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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17. 2022

왜 공자는 붕우 간의 의리를 중시했을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의 시작은 결국 친구이다.

朋友死, 無所歸, 曰: “於我殯.” 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
朋友가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殯하라.” 하셨다. 朋友의 선물은 비록 수레와 말이라도 제사 지낸 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않으셨다.

이 장은 공자가 붕우를 사귀는 의에 대해서 기록한 것으로,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붕우를 대함에 가장 기본적인 본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사례는 친구가 죽었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경우 자신의 집에 빈소를 차리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친구 사이인데 그 정도 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 당시 장례에 대해 잠시 상세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문에서 ‘殯’이란 당시에 있던 초분의 관습에서 발전된 것으로 이른바 정식 장례에 해당하는 ‘장(葬)’이전의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는데, 천자, 제후, 대부는 각각 7, 5, 3개월간, 士(사)는 2개월간 관을 빈소에 두었다. 다시 말해 흔히 말하는 3일장이나 9일장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한 달 이상이나 시신을 집에 두고서 장례의 예비 단계를 거치는 것이라 그리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현실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친구는 이미 죽어서 그 친구를 위함이 아니라 그 친구의 가족과 친지를 위한 일을 가족과 같이 맡아준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행동으로 자신만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이 모두 동의하고 따라주지 않으면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의외로 아주 간단하고 쿨하게 다음과 같은 주석으로 그렇게 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붕우는 의리로써 합하였으니,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으면 殯(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朋友의 선물은 비록 수레와 말이라도 제사 지낸 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군주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받으면 늘 사례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왜 친구에게 선물을 받을 때는 절을 하지 않았는가?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 해설하고 있다.


붕우 간에는 재물을 통하는 의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수레와 말의 귀중한 물건이라도 절하지 않고, 제사 지낸 고기이면 절하는 것은 붕우의 祖 · 考(조 · 고)를 공경하기를 자기 어버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해석이 다소 애매할 수 있는데, 위 주석에서 ‘재물을 통하는 의’라고 내가 번역한 부분은 현대어로 의역을 하자면, 친구 사이에는 예를 갖추고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니꺼 내꺼에 대한 구분을 하지 않고 공유하는 의리가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제사 지낸 고기를 받으면 절을 했는가? 그것은 친구가 주었지만, 앞서 여러 장에서 보았던 바와 같이 조상에게 흠향했던 것으로 조상의 음식을 받는 것이기에 그 조상을 내 조상과 같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기(禮記)> ‘檀弓(단궁) 편’에 보면, 빈객이 묵을 집이 없자 공자가 “살아서는 내 집을 집으로 삼고 죽어서는 내 집을 빈소로 삼으라”라고 말하는 기록이 보인다. 이 장에서는 살아서 집으로 삼으라는 내용은 빼고 빈소로 삼으란 말만 나오긴 하지만, 굳이 살아서 갈 곳이 없는 붕우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는 이 장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앞서 잠시 언급했었지만, 죽어서 빈소가 없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의미보다는 무연고자, 즉 시신을 수습할 가족 친지조차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런 친구를 받아주는 사람이 살아있는 친구가 갈 곳이 없다고 할 때 어떻게 대했을지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한 모습이라 하겠다.


뒤에 공부하게 될 ‘憲問(헌문)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외출에서 돌아오니 붕우, 原壤(원양)이 와 있었는데 한쪽 무릎을 세운 채로 있을 뿐 禮를 갖추지 않았다. 공자는 “어려선 공손하지 못하고 자라선 도를 이어받음이 없으며 늙어서도 죽지 아니하니, 이는 도를 해치는 자다.”라 하면서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툭툭 쳤다.


본래 당시 사람들은 예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 공자와는 전혀 다른 그를 홀대했었다. 그러나 그런 붕우에 대해 지팡이로 툭툭 치며 야박하게 내치지 않고 거둬주었던 공자의 모습을 보면, 예의를 지키지 않는 자를 향해 당장이라도 일갈하며 혼내지만 할 것이라는 편견을 없애는 모습이다.

‘친구’라는 말이 언제부터 의미가 없어졌는가를 생각해보면, 중국 고사 속에서나 아니면 무협이나 8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누아르에서나 의리, 우정을 찾을 수 있었을 뿐,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그것을 실제 생활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그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돈 없이 망한 친구에게 돈을 꿔주지 않으려고 마누라를 핑계 대는 자의 모습을 그리거나 돈을 위해 언제든 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존재가 가장 믿었던 친구라는 설정으로 그려지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공자의 시대에는 의리와 붕우 간의 우정이 진정하게 살아 숨 쉬던 시대라고 착각하는 이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개념들은 그것을 당시 사람들이 잘 지키고 실천했다면 외치지 않았을 것들이다.


즉, 수천 년 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이익을 먼저 하고 우정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조금 고급자 모드로 들어가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한다. ‘공자는 왜 붕우 간의 우정과 의리를 강조한 것일까?’ 공자는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人而無信 不知其可也).”라고 말하여 인간에게 있어 신뢰가 사람과 사람 간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전혀 관계없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상 뜬금없는 주장일 뿐이다. 즉, 사람과의 기본적인 신뢰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경험했던 사람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남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문에서 말하는 사람, 즉 타인(他人)에 속하지 않는다.


맞다. 가장 먼저 타인이면서 신뢰를 논할 수 있는 첫 번째 관계를 맺는 자가 바로 친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유(交遊)라는 개념에 있어 함께하는 붕우(朋友)는 내가 신뢰를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함께 하게 되는 첫 타인인 셈이다. 공자는 언제나 본질을 중시하고 그 기초가 바로 서야만 외연이 확장되면서 사회가 단단해지고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라는 개념은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장에서 보았다시피 그저 아는 사람을 위해 그의 시신을 몇 달이나 자신의 집에 두고 그 빈소로 쓰라고 내주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신뢰가 쌓인 관계이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두 번째 사례로 물건에 대해 내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 장으로 묶은 것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한 배치이다.


당시 사람들이나 지금의 사람들이나 재물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사람을 배신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보다 재물의 가치를 더 높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 대신에 당신이 어려서부터 함께 지내오며 사귀었던 친구에게 이익을 따지며 선물을 주고받을 때 예를 갖추었느냐고 공자는 역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어려서 함께 뛰놀고 네 것 내 것이 없고 니 부모님 내 부모님 가릴 것 없이 한 마을에서 함께 지내고 학교를 함께 다니고 누구의 집이랄 것도 없이 밥때가 되면 그냥 들어가서 한 가족처럼 식사를 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범죄는 있었고, 배신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끔찍한 반인륜적 범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지는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단지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범죄마저도 발전한 것이라고 묻어버리고 말 일인가에 대해 당신에게 다시 묻는다.


과거에 사람들이 더 순박했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유추 따위는 변명에 그칠 뿐이다. 한 마을에서 내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모든 어른들이 내 부모님과 똑같다고 배우고 인사하고 공손함을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아이들에게 굳이 어른들을 보게 되면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마을에서 자라 니 밭의 농사 내 논의 농사일을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손이 필요하면 언제도 당연히 함께 가서 돕고 일하다 배고프면 함께 식사를 하며 땀을 흘리는 사이에 내 일을 더 시켰고 내가 손해를 보았고 따위의 계산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혈연이 아닐 뿐이지 모두가 가족이고 모두가 형제였는데, 그들이 갑자기 어려운 일일 겪고 갈 곳이 없고, 무연고자가 되어 사고를 당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면 공자가 아니어도 당연히 그렇게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가족처럼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새삼 강조할 부분도 아니었을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오래전 책이나 영화 따위에서나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친구라는 개념은 사전적 의미로 내 고통을 대신 안고 가는 자가 아니라 그저 학원을 함께 다니는 동급생이거나 학교에서 함께 급식을 먹고 농담을 내뱉는 정도의 사이를 일컫는 말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디 친구뿐이던가. 이제는 혈연관계라고 해도 부모님이 없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폭행을 하고,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에게 유산을 먼저 내놓으라며 칼을 휘두르는 반인륜 범죄가 그리 놀랍지도 않아 뉴스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는 시대를 맞이하고 말았다.


친구 간의 우정 중에서도 최고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른바 ‘지음(知音)’이라는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를 판결문에 언급하면서 욕되게 한 판사 법비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동창이었다는 이유로 검사가 된 자가 어마어마한 기업 총수의 뒤를 봐준답시고 술값, 밥값, 자동차를 대주는 것도 부족해서 돈 한 푼 없이 꿔줬다 치고 엄청난 수백억의 돈이 남는 주식거래를 해준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쓴 판결문이었다.

워낙 법비들도 드글거리는 법조계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판결문을 통해 두고두고 법조계에서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서도 그것이 ‘직접적’ 대가성이 없는 것으로 판결하면서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챙겨준 것이므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고 판결문을 쓴 판사가 과연 나중에 자기 자식이나 자기 손주에게 그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할까?


검찰의 쓰레기들처럼 ‘우리는 현직에 있었던 일에 대해 옷을 벗고 나온 시점에 언급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인가? 그 법비의 판결문은 이제 조폭들이 미리미리 십수 년 전부터 경찰간부들을 이른바 관리하게 되면 직접적인 청탁이 아닌 워낙 오래된 형님 동생이고 친구관계이기 때문에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전례가 되고 말았다.


이미 조폭이라는 것이 생기고나서부터 그들은 경찰과 검찰과 심지어 판사까지도 형님 동생이고 학교 다닐 때 샌님이던 전교 1등으로 법비가 된 친구들은 하나둘 있단 말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매번 용돈을 줘가며 자기 업소에 불러서 술 먹고 아가씨까지 접대해주고 같이 뒤엉켜 놀 정도가 되면 이후에 그들에게 법적인 편의를 ‘알아서’ 제공하면 그것을 ‘지음(知音)’이라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 것이냔 말이다.

그런 법비를 판사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자가 과연 그 한 사람이라고 우기고 싶어 하는 법원의, 검찰의 법비들이 정말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당선인이 아닌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지명했던 자에 대해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처음엔 ‘친구’라고 그 흔한 용어로 오래전부터 봐와서 알기 때문에 후보자로 추천한 것 같다가 자식들을 자기가 병원장까지 지낸 의대에 편입시켜가며 대를 이어보겠다고 엄한 짓을 한 것이 언론을 통해 불거지기 시작하자, 말을 바꿔 절친은 절대 아니고 친구라고 하더니, 이제는 더 내려가서 대구로 좌천되었을 때 술을 한잔 하며 사귀게 된 사이라고까지 선을 그었다.

촌에서 나름  그쪽 의료계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그는 이대로 낙마하게 되면 그야말로 개망신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자신에게는 결정적인 문제가 없다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최고 대학 법학과 교수에 SNS를 누비며 스타로 등극하여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법무무장관까지 영광의 길을 걸을 줄 알았는데, 자식 교육을 잘못한 것으로 처와 자식들, 그리고 본인까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의 절친이라며 그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그의 소개로 대학교수라는 직분을 얻은 이가 아직도 전 교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방송에 나오는 것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진정 친구였다면, 방송에서 그를 손절하고 욕하며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말해주고 때려주고 그것과는 별개로 우정으로 그를 위로하는 것은 보이지 않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그가 그의 잘못에 대해 정말로 반성하거나 그 잘못이 사회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왜 나한테 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 모질게 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어느 사이엔가 코미디 프로그램이 공중파에서 없어진 이유가, 아마도 이러한 코미디가 뉴스에서도 수시로 빵빵 터져주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개그맨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그냥 웃기는 일은 개그맨만 할 수 있도록 놔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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