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제품 개발에 있어 샤오미 팬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다는 것이다. 


팬들의 피드백을 제품 영역에 적용시켜 제품들을 출시한다. 샤오미를 대표하는 문장 또한 ‘Just for fans’ 일만큼 모든 과정을 샤오미 팬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중요시한다. 실제로 샤오미의 많은 직원들은 입사하기 전 샤오미의 팬들이었고 그들 모두 한 팀으로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선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샤오미 스마트폰의 가장 큰 강점은 저렴한 가격에 쓸만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른바 가격대 성능비)이었다. 당시 중국시장에는 수많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난립하고 있었지만, 삼성전자나 애플만큼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선보이는 업체는 없었다. 레이쥔은 샤오미의 스마트폰 품질을 둘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제품 가격을 1900위안대로 낮춰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가격은 4000위안에 달했다.


샤오미가 이렇게 저가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온라인 유통이다. 오프라인 유통을 중시했던 경쟁자들과 달리 자체 온라인 쇼핑몰인 '미 닷컴'을 통해 제품을 유통해 오프라인 상점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절감한 비용을 제품 가격을 낮추는데 활용해 가격 우위를 확보했다.

샤오미의 마케팅 전략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샤오미의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고객 참여’이다. 샤오미는 800만 명이 넘는 ‘미펀(Mi fan)’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샤오미 제품의 열렬한 추종자들로, 샤오미의 신제품을 출시와 동시에 구매한 후 사용기를 인터넷에 올려주었다. 


이들의 사용기가 입소문이 되어 중국 내 사용자들 사이에서 샤오미 제품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또한 이들이 제품 사용기에서 지적한 불만과 단점은 레이쥔과 샤오미가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레이쥔은 실리콘밸리의 우상인 스티브 잡스와 당시 중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던 애플을 흉내 내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이 때문에 '짝퉁 애플'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우이의 사용자 환경은 애플 iOS와 매우 흡사했다. 샤오미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는 점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닮아갔다. 

심지어 레이쥔은 자사의 신제품 발표행사에 잡스처럼 청바지에 검은 터틀넥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레이쥔과 샤오미는 2014년, 마침내 삼성전자와 애플을 제치고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 1위라는 대업을 달성한다.


한창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가고 있던 샤오미는 2015년에 들어 중국 국내와 해외에서 경쟁자와 특허라는 두 가지 복병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무엇보다 위협적이었던 것은 중국 내에서 샤오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경쟁자들의 부상이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난립하던 중국 내 스마트폰 제조사는 2015년에 들어 삼파전으로 정리되었다. 화웨이, BBK, 그리고 샤오미였다.

스타트업이라 아무런 기술이나 인프라 없이 스마트폰 제조에 뛰어든 샤오미와 달리 화웨이와 BBK는 오랜 자신들만의 기업경영 네트워크와 노하우 영업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곧 경쟁 우위에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웨이는 샤오미보다 기술력이 뛰어났다. 네트워크 장비 판매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자체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마트폰의 핵심부품이다)를 개발하는 등 삼성전자 못지않은 기술역량을 보여주었다.


BBK는 샤오미보다 생산 역량이 월등하게 뛰어났다. 1995년에 설립된 BBK는 원래 TV 셋톱박스, MP3 플레이어, 오디오, 헤드셋 등을 생산하는 전자기업이었다. 


광둥성 등에 대규모 공장을 보유한 BBK는 샤오미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스마트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샤오미는 태생적 한계에 봉착하며 고급 제품군에서는 화웨이에게 밀리고, 저가 제품군에서는 BBK에게 밀리는 이른바 샌드위치 양상으로 치이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샤오미는 나름 자신만의 특장점이라고 여겼던 소프트웨어 역량으로 이들과 경쟁하려 했으나, 그것마저도 곧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제 아무리 독자적인 사용자 환경을 만들더라도, 결국 안드로이드에 신기술을 추가하는 것은 구글이라는 글로벌 대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샤오미는 화웨이와 BBK에게 중국 시장점유율 1위와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주저앉고 만다.


해외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특허라는 원천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유럽과 같은 글로벌 주요 시장에 진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은 중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정책적으로 막고 있었고, 유럽은 에릭슨과 같은 거대 통신 기업이 특허를 토대로 샤오미의 진입을 막았다. 심지어 샤오미의 최초 해외 진출 시장이던 인도에서조차 에릭슨에게 특허 소송을 당해 판매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특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사의 최초 투자자이자 세계 최대의 통신 칩셋 제조사인 퀄컴과 특허 이용 계약을 맺었지만, 이 역시 제품 가격 인상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원래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는 자사의 특허를 바탕으로 경쟁자와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어 특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화웨이의 경우 자사가 보유한 많은 네트워크 특허를 방패로 이용하거나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는 무기로 활용해 해외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샤오미와 달리 화웨이는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무기 삼을 것이 없던 샤오미는 결국 동남아, 중동, 브라질 등 특허 없이도 진출할 수 있는 제3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십수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두 가지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샤오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레이쥔은 당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플,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스마트폰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해외 진출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홍콩증시에 상장한 샤오미가 한때 1000억 대 시가총액을 보유한 기업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500억 대 시가총액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 사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샤오미가 망하지 않고 오히려 최근 애플도 고전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까지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레이쥔이 결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끊임없이 모색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마트폰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면, 그는 굳이 그것 말고도 다른 사업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2015년에 들어서며 샤오미는 사물인터넷 사업을 본격화했다. 2017년 말을 기준으로 샤오미가 선보인 스마트 기기는 200종이 넘는다. 


스마트 TV, 노트북, 에어컨,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부터 스마트워치, 전기스쿠터, 액션캠, 짐벌, 드론 등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제어할 수 있는 온갖 첨단 IT 기기를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샤오미의 사물인터넷 서비스에 등록된 기기의 수는 8500만 개가 넘는데, 이는 단일 사물인터넷 서비스로는 세계 최대의 수치이다.

이른바, ‘샤오미 허즈’라는 것을 통해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샤오미 허즈는 OTT TV의 하나로 텔레비전을 이용해 인터넷 콘텐츠의 수신과 방송을 구현하는 셋톱박스를 의미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PC와 텔레비전을 연결해 텔레비전이 모니터 역할을 하게 한다. 여러 기기들 및 여러 회사의 콘텐츠 등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점을 통해 샤오미 허즈가 레이쥔이 구상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로 구성된 샤오미 생태계를 실현할 연결고리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샤오미 생태계 구축을 위한 밑그림으로 택한 그의 전략은 바로 ‘레이쥔계 기업’이다. ‘레이쥔계 기업’은 레이쥔이 몇 년에 걸쳐 키워온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계열사들을 말한다. 샤오미 스마트폰을 켜면 레이쥔계 기업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들을 접할 수 있다. 


기업들은 손쉽게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고 사용자는 인터넷 접속, 쇼핑, 오락 등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 쇼핑몰, 모바일 인터넷, 인터넷 통신, 커뮤니티, 소프트웨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레이쥔 계 기업이 포진하고 있다. 이는 다른 인터넷 대기업들이 갖추지 못한 훌륭한 네트워크이다.

이런 점에서 샤오미가 사물인터넷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샤오미를 통해 모든 삶이 연결되고 더욱 스마트한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샤오미의 미래 전략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샤오미의 팬, 미펀(米粉)이다. 


그들의 입소문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고,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질의 제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레이쥔은 미펀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 힘을 알기에 회사의 실적보다도 사용자 즉 미펀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현재 샤오미는 스마트폰, 샤오미 허즈 이외에도 헬스 케어, 웨어러블, 스마트 자동차, 스마트홈 등 우리 생활과 관련된 전 분야로 그 영역을 신속히 확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샤오미를 통해 우리의 모든 생활이 스마트하게 되도록 한다는 레이쥔의 전체 그림의 과정이다.


작년 말, 중국 매체 <텅쉰왕>에 따르면 레이쥔은 샤오미 자회사 대표 또는 이사직에서 거의 물러났다. 이는 전기자동차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는 기후위기를 맞은 지구에 가장 적합한 친환경 자동차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 그룹 또한 수소차 기술개발을 중단하고 전기차 개발에 올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이 적게 들어가고 구조가 단순해 IT 기업들이 속속 진출을 선언하는 분야이다. 앞서 아이폰 제작 회사로 유명한 폭스콘을 비롯해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 중국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바 있다. 물론 가장 주목받은 것은 가공할만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진 애플의 전기차 진출 계획이다.


이미 2021년 샤오미는 홍콩 증권거래소에 공식 공고를 내고 전기차 진출을 선언했다. 


레이쥔 CEO는 전기차 프로젝트에 향후 10년간 100억 달러(약 11조 9600억 원)를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레이쥔 CEO는 “제 인생의 마지막 주요 기업가적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며 “기꺼이 모든 개인적인 명성을 걸고 샤오미 스마트 전기차의 미래를 위해 싸울 것이며 성공을 위해 팀을 이끌어 도전하기로 결심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올해 11월 홍콩 언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등에 따르면 샤오미는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베이징 산업단지공단인 베이징 이 타운(Beijing E-Town)에 연간 1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전기차 공장 2곳을 세울 예정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웨이보 공식 계정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애플은 자사 전기차인 애플 카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좀처럼 협력사를 찾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 세계 3위 샤오미가 2024년 예정대로 전기차를 출시한다면 중국 시장의 막강한 소비력을 담보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판세를 바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점차 기울어져가는 중국의 상황과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코로나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는 여전히 경직된 상태로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 각 나라 간에 힘겹다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호황이어도 망하는 기업이 있는 것처럼, 불황에 어렵다고 죽는소리를 하는 와중에도 살아남는 기업들은 있다. 그 차이는 그동안 모아둔 실탄의 차이가 아니다. 그 기업을 운영하는 운영자의 마인드에 따라 생사를 달리하는 것이다.


엊그제 레이쥔은 자신이 직접 샤오미가 베이징에 짓고 있는 무인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통해 내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 자체 생산량을 크게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엊그제 그가 밝힌 공장 가동 계획

중국 언론 <환치우왕>에 따르면 레이쥔은 개인 소셜미디어에서 ‘샤오미의 스마트 공장 제2기가 내년 말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스마트 공장에서 연 1000만 대의 하이엔드 스마트폰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샤오미가 베이징 이좡에 짓고 있는 ‘샤오미 창핑 스마트 공장 2기’ 공장은 앞서 이좡에 건설한 1기 공장과 함께 연구개발과 양산이 함께 이뤄지는 스마트 공장으로 꾸려진다. 그는 이미 1기 공장에 대해서도 ‘실험실급의 공장으로 대부분의 장비와 시스템이 샤오미 혹은 샤오미가 투자한 회사에서 직접 개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불리한 전황에서도, 세계적인 불황속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먹거리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변신해왔다. 물론 그의 시도가 언제까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가 해온 방식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자신의 생존 방식과 앞으로의 비전을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대륙의 실수에서 대륙의 실력으로

당신은 어떠한가?


코로나라서 어려웠고, 세계적인 불황이라 어렵고, 또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다들 사는 게 팍팍해졌으니 나도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누구나 다 그것을 이겨낼, 극복한 재주 따위는 없다며 여전히 소주잔을 기울이고만 있지는 않았나? 

당신이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라. 이미 늙었다고 은퇴하고 연금으로 먹고살고 있다고 인생 다 산 사람처럼 TV를 보며 정치인들이나 욕하며 사는 게 당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이미 지잡대 나와 이전 생은 망해서 내세울 것도 없는데,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기만 해도 그게 어디냐며 생각하다가 겨우 들어간 회사에 변변치 않은 월급에 처우를 생각하며 내내 그저 그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없으면 어쩔 수 없으니 대강 받은 만큼 그 이상은 절대 일하지 않을 거라며 근근이 죽지 않고 사는 것이 당신의 삶의 어디를 빛내줄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당신은 아직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까지 딱 고 모양 고 꼬라지로 있는 거다. 올라가고 싶은 자는 위로 고개만 쳐들고 입만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변하고 싶은 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이 알아서 변해주길 바라며 그 변화에서 자신도 콩고물이나 얻어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을 ‘거지근성’ 혹은 ‘누워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길 바라는 도둑놈 심보’라고 부른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면 가르치겠으나 이미 알면서 그런 심보라면 당신의 삶이 개선될 여지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변하지 않고서 변화하는 세상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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