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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18. 2022

도대체 무엇을 위해 예를 갖추는가?

예의 본질은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다.

寢不尸, 居不容. 見齊衰者, 雖狎, 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 必以貌. 凶服者式之, 式負版者. 有盛饌, 必變色而作. 迅雷風烈, 必變.
잠잘 때에는 죽은 사람처럼 하지 않으시며, 집에 거처하실 때에는 모양을 내지 않으셨다. 齊衰(喪服)를 입은 자를 보시고는 비록 절친한 사이라도 반드시 낯빛을 변하시며, 冕冠을 쓴 자와 봉사를 보시고는 비록 私席이라도 반드시 禮貌를 하셨다. 凶服(喪服)을 입은 자에게 式(경례)하시며, 地圖와 戶籍을 짊어진 자에게 式하셨다. 盛饌이 있으면 반드시 낯빛을 변하고 일어나셨다. 빠른 우레와 맹렬한 바람에 반드시 낯빛을 변하셨다.

이 장에서는 공자가 평상시에 용모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항목이 제법 되기 때문에 사례별로 주자가 해설한 내용을 보면서 하나씩 살펴보며 그 진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조금 뜬금없기는 하지만, 잠잘 때 배를 위로 하고 가만히 누워 시체처럼 잠을 자지 않았다는 내용과 집에서 있을 때 특별히 외모를 꾸미고 용모를 갖추지 않았음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尸(시)’는 우러러 누워서 죽은 사람과 같음을 이른다. ‘居(거)’는 집에 거처하는 것이고, ‘容(용)’은 容儀(용의, 모양을 꾸미는 것)이다.


너무 기본적인 용어에 대한 풀이만 해주어 배우는 자들이 지금 당신처럼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싶어 범씨(范祖禹(범조우))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해주어 궁금증을 풀어준다.


“‘寢不尸(침부시)’는 죽은 사람과 유사함을 싫어해서가 아니요, 惰慢(타만)한 기운을 몸에 베풀지 아니하여 비록 四體(사체, 사지)를 펴더라도 일찍이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居不容(거부용)’은 태만히 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제사를 받들거나 손님을 만날 때처럼 하지 않으셨을 뿐이니, 申申 · 夭夭(신신 · 요요)가 이것이다.”


실제로 공자는 이 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바로 누워 자는 법이 없었다. 옆으로 눕되 자연스럽게 몸을 약간 구부려 자는 방식을 취했다. 도가의 양생법까지는 아니어도 생기(生氣)가 있는 사람이 죽어서 아무런 에너지가 없는 모양처럼 가지런히 배를 위를 향해 현대의 코마에 빠진 환자처럼 누워있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나름 과학적인(?) 판단을 했던 것으로 유추한다.

한편, 집에 있으면서 용모를 꾸미고 차려입고 있지 않았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보이지만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앞서 살펴보았던 내용과 같이 공자의 실용적인 부분에 대해서 쓸데없는 보여주기 위한 예의를 차리지 않았음을 보여줌이다.


다음으로는, 상복(喪服)을 입은 자를 보고는 비록 절친한 사이라도 반드시 낯빛을 변하시며, 冕冠을 쓴 자와 봉사를 보고는 비록 私席이라도 반드시 禮貌를 취했다는 내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고 있다.


‘狎(압)’은 평소에 親狎(친압, 절친)함을 이르고, ‘褻(설)’은 사석에서 만나봄을 이르고, ‘貌(모)’는 예모를 이른다. 나머지는 전편(‘자한(子罕)편’)에 보인다.


주석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자한(子罕)편’ 9장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온 바 있다. 그 내용에 보이지 않는 앞부분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이가 막역한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반가워 표정에 반가움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가 상복을 입고 있다면 그의 입장에서 반가움을 표하는 것은 결례가 될 수밖에 없다. 즉, 내 반가움이 먼저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 예의 본질임을 다시 한번 실생활에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다음으로는 상복을 입은 자에게 式(경례)하고, 地圖와 戶籍을 짊어진 자에게 역시 경례하였다는 내용인데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式(식)’은 수레 앞에 가로로 댄 나무이니, 공경할 대상이 있으면 몸을 굽혀 기대는 것이다. ‘負版(부판)’은 나라의 지도와 호적을 가진 자이다. 이 두 사람에게 式(식)함은 喪(상)이 있음을 슬퍼하고, 백성의 숫자를 중하게 여기신 것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요 왕자가 하늘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周禮(주례)>에 “백성의 숫자를 왕에게 올리면 왕이 절하고 받는다.” 하였으니, 하물며 그 아랫사람이 감히 공경하지 않겠는가.


상복을 입은 이에게 예를 갖추는 것은 앞서 내용과 이어지는 예의 본질인데, 조금 생소한 내용은 뒷부분이다. 왜 호적부를 들고 가는 자에게 예를 취했는가에 대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의아해할 수도 있다.


주석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호적부라는 것은 나라에서 백성들의 수치를 헤아려 통계로 갖추어 군주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군주마저도 그 호적부를 받을 때 절을 하고 받는다는 설명을 <주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곧 백성의 나라의 근본이라 하는 사회적인 관습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무게를 둔 것이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호적부는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백성 하나하나이기 때문에 군주도 함부로 할 수 없던 예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정치의 마음가짐에 방점을 두는 행동이라 하겠다.


다음으로는 盛饌이 있으면 반드시 낯빛을 변하고 일어났다는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주인의 예를 공경한 것이요, 盛饌(성찬)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 주인의 예를 공경했다는 것은, 진수성찬을 차려준 주인에 대해 정중한 예의를 갖춰 감사를 전달했다는 뜻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진수성찬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접대를 받는 상황이다.


자신이 높은 관리이던 아니면 어떤 입장이든 자신에게 진수성찬을 준비해준 호스트(상을 차려 맞이해준 주인)에게 예의를 깍듯이 갖추는 것은 그저 잘 차려주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성대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접대해준 것에 대한 답례와도 같은 것이다. 고문에서 낯빛이 변한다는 것은 몇 번 나오긴 했지만, 정색을 하고 예를 갖춘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말이다.

다음으로 자연현상에 해당하는 빠른 우레와 맹렬한 바람에 반드시 낯빛을 변했다는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迅(신)’은 빠름이요, ‘烈(열)’은 맹렬함이다. ‘반드시 낯빛을 변하신 것’은 하늘의 진노에 공경하신 것이다. <禮記(예기)>의 ‘玉藻(옥조)’에 이르기를 “만일 빠른 바람과 빠른 우레와 폭우가 있거든 반드시 낯빛을 변하여 비록 밤중이라도 반드시 일어나서 의복을 입고 관을 쓰고 앉는다.” 하였다.

자연현상에 대해 반응했다는 것에 대해 주석에서는 하늘이 진노한 것에 대해 공경을 표했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을 당시 미개한 풍습 정도로 여겨 천재지변을 보고 신에게 두려운 마음을 보였다는 어설픈 해석을 하는 이들도 보긴 하였다.


당연히 오독한 것이다. 지금처럼 위성을 통해 일기예보를 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미개하게 하늘이 노하였으니 산 제물이라도 바쳐서 그 진노함을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할 지경은 아니었다.


예컨대,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단순히 기도의 힘으로 신에게 의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대표하는 군주 된 자가 비를 내리는 하늘에 정성을 다함을 백성들을 포함한 천지신명에게 보여주는 마음가짐을 기도행위를 통해 전시하는 것이다.


위 내용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면 크게 벗어남이 없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 예를 갖추어 공경함을 보인 것은, 그 천재지변이 무언가에 전조로 하늘의 뜻을 대변했다는 샤머니즘적인 해석이 아닌 과학적인 의미에서 그 천재지변으로 인해 백성들이 행여 다치거나 무슨 사고가 생기지는 않길 바라는 벼슬을 가진, 백성들을 걱정해야 하는 위정자로서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이 장에서 보이는 공자가 보여준 모습들은 백성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에 있어야 하는 벼슬을 하는 위정자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저 격식만 차려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거나 사람들에게 군림하며 뽐내려는 모습이기보다는 지극히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임하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예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한다.


상을 당해서 슬픔에 빠져 있는 자에 대해 동정하는 것이고 장님에 대해서 그저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며, 관복을 차려입은 이를 보았을 때 예의를 갖추는 것이 그저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미루어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생각하여 그것을 공경의 태도로 보이는 것이 예의 본질이라는 것을 실생활에서 보여주고 있다.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맨 처음 시작되는 첫 번째 사례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집에서 용모를 꾸미고 있지 않는다는 내용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 장을 모두 제대로 파악한 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 장의 사례들은 단순히 사례를 나열한 것이 아니다.


사례들이 뒤로 가면서 내용이 점점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심화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눈치채지 못하였다면 다시 한번 찬찬히 본문을 음미해보면 안다. 바로 누워서 자는 것이나 집에 있을 때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는 것은 백성들을 생각하는 위정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첫 번째 장이 감춰놓은 진의(眞意)가 갖는 파장은 전체를 읽을 때 훨씬 더 의미가 크다. 글쓰기의 방법으로 보더라도 두 가지 정도 대표적인 고도의 수법이 감춰져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내용을 둠으로서 읽은 이로 하여금 이 내용이 왜 들어갔는지에 의문을 갖고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공효(功效)로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먼저 던진다.


첫 번째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실질적인 본질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근엄하게 하늘에 배를 놓고 손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근엄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주자가 주석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인가? 인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위적이 아니라는 것은 억지로 그래 보일 필요가 없는 경우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마저 자신의 만족감이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꾸미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첫 사례로 열어 보인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렇게 쓴 것이 아닌데, 그냥 해석이 더 그럴싸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어설픈 초심자가 있을 듯하여 그 근거를 가장 마지막 문장에서 재확인하기로 한다. 갑자기 하늘이 우르릉 꽝꽝거리며 천재지변이 일어났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뭐하러 낯빛을 바꾸며 하늘에 공경함을 보이나? 그리고 앞서 해석한 바와 같이 자신이 죄를 지어서 하늘의 분노에 놀란 것도 아닌데 뭐하러 공경한 모습을 보이며 걱정스러움을 드러내는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겉을 꾸밀 것이 아니라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끄집어내야 한다는 설명이 이래도 보이지 않는다고 이 장을 가볍게 공자의 외모 가꾸기 장정도로 해석한 이들의 곡학아세를 따를 것인가?




최근 뉴스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다룬 소식을 접하고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던 중에 그 판결이 과하다며 판사에게 ‘이게 개판이지 재판이냐?’라며 나름 난동을 피우며 자신이 1년 실형을 받은 것에 난리를 친 피고인에게 그 자리에서 판사라는 자가 괘씸죄를 적용하여 형량을 3배로 늘려 3년의 실형을 내렸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 대법원에서 법적으로 형량을 늘릴만한 어떤 법적인 근거도 없었다며 파기 환송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가 했다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 <부러진 화살>에서 안성기가 역할했던 전 성대 수학과 교수였던 김명호 교수의 일갈이었다. 물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들고 설친 것 자체가 별일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괘씸죄를 뒤집어씌우며 ‘감히 천한 일반인 따위가 고귀한 판사님에게 석궁을 들고 설치다니.’ 라며 쏘지도 않은 화살에 맞았다며 다치지도 않은 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석궁이 배를 뚫고 들어왔네 어쩌네 오버를 떠는 것 역시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감옥까지 들어가 그 괘씸죄에 대한 처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던 것은 김 전교수였다.


앞서 1년짜리 실형 선고에 갑자기 괘씸죄를 적용하여 현장에서 3년의 실형을 선고한 이는 새파랗게 젊은 혈기방장한 신임 단독판사가 아닌, 경험이 풍부한 부장판사였다.

그런 그의 위법행위(?)를 2심 판사는 대법원에서도 뒤집힌 이 사건에 대해 문제 될 것이 없다면 2년으로 1년 빼주는 것으로 괘씸죄를 유지해주는 판결을 내렸다. 과연 이들이 하는 게 재판인가? 개판인가? 이 장에서 공자가 일러주는 마음가짐을 법비들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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