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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19. 2022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군주임에도 불구하고 – 3

어쩌다 국민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추악한 왕가로 기억되었는가?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134


2019년 1월 25일,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례적으로 중립적이지만 정치와 관련하여 의원들에게 합의점을 찾기를 촉구했다. 브렉시트가 노딜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모두 모여서 합의점을 찾읍시다.’라며 의원들에게 부탁했다. 일각에서는 총리인 테레사 메이가 아니라 의원들에게 직접 말한 것은 여왕이 총리와 내각을 더 이상 신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2019년 2월 2일, 브렉시트가 노딜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영국 정부는 여왕과 왕족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는 계획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각 관계자는 “이 계획은 냉전 시기부터 있던 것으로 노딜 브렉시트로 시민들의 소요사태가 일어나면 대비하기 위해서 다시 고려 중이다.”라고 대답했다.


영국의 재계와 경제 전문가들은 노딜로 갑자기 관세가 생기면 식약품을 수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었다. 이에 하드 브렉시트 지지자인 제이콥 리스-모그는 내각이 노딜 브렉시트에 불필요하게 긴장한다며 영국 왕실은 2차 세계대전에도 런던에 남아있었다며 강조했다.


그러던 중 독일 <슈피겔>이 1988년 11월 이임 인사를 하러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난 뤼디거 베히마어 주영 독일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전문의 요약에서 “영국의 미래는 유럽에 달렸다”라고 했다는 내용의 외교전문이 공개됐다. 그 와중에 일본의 아키히토가 물러나고 나루히토가 즉위하면서 영국 내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의 양위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개 자연스럽게 장남 찰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왕 본인이나 왕실 및 정치권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여왕이 자신의 왕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2019년 8월 11일 영국 일간 타임즈에서 여왕이 브렉시트 문제로 혼돈을 겪고 있는 영국의 정치 현실과 관련해 현 집권 세력에 대해 “inability to govern(제대로 통치를 못 한다; 통치 능력이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그녀가 90을 넘긴 지금까지도 얼마나 엉뚱한 사람인지에 대한 최근 일화도 제법 유명하다. 2019년 9월에는 스코틀랜드의 왕실 별장인 발모랄 성에서 휴가를 보내던 도중, 성을 방문한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장난을 쳤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설마 여왕일 거라 생각도 못하고 그녀를 몰라본 관광객들이 이곳에 사느냐고 질문하자 엘리자베스는 인근에 집이 있다고 대답하고, 여왕을 만나본 적이 있냐는 관광객들의 질문에 대해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고 옆에 있던 수행원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여왕을 만나 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끝까지 여왕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할리우드 출신의 여배우와 결혼하며 왕실에서 독립하겠다는 손자 해리 왕자에 대해 2020년 1월, 왕실 고위직 회의를 통해 그의 독립을 승인해주기도 했다. 아마도 엄마를 많이 닮은 둘째 손주의 경우 왕가에 대한 반발로 인해 자유분방한 연애를 했고, 그 대상이 무려 할리우드 출신의 배우이자, 흑인 혼혈이었다는 점에서 여왕이 얼른 걷어냈다는 뒷이야기도 무성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영국에서도 확진자 4만여 명, 사망자 4천여 명이 넘어가고 보건장관, 보건차관이 감염되고 보리스 존슨 총리마저 감염되어 자가격리를 하던 중 입원하게 되면서 리더십에 큰 공백이 생기자 여왕이 직접 나서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각종 매체를 통해 발표한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여왕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일선 의료진들을 칭찬하고 국민들을 격려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왕실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2022년 2월 6일.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기념 케이크를 자르는 등 조촐한 기념행사를 했다. 여왕의 70주년(플래티넘 주빌리) 공식 기념행사는 다음 달인 6월 2∼5일 연휴에 대대적으로 개최된다. 거리 파티, 군 퍼레이드, 팝 콘서트 등 다양한 축하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무려 96세이며, 재위 기간은 70년째로, 영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군주이자 가장 재위 기간이 긴 군주다. 또한 현재까지만으로도 유럽 역사상 2번째로 오래 재위 중이며, 유럽의 여성 군주로는 가장 오래 재위 중이다.


물론 그녀가 실질적인 정치적 통수권자는 아니지만,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서 다른 국가원수들을 맞이했는지를 보자면, 그녀의 재임 동안 미국은 대통령만 무려 14명이 바뀌었다.

그녀가 이렇게 오랫동안 왕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전제군주제였다면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오히려 현재 영국의 정치 시스템이 입헌군주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될 일이 없다. 초창기, 그러니까 그녀가 3주간이긴 했지만 전장에서 군복을 입고 모범을 보이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왕실에 대한 지지도도 상당히 견고했다.


하지만 아무리 형식적인 입헌 군주제라고 하지만, 권력은 오래 고이면 썩게 된다고 하던가 큰아들 찰스의 불륜을 묵인하고 며느리를 압박했던 모습이나 부동산 문제로 드러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재산 불리기 등의 추악한 민낯을 통해 점차 그녀를 중심으로 한 영국 왕실은 그 권위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가고 있는 중이다.


2017년 2월 6일 재위 65주년 사파이어 주빌리를 맞았다. 서구권 군주 가운데서는 기존의 최장수한 빌헬름 1세의 만 90세를 넘겨 최장수 군주가 되었으며, 프란츠 요제프 1세(만 68년 재위)를 제치고 2020년 1월 27일부로 근대 이래 가장 오래 재위한 서구의 (대국) 군주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루이 14세뿐. 만약 5년만 더 살아서 재위 72년을 경신한다면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루이 14세의 기록을 갈아치울 수도 있다.

여왕의 모후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 왕대비가 101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여왕이 96세가 되는 2022년 6월에는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가 거행될 예정이다. 금연, 저녁 식사 시 탄수화물 자제, 하루 식사를 4끼로 나눠 소식하는 것 등을 장수의 요인으로 꼽았다.


근대 이래 80세를 넘긴 60년 이상 재위한 5명의 (대국) 군주 가운데 1명인데, 나머지 넷은 거론된 빅토리아, 푸미폰, 프란츠 요제프, 그리고 쇼와 덴노가 그들이다. 근대의 범위를 넓히면 청나라 고종 건륭제도 들어가게 된다. 2014년부로 만 88세에 다다르면서 쇼와보다 장수하게 되었고, 재위 기간도 넘겼다.


한때 즉위 60주년 되는 해인 2012년에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여왕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다수의 소식통들이 전했다. 전임 국왕이 사망해야 후임자에게 왕위가 승계되는 영국 왕실의 전통도 있거니와, 여왕의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남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한 것이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받는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흔을 넘었는데도 매우 건강한 데다 모후인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 왕대비는 101세까지 장수했기에 찰스 왕세자의 즉위가 한참 멀어 보인다. 2016년 90세 생일을 맞았을 때 왕실 전기작가 휴고 비커스는 “같은 90살이었을 때의 엘리자베스 왕대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왕위 승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2012년 6월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여왕이 퇴위한다거나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를 건너뛰어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이 즉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여왕이 2013년 11월에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찰스 왕세자 부부를 대신 보내기로 해 왕위 승계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1971년의 첫 회의를 제외하면 여왕이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한 적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주장을 나오게 하는 데 한몫했다.

2013년 7월에는 캐서린 왕세손비가 출산 예정일을 넘겼는데도 출산 소식이 없자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내가 휴가 떠날 23일 전에만 태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답하는 쿨함을 보였다. 7월 22일, 세손비가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자를 순산함에 따라 3대 뒤에 왕이 될 증손자까지 보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기록은 빅토리아 여왕 재위 중인 1894년에 에드워드 8세가 태어난 이후 119년 만의 일이다.


2015년 5월 2일에는 캐서린 세손비가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를 순산함에 따라 외동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 이후 65년 만의 직계 공주도 보게 되었다.

2021년 여름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식 때 심은 나무가 먼저 죽어버렸다.

2021년 12월 초, 여왕의 최측근인 그래프턴 공작부인이 101세의 나이로 사망한 데 이어서, 12월 29일에는 1987년부터 여왕을 보좌해온 시녀이자 측근들 중 한 사람인 레이디 파넘(Lady Farnham)이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불과 4주 만에 여왕의 가장 가까운 측근 두 사람이 여왕보다 앞서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여왕은 전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공식 초상사진

2012년 2월 6일부로 재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을 맞았는데 이는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거행된 1897년 이후 115년 만의 경사였다. 여왕은 영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공화주의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가급적 기념행사의 규모를 축소해서 낭비를 줄이려고 하지만, 영국 정부에서는 2012 런던 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수 있는 호기로 보고 각종 행사를 준비했다.


2월 3일, 100만 그루 나무 심기 캠페인에 참석해 첫 번째 나무를 심는 것으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시작했다. 2월 6일은 60주년 당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부왕 조지 6세의 기일이기 때문에 행사가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이날 노퍽 주의 소도시 킹스린과 샌드링엄 및 인근 학교를 방문한 여왕은 어린이와 시민들을 만나 축하를 받았으며, 즉위 60주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데 다시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국왕으로서 사상 최초, 유럽의 군주로서도 역사상 두 번째로 2022년 2월 6일 달성했다.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행사는 2022년 6월 2~5일에 개최할 것이라고 영국 정부가 밝혔다. 해당 기간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다. 2024년 5월 27일까지 생존한다면 프랑스 루이 14세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이 된다.


여왕의 나이가 워낙 고령이기 때문에 여러 건강 이상설들이 종종 나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여왕의 대외 활동이 이전에 비해서 눈에 띄게 줄어들고, 2021년 4월, 남편 필립공이 사망하면서 여왕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1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100주년 기념 예배에서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참석했다. 2004년 무릎 수술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지팡이를 사용한 것이다. 왕실측에서는 건강상의 이유가 아닌 단순히 편의를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20일 예정되어 있던 북아일랜드 방문을 취소한데 이어서, 병원에 입원한 것이 알려지면서 건강이상설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버킹엄 궁 측에서는 공무를 취소하고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들의 반강제적 권고를 수용한 것이며, 병원 입원은 간단한 검사를 받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히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코로나19와 관련된 사안은 아니라고 한다. CNN은 여왕이 3주간 1000km의 엄청난 일정을 소화했다며 심각한 건강 이상일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여왕이 빡빡한 개인 일정과 늦은 시간 TV 시청으로 인해 신경이 쇠약해졌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여왕은 4월 필립공과 사별한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이나 친구들을 불러 계속 점심, 저녁을 같이 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자녀들을 키워준 동갑내기 유모 마벨 앤더슨과 함께 자주, 밤늦게까지 TV를 시청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미국 NBC의 보도에 따르면, 의사들은 여왕이 건강에 집중할 시간을 갖도록 스케줄을 조정할 것과 저녁 일과시간을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더불어 여왕이 밤마다 마시는 칵테일도 포기하라고 조언했으며, 신체에 무리가 가는 장시간 산책도 멈추라고 했다고 한다.

보랏빛으로 변한 손

영국 ITV는 왕실측이 여왕의 의무보다 건강을 더 우선시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즉,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 관리를 위해 외부 일정을 더 줄여나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다음 계승 순위인 아들 찰스 왕세자의 공무가 이전보다 더 늘어나거나 아예 섭정을 맡길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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