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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27. 2022

전설적인 농구스타에서 에이즈 환자로 추락했지만 - 2

다시 제2의 인생을 불살라 존경받는 기업가로 우뚝 서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159



다음 해에 매직은 그의 절친 아이제아 토마스의 ‘배드 보이즈’를 상대로 우승을 거두며 레이커스를 1960년대 보스턴 이후로 처음으로 2년 연속 우승을 거둔 팀으로 만들며 다섯 번째 우승을 거두게 된다. 그다음 해인 1989년에 두 번째 MVP를 수상하고 파이널에도 진출을 했으나 2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일찍 아웃되면서 배드 보이즈에게 스윕 당하고 만다.


그다음 시즌인 1989-90 시즌에 매직은 세 번째로 MVP를 수상하나 2라운드에서 피닉스 선스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매직의 역사상 가장 빨리 플레이오프에서 제거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이듬해에 매직과 레이커스는 파이널에 진출하나 상대가 디트로이트를 3전 4기로 물리치고 올라온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였다. 스카티 피펜의 수비에 고전하며 (그래도 18 득점과 8 리바운드 12어시) 우승에 실패하고 사실상 마지막 경기를 밟는다.


그렇게 성공의 정점에 올라있던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뉴스가 들려온 것은 1991년의 일이었다. HIV 양성반응으로 은퇴를 선언해야만 했던 것이다. 뒷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 기자가 “누가 당신에게 에이즈를 옮긴 것 같습니까?”라고 물으니 “너무 많은 여자와 잠을 자서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전한다.

당시 HIV 보균자라는 사실은 대중에게 에이즈 환자와 다름없이 여겨지는 상황이었다. 그때만 해도 에이즈는 걸리면 바로 죽는 공포의 병이었고, 실제로 에이즈 환자는 그 절망에 빠져 죽어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매직 존슨은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살았고, 이는 일반인과 환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완치제는 나오지 않았지만 HIV 억제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관리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만성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1년 은퇴 선언을 했지만 1991-92 시즌 올스타 득표에서 서부 가드 중 2위, 서부 전체로는 칼 말론, 클라이드 드렉슬러, 크리스 멀린에 이어 4위의 득표를 해버렸다. 매직의 득표수는 65만 표가 좀 넘었는데 서부 1위 말론은 76만 표대였으며 전체 1위는 유일하게 백만 표를 넘긴 마이클 조던이 차지했고 전체 2위는 당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있었던 조던의 절친 찰스 바클리가 99만 여 표로 차지했다.


덕분에 92년 올스타 게임 주전으로 발탁되었고 당시 반 시즌을 쉬었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대활약을 보여주어 과연 HIV 보균자 인가 하는 의문까지 자아냈다. 마지막에는 결정적인 3점 슛을 성공시키며 올스타전 MVP에 등극했다. 그리고 분명히 은퇴를 한 현역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NBA 드림팀 1기에 뽑히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까지 나가 금메달을 획득한다.

1995-96 시즌 중반에 현역 복귀를 선언하여 레이커스에서 32번을 다시 달고 뛰기도 했는데, 이때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전처럼 주 포지션이었던 포인트 가드로 뛰지 못하고 파워포워드로 플레이하였다. 마이클 조던과 잠시 매치업(MJ대 MJ라는 이름으로)이 되는 등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으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완전한 은퇴를 하게 된다.


개인마다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매직은 이미 10 시즌의 경력으로 이미 NBA 올타임 레전드 입성한 인물이기에 1995-96 시즌 복귀는 1991 파이널 이후 HIV로 인한 갑작스러운 은퇴에 대한 마무리이자 팬 서비스 차원의 선수 경력이지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한 복귀는 아니였기에 크게 중요한 시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대함은 커리어 성적에서 볼 수 있다. 통산 기록이 거의 트리플 더블에 가깝다. 단일 시즌 통산 기록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오스카 로버트슨에 필적하는 대단한 기록이다.

그가 떠난 레이커스는 제임스 워디와 바이런 스캇 등 쇼타임 레이커스의 멤버들이 노쇠화되어 성적도 점점 하락해 마침내 1993-94 시즌에는 커다란 슬럼프에 빠져 플레이오프에 못 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구단은 시즌 중반에 해고당한 랜디 펀드(Randy Pfund)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즌 막판에 가서야 매직을 불러오게 되었다.


부임 초반에는 5승 1패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생겨 당시 레이커스 홈구장인 잉글우드 포럼에 팬들이 연신 몰려들었지만, 이후 10연패를 당하면서 정규시즌 33승 4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시즌 후 구단주 제리 버스가 다음 시즌에 1400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하며 정식 감독에 오를 것을 제의했지만, 그는 감독직을 거절하고 대신 주주로 경영에 참여한다.


결국 감독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대신 사업수완에는 재능이 있어서 선수생활 은퇴 이후 사업으로도 매우 크게 성공했다. 그는 다양한 프랜차이즈 사업과 투자 사업 그리고 사회 공헌을 시작했다. 은퇴 이후 그는 사업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30배 가까이 늘리는 데 성공했다.

사실 그는 LA 레이커스의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던 1982년, 자신의 연봉으로 사치를 부리지 않고 투자와 사업을 진행한다는 결정을 내린 전력이 있는 투자가였다. 2개의 콜로라도 라디오 방송국에 돈을 투자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32개의 매직 스토어 상품 판매점을 열었다.


1987년 래리 버드를 제치고 NBA 파이널 MVP를 수상한 그 해, 농구 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매직 존슨은 농구 대신 다른 쪽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매직 존슨 엔터프라이즈(Magic Johnson Enterprises)’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이 관리하던 투자사와 소매점을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관리하도록 위임했다. 1990년 매직 존슨은 펩시 콜라 유통 대리점을 인수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에 관한 야심을 드러냈다.


그는 오랜 준비 끝에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5년 소니 리테일 엔터테인먼트(현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딴 멀티플렉스 영화관 ‘매직 존슨 시어터’를 로스앤젤레스에 오픈했다.


이외에도 '존슨 디벨롭먼트 칼 퍼스'라는 부동산 개발 및 관리 회사와 매직 존슨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 TV, 출판, 애니메이션 콘텐츠 개발 및 투자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1998년은 매직 존슨과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 두 명 모두에게 뜻깊은 해였다. 하워드 슐츠와 만난 매직 존슨은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하워드 슐츠에게 들려주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아프리카계 흑인 미국인)과 라티노(중남미 출신의 미국인)들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듭시다.”


매직 존슨은 하워드 슐츠에게 흑인과 라티노들이 많이 거주하는 우범 지역에 스타벅스 체인점을 내자고 제안했다. 우범 지역에는 제아무리 유명 프랜차이즈라도 매장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지역 주민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매장이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직 존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범 지역에 진출한 스타벅스의 직원들은 철저히 해당 지역 주민으로만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우범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과 라티노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제공해 그들의 구매력을 끌어올리고, 커피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었던 지역에 커피를 제공해 지역 경제를 살려보자는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우범 지역의 범죄자들은 같은 지역 주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매장의 안전까지 확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아이디어였다.


둘은 의기투합하여 이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우범 지역에 스타벅스 체인점을 설립하기 위한 특수 목적 법인인 ‘도시 커피 기회 공동체(Urban Coffee Opportunities, UCO)’를 설립하고 매직 존슨 엔터프라이즈와 스타벅스 커피 컴퍼니가 각각 50%씩 지분을 보탰다.


UCO는 미국 전역의 우범 지역을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해나갔다. 최종적으로 125개에 이르는 스타벅스 매장을 설립해서 운영했다. 매직 존슨의 아이디어 덕분에 많은 흑인과 라티노가 직업을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해당 지역의 범죄율과 실업률이 낮아졌다. 미국 언론은 이러한 매직 존슨의 성과를 두고 매직 존슨이 코트에서 부린 마술을 도시에서도 부리고 있다고 극찬했다.


매직 존슨은 스타벅스 매장 운영을 두고 하워드 슐츠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예컨대 ‘스타벅스 매장에서 스콘뿐만 아니라 고구마 파이나 케이크 같은 보다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해야 한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클래식 음악 대신 마이클 잭슨의 팝 음악 같은 트렌디한 음악으로 구성해야 한다.’등의 실질적인 조언이었다. 그의 조언들은 모두 받아들여져 현재 모든 스타벅스 매장에 확장되어 적용되어 있다.

매직 존슨은 2010년까지 이렇게 미국 전역 우범 지역에 스타벅스 매장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2010년 이 매장과 UCO의 지분 50%를 스타벅스에 매각했다. 이 지분 매각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LA 레이커스 지분 매각을 통해 매직 존슨은 약 1억 달러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벅스의 가치가 1998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였다. 현재 미국 우범 지역에서 UCO 소속으로 운영되던 스타벅스 매장은 모두 직영으로 전환되었지만, 해당 지역의 흑인과 라티노를 고용해서 운영한다는 매직 존슨의 영업 방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만약 그냥 스포츠 스타였다가 돈을 버는 것에 혈안이 되어 돈을 모은 사람이라면 내가 오늘 그의 삶을 당신에게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사업철학은 분명했다. 그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업에 뛰어들기보다는 기존에 검증된 아이템에 투자하는 형태의 사업 방식을 선호했다.


돈을 위험하게 굴리지 않고 최대한 길고 안전하게 굴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유명 프랜차이즈와 합자 회사를 설립하거나, 유망한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식으로 자본을 운용했다.


초기에 주력한 사업은 기존 프랜차이즈와 협력해 매장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TGI 프라이데이, 버거킹 등과 협력해 미국 전역에 39개에 이르는 매장을 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24시간 피트니스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사업도 함께 진행했다.


이러했던 초기 사업 방식은 매직 존슨이 기업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면서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는 형태로 선회하게 되었다. 2008년 미국의 전자양판점 베스트바이와 파트너를 맺은 것을 시작으로 바이브 홀딩스, 아스파이어, 마블 익스피리언스, 미투 등 첨단 기술과 미디어를 다루는 기업에 투자를 진행해 수익을 거두었다.


매직 존슨은 단순히 돈을 좇거나 즉흥적인 결정으로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 두 가지 큰 투자 철학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한 투자를 단행했다.


첫 번째 투자 철학은 흑인과 히스패닉을 위한 지역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들의 권익 향상에 힘쓰는 것이다. 그가 투자한 아스파이어(ASPiRE)의 경우 미국 흑인을 위한 TV 네트워크 기업이고, 미투(mitú)의 경우 히스패닉을 위한 방송 및 디지털 네트워크 기업이다. 또한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IT 업계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구인 구직 서비스 ‘잡웰(Jopwell)’에도 큰 투자를 진행했다.


두 번째 투자 철학은 자신의 본업이기도 했던 ‘운동선수를 위한 서비스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직 존슨은 운동선수의 이동을 추적해 선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관리하고 경기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개발 중인 ‘숏트 래커(ShotTracker)’등에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7년 2월 17일에 짐 버스에 의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사장으로 고용되었다. 본인이 선수 시절 뛰던 팀이니 어떻게든 레이커스를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약속을 했고 많은 기대를 불러모았지만 2018년까지 큰 움직임이나 활약은 없었다. 그러던 중, 2018년 6월 오프시즌이 시작되자마자 ‘2년 안에 레이커스에 슈퍼스타를 데려오지 못하면 물러나겠다’라는 발언을 했고 그리고 7월에 그 르브론 제임스와 계약함으로 인해 자신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르브론 제임스 영입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레이커스의 2018-19 시즌은 대실패로 마무리되었다. 특히나 시즌 도중의 앤서니 데이비스 트레이드 시도 파문으로 팀 분위기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르브론 스타일의 농구는 최악의 사태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다.


팀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ESPN 평론가 스티븐 A. 스미스 등은 매직 존슨을 초짜 경영자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매직 존슨은 그렇게 사장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가 영입을 추진한 앤서니 데이비스와 르브론 제임스가 2019-20 시즌 우승에 기여했고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 MVP에 오르며 뒤늦게나마 결실을 보았다.


매직 존슨의 성공적인 투자 덕분에 매직 존슨 엔터프라이즈는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개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직 존슨 역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흑인 사업가 5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그가 단지 성공한 사업가였다면 이 시리즈에 이름을 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에이즈에  저승사자가 그려진 광고로 소개되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새겨 넣던 시기에 그는 전 세계 언론에 그 이유로 은퇴를 선언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듯했다. 병의 특성상 부도덕한 행실을 자연스럽게 연상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공포는 그의 정신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무너졌던가? 그렇지 않았기에 그의 실패는 지금까지 그를 건강하고 오히려 더 훌륭한 삶의 완성으로 이끌어내어 오늘 이 시리즈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그저 돈을 목적으로 사업을 벌이지 않았기에 더 큰돈을 벌 수 있었다고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미국인들을 생각한다. 실제로 그가 우범지역에 사업을 벌이면서 동네의 치안은 한결 나아졌고, 거리를 떠돌던 비행 청소년들은 합법적으로 일을 하면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이 힘겨웠던 운동생활을 기억하여 스포츠 경영에 힘을 기울이고 매직 존슨 재단을 세워 미국 전역의 HIV/에이즈 환자를 돕고, 에이즈 치료법을 개발하려는 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자신이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실패하고 좌절해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지만 사회를 변화시켰고, 자신을 우상으로 여겼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플레이어로서의 좋은 이미지를 망가뜨리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사용하며 남은 생을 봉사하고 있다.


당신이 자신만을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막 사는 것에 대해 사실 비난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당연하다고, 현실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재산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라 기부를 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굳이 이타적인 삶을 살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양식을 가진 행동을 취하는 것은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당신을 위함이라는 점을 당신이 잊지 말기 바란다.


당신은 당신만, 혹은 당신의 가족만을 챙긴다고 그렇게 어리석은 사욕을 부려대지만, 결국 당신과 같은 사람들만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사회문제나 범죄들이 터지고 그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개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처음을 행하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럽게 만드는 그 행동을 누군가 먼저 보이는 것만으로 다음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면, 엄청난 금액을 사회에 기부하지 못하더라도 사회는 조금씩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그 알량한 비겁함을 조금 내려두고 당신이 이제까지 무엇을 잘못 생각했었던 것인지를 이 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갖길 바란다. 인생의 벼랑에 몰렸다가 행복하게 웃는 매직 존슨의 마법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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