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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16. 2022

무엇을 우선으로 여길 것인가?

‘우선’과 ‘기준’을 올바르게만 해야 한다.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君賜生, 必畜之. 侍食於君, 君祭, 先飯. 疾, 君視之, 東首, 加朝服, 拖紳. 君命召, 不俟駕行矣. 入太廟, 每事問.
군주가 음식을 주시면 반드시 자리를 바루고 먼저 맛보시고, 군주가 날고기를 주시면 반드시 익혀서 조상께 올리시고, 군주가 산 것을 주시면 반드시 기르셨다. 군주를 모시고 밥을 먹을 적에 군주가 祭(고수레)하시면 먼저 밥을 잡수셨다. 질병에 군주가 문병 오시면 머리를 동쪽으로 두시고, 朝服을 몸에 加하고 띠를 그 위에 올려놓으셨다. 군주가 명하여 부르시면 수레에 멍에 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도보로 걸어가셨다.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물으셨다.

이 장은 공자가 군주를 섬기신 예에 대해 세세히 기록한 내용이다. 그저 ‘윗사람을 깍듯이 모셨다’라고 하지 않고 왜 이 세부적인 행동들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며 읽으면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이 길고 상세하기 때문에 주자의 주석을 통해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자.


처음에 나오는 내용은, 군자가 음식을 내린 경우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음식은 혹 餕餘(준여, 남은 음식)일까 염려되므로 조상께 올리지 않는 것이다. 자리를 바루어 먼저 맛보심은 군주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신 것이다. 먼저 맛본다고 말했으면 나머지는 마땅히 나누어주는 것이다. ‘腥(성)’은 날고기이니, 익혀서 祖 · 考(조 · 고, 조부모와 부모)에게 올리는 것은 군주가 내려주심을 영화롭게 여긴 것이다. 기르는 것은 군주의 은혜를 사랑하여 연고가 없으면 감히 죽이지 않는 것이다.


주석에서 ‘남은 음식’일까 염려된다고 한 것은, 완성된 요리를 하사해줬을 경우, 이미 잔치상에 올랐던 음식 중에서 신하에게도 먹어보라고 나눠주는 개념의 음식이라면, 조상에게는 이미 산 사람들을 위해 올려졌던 음식을 올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설명이다.


‘먼저 맛본다’라는 개념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내려준 음식에 대한 성의를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먼저 먹어보는 행위를 상대에게 보이는 것이 예의의 근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날고기를 내려준 것은, 조리되지 않았으니 앞에서처럼 이미 차려졌던 음식임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군주가 내린 것을 영광으로 여겨 조상에게 그것을 자랑스럽게 먼저 보이는 것이다. 

기르는 짐승을 준 것은, 그것을 요리 재료로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존재를 함부로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군주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하면서 그것보다 본질에 가까운 조상에 대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예의나 살아있는 것에 대한 존중 같은 개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윗사람에 대한 존중을 아무런 생각 없이 올리기만 하는 것이 군주에 대한 예의가 다가 아님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군주를 모시고 밥을 먹을 적에 군주가 祭(고수레)하면 군주보다 밥을 먹었다는 내용인데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약간 의아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전례(前例)를 통해 해설한다.


<周禮(주례)>에 “왕은 매일 한 번씩 성찬을 드니, 膳夫(선부)가 祭(제, 고수레)할 물건을 올리고 여러 음식을 맛보면 왕이 그제서야 먹는다.” 하였다. 그러므로 군주를 모시고 먹는 자가, 군주가 제하면 자기는 제하지 않고 먼저 밥을 먹어 마치 군주를 위하여 맛을 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니, 감히 손님의 예를 감당하지 못해서이다.


현대인의 상식이라면 군주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군주가 고수레를 하자 군주보다 먼저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주자의 해석처럼 신하가 군주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손님처럼 동급이라고 여기는 것조차가 참람된 행동이라고 여겨 군주가 먹기 전에 음식을 검열하는 듯이 하는 행동으로 먼저 먹어 보이는 것이라는 설명은 그 예의의 형식이 극존칭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질병에 걸렸을 때, 군주가 문병 오시면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옷을 입어야 마땅하지만 입을 수 엇으니 朝服을 몸 위에 얹고 띠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는 내용인데, 여기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머리를 동쪽으로 두는 것’은 생기를 받으려고 해서이다. 병들어 누워 있을 적에 옷을 입고 띠를 맬 수 없으며, 또 평상복으로 군주를 뵐 수 없다. 그러므로 조복을 몸에 가하고 또 큰 띠를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머리를 동쪽에 둔 이유가 생기를 받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였는데, 병이 낫기를 위함이 아니라 군주가 찾아오셨는데 그때만이라도 제대로 된 기운을 차려 최대한 정신을 차려 예의를 갖추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문병에 대한 내용과 예의에 대한 언급은 ‘옹야(雍也) 편’의 1장에서도 살펴본 바가 있어 자세히 비교하면 좀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 군주가 명하여 부르시면 수레에 멍에 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도보로 걸어갔다는 내용인데,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군주의 명령에 급히 달려가서 걸어 나가면 멍에를 한 수레가 따라오는 것이다.


멍에를 씌운다는 것은, 군주에게서 궁궐에 들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그제서야 쉬고 있는 말에 수레를 얹어 출타할 준비를 하는 것이 수순인데, 명령을 이미 들었기에 바로 준비하여 길을 나섰다는 것을 설명한 것으로, 더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마차 준비하는 동안 명령을 이미 들은 신하가 태만해 보이는 무례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경계의 의미이다.

요즘으로 치면, 관용차가 준비되기도 전에 행여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참람되어 먼저 움직였고 차가 준비되어 뒤를 따르면 그제서야 중간에 마차에 올랐다는 해설이다. 이는 군주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응해야 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강조하기 위해 묘사에 다름 아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붙어 있는 ‘入太廟 每事問’은 이미 ‘팔일(八佾) 편’ 15장에 등장한 바 있는 내용으로 아마도 착간(錯簡)으로 거듭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별도로 다른 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미 앞에서 나온 것을 따로 보는 것은 해석이 조금 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옳다고 보아 다시 해석하지 않는다.




요즘 K-POP과 K-드라마의 열풍으로 한류는 정점을 갱신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하겠다는 외국인들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물론이고 한국인에게조차 어려운 한국어 문법이 하나 있다. 


이른바 ‘압존(壓尊) 법’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압존법이란, ‘높여야 할 대상이지만 듣는 이가 더 높을 때 그 공대를 줄이는 어법’을 의미한다. 예컨대, 할아버지와 함께 있던 손자가 막 퇴근한 아버지를 존칭한답시고 ‘아버지가 퇴근하셨습니다.’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압존법을 잘못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때,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어로 한때를 풍미했던 ‘~님 들어가실게요!’라고 외치던 말처럼, 요즘 젊은 세대나 제대로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던 수많은 일반인들은 압존법에 대해 어려워한다. 압존법이 그들에게 어려운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은 다시 이유를 찾자면, 그럴만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고, 그것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코미디는 심각한 조직에서 일어났다. 다양한 학력과 다양한 계층이 계급이라는 것으로 획일적인 구분을 맞이하는 군대는 그야말로 압존법이 짓뭉개지는 곳에 다름 아니었다. 


당장 자신을 괴롭히는 사수를 언급하며 소대장 앞에서 버릇처럼 존댓말을 쓰는 것은 압존법이고 뭐고 그냥 익숙한 대로 떠들어대는 것이거니와 소대장이라고 하는 친구 역시 그것을 구분하여 가르치거나 잘못을 지적할만한 수준이 되지 않기에 그곳에서는 그냥 되나 가나 아무 말 대잔치가 이루어지고는 한다. 그래서 결국 대한민국 군대에서(심지어 회사에서도) 압존법을 폐지했단다. 폐지가 무슨 의미인가? 어차피 아무도 모르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는데.

왜 공자가 군주에게 보였던 예의를 배우는 장에서 뜬금없이 한국어 압존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한 눈초리로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까 말까 하는 학도가 있어 보이니 왜 내가 갑자기 압존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 설명해주마.


법이라는 것은 형법만 법이 아니다. 예법도 법이고 문법도 법이다. 법이라 함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형법이 그러하듯 법을 몰랐다고 하여 그 법을 어긴 자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법을 왜 만들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법을 아는 자들만이 법을 정해서 그것을 어기는 자들을 처벌하는데 입법의 취지가 있지 않다. 법은 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지키자고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말은, 모두가 그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압존법 역시 처음에 만들어졌던 것은 당연히 의미가 있고 취지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없애버리자는 공감대(이것을 공감대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조차 의문이지만)가 형성되어 없앴다.

가장 고리타분하고 그 의미나 본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형식만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오명을 쓴 것은 유학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원인은 그것을 제창한 공자나 맹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치적인 의도로 곡학아세(曲學阿世)했던 조선시대의 유학자를 가장한 정치꾼들이었음을 내가 앞서 누차 공부하면서 강조한 바 있다.


오늘 이 장에 대해서 공부하면서도 <논어>를 막연하게만 알고 있고, 제대로 단 한번 정독하여 일독을 해보지도 않은 자들이 마치 공자를 이해하고 <논어>를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오독하고 오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 장의 글자 하나하나를 풀어보았지만, 여기에는 무조건 군주에게는 굽신거리고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에 군주가 궁궐로 들라는 명령에 대해 오버(?)하며 마차를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길을 나서는 것이 형식뿐인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공자는 고사하고 아직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감정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초심자 수준에도 닿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슬기로운 사회생활이랍시고 존경의 감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상사에게 아재 개그를 듣고 오버 리액션으로 빵빵 터진 척을 하고 인사를 해도 어디 조폭처럼 술이 떡이 되어 택시에 오른 상사를 태우고 떠나는 차에 대고 90도 인사를 하는 것이 오버인 것이다.

당신이 흠모하고 사랑하는 이에게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나자는 연락이 왔는데, 당신은 천천히 집에서 하던 거 하고, 먹던 밥 먹고, 일정 모두 마치고 움직이나?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면 행동이 그것을 따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인 것이다.


다시 본문을 잘 봐라. 군주가 오라는 명령을 보낸 것이지 군주는 지금 공자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다. 그 말인즉은, 잘 보여야 할 대상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있어서 하는 오버가 아니란 의미이다. 


즉, 본래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 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군주와 식사할 때 감히(?) 군주가 신에게 고수레를 하고 있는데, 그 고수레가 끝나자마자 음식을 먹는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신이 군주와 동급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는 모습으로 독이 든 음식인지를 먼저 맛보는 신하의 대신을 행함으로써 자신이 군주와 겸상을 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음을 보이는 행위인 것이다.


군주에게만이 아니라 공자는 끊임없이 가르침에서 ‘본질’에 대한 ‘기준’을 배우는 자들에게 강조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슬픈데, 절을 몇 번 해야 하는 것이나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한다거나 하는 따위를 먼저 강조해야 한다는 헛된 가르침은 <논어>의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상복을 어찌 해야 하는지를 두고 정치적인 이유로 싸우며 유학을 핑계 댔던 자들 때문에 조선은 결국 썩어 들어가 일제 식민지로 이어졌고, 그 정치꾼들의 전통은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여의도에 있는 것들이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눈곱만치도 선진 정치라는 것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실천하여 보여주고 있는 예는 당신이 이제까지 오해하고 있던 것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 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람으로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의 ‘우선’을 정하는 것이고, 그 우선을 정하는 데 있어 ‘기준’이라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다. 


압존법을 공부해야 할 문법이라고 보았다면 한없이 어렵겠으나, 어려서부터 그것이 몸에 밴 이들에게는 따로 배워야 할 법규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식이 실천으로 일반화되었더라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썩어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임이 이 장에서 보여준 예(禮)처럼 보이지만 본질로 이어지는 가르침인 것을 알아차리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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