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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13. 2022

사람 말고 그 무엇이 중헌디?

‘우리 쪽’ 사람이 먼저다?!

廐焚, 子退朝, 曰: “傷人乎?” 不問馬.
마구간이 불탔는데, 孔子께서 退朝하여 “사람이 상했느냐?” 하시고,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이 장에서는 공자의 집 마구간에서 불이 났던 일화를 통해 공자가 그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廐’는 마구간이다. 학자들은 이것이 과연 공자 개인 소유의 마구간이었던 것인지 조정의 마구간이었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자 집의 마구간을 가리킨다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고 보인다. <예기(禮記)> ‘잡기(雜記) 편’에 보면, 공자가 집의 마구간에 불이 나서 이웃사람이 위문하러 오자 그에게 감사의 절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고증에 도움이 된다. ‘退朝’는 조정에서 공무를 보고 퇴근한다는 의미이다.


주자는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으로 해설하였다.


말을 아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상했을까 두려워하는 뜻(생각)이 많으므로 미처 묻지 못하신 것이니, 사람을 귀히 여기고 가축을 천히 여김에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하는 것이다.


傷人의 해석은 직역하면 ‘불이 사람을 상하게 했는가’인데 나는 주자의 해석처럼 ‘불 때문에 사람이 다쳤느냐’로 풀이하였다. 그런데, 명나라 중엽의 陽明(양명) 즉, 王守仁(왕수인)은 ‘不’ 자를 ‘否’ 자로 보고 ‘傷人乎否’으로 붙여서 풀이하여 주자의 해석과 조금 다른 의견을 보였다.


고문에서는 간혹 不과 否이 통용되기도 한다. 주자처럼 끊으면 뒤의 어구는 ‘不問馬’로 되어 ‘말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주자는, 공자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가축을 천하게 여겼는데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왕양명처럼 끊으면 뒤의 어구는 ‘問馬’로 된다. 그렇다면 공자는 사람이 다쳤는지 묻고 나서 곧바로 말에 대해 물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두 해설을 비교하면, 주자는 공자가 사람과 가축 사이에 큰 차등을 두었다고 보았고, 왕양명은 그런 구분 없이 말도 소중하게 여겨 물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사실, 두 해석의 차이가 워낙 학자들 사이에 유명하여 소개하기는 했지만, 왕양명의 주장처럼 이 일화만으로 공자가 인간과 다른 생물을 차별했다고 확대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자신의 집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인간의 성정상 재산에 해당하는 말이 상했는지를 먼저 묻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불은 재난에 해당하고 사람이 상했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이 당연할 뿐이지, 굳이 그것을 가지고 사람과 말을 차별했다는 식의 해석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히 마구간에서 불이 난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공자 당시에 말이라는 것이 재산적 가치가 상당히 큰 물건에 해당하는 귀중품이었다는 것이 이 장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차이이다. 거기에 대고 공자가 말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인간만 소중하게 여긴 것은 만물을 공평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어쩌다 토를 다는 것 자체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여 아무리 개와 고양이를 가족처럼 여긴다 하더라도 인간을 아끼는 마음과 경중의 차이는 분명히 있어야 분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차별이라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고 오버인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지난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된 문구이다. 그런데 결국 그 문구 앞에 ‘우리 쪽’이라는 문구가 생략되었다는 것만 증명한 채 국민들의 차가운 단죄를 받고 지난 정부는 문을 닫았다. 문제는 새롭게 업무를 시작한 새 정부 역시 사람만 바뀌었지 그 캐치 프레이즈를 더욱 강화된 형태로 유지하려 드는 것 같아서 시작부터 한숨을 자아낸다.


인사권자의 인사(人事)는 많은 메시지를 포함한다.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공공연하게 강조했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이 그러하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뽑은 인물에 대한 숨은 이야기가 인사권을 행사한 이의 사고방식과 앞으로 5년간의 국정운영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른바 ‘유오성 간첩조작 사건’은 국정원과 검찰의 흑역사 중에서도 아주 대표적인 개망신 사례로 기록된 유명한 사건이다.

사건의 시작은 2012년 11월에 시작된다. 

화교였던 신분으로 탈북하여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유오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를 국정원에서 감금하고 그의 오빠가 탈북자들의 명단을 북한에 넘긴 간첩이라는 거짓 사실을 진술하라며 협박하였다. 결국 2013년 당시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유우성 씨는 그해 2월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재판이 열리게 되면서 동생 유가려 씨는 국정원이 6개월 동안 자신을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감금했고, ‘오빠가 간첩’이라는 증언을 하라고 회유·협박·폭행했다고 밝혔다. 2013년 8월 22일, 1심은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완패였다. 심지어 간첩 혐의 2심 중에는 국정원과 검찰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초유의 사실이 밝혀졌다. 2014년 4월 25일 열린 2심도 유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유오성 씨를 간첩으로 몰려고 하다가 법정에서 재판 과정을 통해 국정원은 물론이고 검찰에 이르기까지 그 영혼이 탈탈 털리고 무죄로 입증된 사건이다.


간략하게 정리해서 그렇지 이 사건은 희대의 코미디를 찍었다. 무려 2000년대도 아닌 2014년 벌어진 재판정에서 밝혀진 사건 조작의 전말은 그야말로 6,70년대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병신을 만들던 공안검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태였음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가지고 그가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제출한 증거는 아주 간단한 기초적인 포렌식을 거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에는 디지털에서 GPS 기능으로 사진을 찍은 위치정보가 남는다는 것이 발각(?)되어 그 사진이 북한이 아니라 중국임이 증명되었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국경 출입사실증명에 대한 중국 측 문건이었다.

검찰에서 제시한 증거 중에서 들어가지도 않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출입했다는 증거라고 제출된 문서가 위조문서임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도 코미디 중에서도 최고의 블랙코미디급이다. 


이제까지 중국은 자신들의 외교 특성상 다른 나라, 특히 한국처럼 영향력 없는 나라에서 자기 나라에서 발급한 문서인지 아닌지 국경 출입 서류 같은 것에 대한 진위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하는 것에 응한 역사가 없었다. 아마도 국정원과 검찰은 그 부분은 철석같이 믿고 문서를 위조하고 그것을 증거라고 내밀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중국이 어떤 의도였는지 그간의 역사적(?) 전통을 깨고, 법원에서 진위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보낸 공문에 바로 그 문건이 허위 날조된 위조문서임을 증명하는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만약 6.70년대 시골 중에서도 어디 뉴스도 알 수 없을 정도의 깡촌에서 순사 노릇을 하던 자가 이런 짓을 벌였어도 중죄 처벌을 면하기 어려웠을 텐데, 무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최첨단 범죄 수사를 자랑하는 국정원과 대한민국 공안검사가 그 짓을 벌이고서도 버젓이 재판정에 나온 것이다. 


대개 일반 공판에서는 수사검사가 따로 있고 공판검사라고 하여 재판만 담당하는 검사가 따로 있는데, 이 사건에서는 공안검사가 수사에서부터 공판까지 일관되게 자신이 맡아서 이 날조된 쪽팔린 오물통을 모두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공안검사가 왜 문제냐고 묻고 싶은가? 

국정원에서 6개월이나 감금되어 고문을 한다는 둥, 다시 중국으로 보내서 북한에 넘겨버리겠다는 둥 갖은 협박과 핍박을 받던 유가려 씨가 마지못해 거짓 진술을 하여 오빠 유오성 씨가 간첩 혐의로 기소가 되자, 사건은 당연히 검찰로 모두 인계되었다. 

통상 검찰에서는 국정원에서 사건을 넘기더라도 그것의 진위여부를 따질 의무가 있는 곳이다. 즉, 정말로 수사가 제대로 되었는지 이것이 명백하게 기소를 해야 할 범죄행위가 맞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장에서 우리가 공부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공자의 가르침이자 인간이 갖춰야 한 인간으로서의 선한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검찰로 넘어오자 검찰 수사관과 동석하여 동생 유가려 씨를 심문하던 중, 공안검사는 하지 말아야 할 말실수(?)를 한다. 국정원과 함께 사건을 날조하여 조작할 생각이었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확인사살을 몇 번이나 한 것이다.


“오빠가 간첩이라는 사실이 맞아요? 솔직(?)하게 얘기해야 해요.”


그 행간에는 ‘너 법정에 가서 딴 소리하지 않을 거지?’의 단도리였는데, 몇 번이나 진실이 맞느냐고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는 말을 단어 뜻 그대로 믿은 이 순진한 화교 아가씨가 이렇게 답하고 만다.

“사실은 국정원에서 협박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거짓 진술한 거예요. 우리 오빠도 그렇고 우리 집안 자체가 그런 간첩질 하고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녀의 뜬금없는 고해성사급 자백(?)에 그녀를 다지고 법정을 향하려던 공안검사와 검찰 수사관은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당황한 공안 검사는 수사관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하고 험악한 얼굴로 바뀌어 그녀에게 말한다.


“이런 식으로 말을 바꾸면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어.”


그의 모습은 그녀를 협박하던 국정원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머리가 잘 돌아가기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검찰에서는 2심 과정에서 나온 날조된 증거들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워야만 했다. 그래서 2심 무죄 선고 직전인 2014년 3월 31일, 증거 조작을 한 국정원 요원 등을 구속 기소하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설거지(?)를 시작한다. 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 등은 이후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많게는 징역 4년, 적게는 벌금 700만 원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왜 설거지라는 표현을 썼는지 궁금한가? ‘우리 편 사람이 먼저’니까 검찰에서는 자신들이 국정원과 콜라보하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어야만 했다. 그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나는 국정원과 손을 잡고 정부 주관의 프로젝트로 2014년에 간첩이라는 섬뜩한 용어를 다시 한번 부활시키기 위한 ‘공작’을 꾸몄다고 인정하고 대국민 사죄를 하거나, 국정원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이 국정원에게 속은 것이라고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당연히 머리 좋은 검찰에서는 브레인들이 모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후자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모든 형사재판에 대한 수사의 책임이 검찰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들은 그냥 무시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무조건 국정원이 내준 내용대로만 믿었다고 우겼고, 그렇게 넘어갔다. 어떻게 넘어갈 수 있었느냐고? 그들을 단죄할 수 있는 것도 검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편 사람이 먼저’라고 지휘부에서부터 결정 내리고 유일하게 그들을 단죄할 수 있는 것도 그들 조직밖에 없는데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이 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이문성·이시원 씨는 불기소 처리되었다. 이들은 유우성 ‘간첩 혐의’에 대해 국정원 수사를 지휘한 다음 기소를 하고 공판을 담당했다(수사·기소 담당 이시원·한정화 검사, 공판 담당 이시원·이문성·최행관 검사). 유일하게 겹치는 이름이 하나 보일 것이다. 그 사람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새로 임명된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 되시겠다.

검찰은 ‘해당 검사들은 단지 국정원 직원들이 제출한 조작 증거에 속았다.’고 면죄부를 주었다. 대신 그냥 넘어가면 정말로 안될 것 같았는지 솜방망이 내부 징계를 했다. 대검은 두 사람을 정직 1개월로 처분했다. 당시 지휘 라인에 있던 최성남 서울 중앙지검 공안 1 부장은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앞서 내가 왜 ‘검찰 지휘부’를 언급했는지 눈치챈 사람이 있길 바란다.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은 공안부의 검사들이 뭘 하는지 아주 잘 안다. 군바리가 대통령이던 시기에는 특수부보다 더 우위였던 부서였다. 


그런데 간첩이라는 건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개념이었는데 2014년에 간첩이라는 그것도 버젓이 서울시청 안에 있었다는 소설을 쓰려던 것은 한 명의 공안 검사가 단지 아이디어 하나 내서 정부에게 잘 보여 간첩 날조 사건을 성공시켜 출세하려고 했다고 보기엔 사이즈가 너무 컸다.


그 근거가, 유오성 씨의 간첩 조작 사건이 무죄로 판명 나기가 무섭게, 검찰에서 한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엔 그 사건이 너무 크기 간단히 말하자면 이미 지난 사건에 대해 별건으로 ‘보복 기소’를 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 사건도 무죄로 2021년에 겨우 끝이 났다.


이 장에서 공자가 강조하는 가르침은 사람을 우선시하라는 것이지, ‘우리 편의 사람만’ 우선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의 공안검사를 무려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임명한 인사권자는 말한다.

“내가 걔랑 일해봐서 걔를 잘 알어. 괜찮아.” 


이제 시작인데, 기가 차서 한숨도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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