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오고 나서 강제 격리를 하는 동안 리뷰했던 <D.P>와 <오징어 게임>을 끝으로 한동안 영화와 드라마 리뷰를 쓰지 않았던 것은, 내가 영화와 드라마를 끊어서가 아니었다.
최근 종영한 <나의 해방 일지>라던가 이제 종영을 앞둔 <우리들의 블루스>를 비롯하여, <소년재판>, <마이네임>,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뒤늦게 비행기 타기 직전에 정주행을 완료한 <퀸스 갬빗>이나 지난 주말 정주행 했던 <테드 래소>등은 물론이고 매일 저녁 뭘 봐야 하느냐고 물어대는 고객(?)들이 있는 탓이 내가 보지 않은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글만 남기지 않았을 뿐이었다. 왜 내가 리뷰를 한동안 끊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긴 이야기이니 다음에 따로 논하기로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 <명화극장> 시리즈에 리뷰를 다시 쓰게 만든 작품은 바로, 제목부터 도발적이기 그지없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이다.
일단 극장에서 강판당해버린 시점이기 때문에 홍보성 글로 오해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편안함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이렇게 이야기하느냐구? 영화를 구성하는 감독, 각색(원작이 일본 희곡이다), 배우들의 연기, 이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따로 노는 참으로 말아먹을 수밖에 없는 딱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 영화의 미장센이 엉망인 것에는 이미 관심이 없다.
<화려한 휴가>로 사회성과 대중성을 갖췄나 싶은 약간의 주목을 받았다가 무지막지 돈을 들여 그 투자금 홀라당 다 까먹은 <7광구>를 찍고, 겨우 온갖 영화제 시상식 같은 배우란 배우는 다 모아놓아 어디선가 본 짝퉁 재난영화를 만든 <타워>에 이어 흥행도, 대중성도, 그렇다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사회성까지 있는 척하는, 최근에 말아먹은 <씽크홀>을 만든 감독의 작품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일본의 교사 출신 작가, 히타사와 세이고가 기존 연극의 희곡을 다시 소설화한 것을 바탕으로 삼은 작품이다. 즉, 원작이 워낙 탄탄한 내용과 빠른 흡입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성을 담뿍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각색만 한국적으로 잘 만들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연극이라는 점에서 접한 한국 관객이 거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오리지널리티를 충분히 답보할 수도 있는 터였다. ‘터였다?’ 맞다. 그렇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럼 감독의 연출 능력도 안 좋았고, 원작의 어드벤티지도 살리지 못한 이유는 각색한 사람의 잘못인가? 아니면 역시 그 모든 것이 안 좋아도 배우들의 열연이 있다면? 배우들에 대해 살펴보면, 주인공 역을 맡고 있는 듯(?)한 설경구부터, 천만 요정으로 불리는 오달수가 뻔뻔하기 그지없는 악역에 도전하였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설경구와 호흡을 맞춰,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역으로 무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은 문소리가 출연하였다.
담임이나 학부모로 등장해서 긴장감을 높여주어야 하는 역할에는, 다양한 작품들에서 탄탄한 감초연기를 했던 천우희, 강신일, 고창석, 김홍파 등이 나왔으니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엔 조금 억지스럽지 않느냐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를 쓰고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들의 연기는 뭔가 급조된 학예회 연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수준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왜 그런 파국이 발생했는지를 직접 목도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필름 너머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어색하기 그지없는 연기는 극에 몰입할만하면 튕겨내게 만들 정도로 거슬리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는 전지현이나 송혜교가 이제 더 이상 돈 없는 가난한 집에 사는 억척스러운 똑순이 역할을 하는 것이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호소력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여러 예능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 문소리가 돈 없고 찌질하게 가난한 아이 엄마의 역할을 전혀 리얼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어설픈 기존 연기로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둥둥 집중력을 날려버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대학로 연극판이나 뮤지컬 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남기애나 이미은의 연기는 연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해학생들의 할머니와 엄마를 살려주지 못했다.
각색이 원작의 어드벤티지를 살리기는커녕, 장점을 모두 깎아먹어 버린 원인은 아주 여러가지를 논할 수 있겠으나 가장 결정적으로 분명히 개개인들이 연기를 못하는 배우들이 아님에도 역할에 녹아들지 못하는 각본의 행간에 녹아 있어야 할 역할의 설득력이 모두 용해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왜 설경구는 접견 전문 변호사이며, 그의 아내는 왜 도망가버렸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오달수가 의사이면서 병원 이사장이 어떻게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김홍파가 할아버지로 나오는데 그 자식이 어떤 일로 없어서 손주를 키우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모든 것을 각본에서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설명하지 않아도 극에 몰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건 괜한 생트집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글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극 중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들고 정말로 내가 오늘 아침에 스쳐 지나며 만나고 온 사람 같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어떤 관객도 극에 몰입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각색에서 이미 망해 말아먹었다.
아! 중요한 설명이 늦었다. 이 작품은, 2017년에 완성하고서도 5년간 개봉하지 못했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가지고 코로나 틈새시장을 빌어 더 이상 창고에 필름을 묵힐 수없어 공개된 영화이다.
혹자는 오달수가 그즈음에 미투 논란 때문에 영화에 민폐를 끼쳐 개봉하지 못한 것처럼 말하고 싶나 본데, 영화를 제대로 본 관객이라면 오달수의 개인적인 사건 때문에 바로 영화를 개봉하지 못했을 거라는 착각은 오산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흥행과 돈으로 판단되는 충무로가 그렇게 허술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제작을 시작한 20세기 폭스는, 그 사이에 사라져 버려 신세계 그룹에서 만든 콘텐츠사인 마인드 마크에서 배급을 하며 겨우 완성했다.
잦은 예능 출연을 통해 이미 좀 산다고 거들먹거리는 여배우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소탈한 소시민 연기를 하기에는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문소리의 배역 설정이나, 늘 선하고 적당히 덜렁거리며 웃기는 감초연기만을 하던 오달수의 병원 이사장 연기는 가해학생 중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정유안의 뻔뻔한 얼굴 연기만도 못하여 몰입하기에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그나마 담임선생 연기를 한 천우희의 연기가 그나마 소심한 기간제 교사의 고뇌와 고민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그것도 부자연스러운 편집으로 맥이 끊기곤 한다.
랙이 걸린 동영상처럼 자꾸 흐름이 끊기기는 이 망작에 대해 굳이 오랫동안 끊었던 리뷰를 도대체 왜 하느냐고 답답해하기 시작한 이의 짜증이 튀어나오겠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리뷰는 망작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내가 참지 못해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스포 들어간다.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어설프지만 한국적인 정서에 맞춰 각색한 바로 이 이야기에 있다. 사실 이런 학교 폭력의 이면과 우리 주변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의 방점은 이야기와 배우들의 실제를 전하는 듯한 설득력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한다.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국제중학교에서 벌어진 학교 폭력 사태로 인한 한 아이의 자살시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굳이 브런치에서 영화 리뷰 입네 하면서 영화 줄거리 요약하는 수준의 리뷰를 쓰려고 이 글을 쓰는 것 아니니 내용은 간략하게 정리하자.
피해학생이 남긴 유서에 준하는 편지에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학생들, 그 학생들의 학부모라는 이들이 보이는 추한 민낯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병원 이사장, 경찰 치안감 출신의 할아버지, 접견 전문 변호사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변호사, 그리고 그 국제중학교의 수학선생까지. 그렇게 네 명의 가해 학생들이 벌인 끔찍한 학교 폭력에 대해 그 부모들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내가 가장 거슬렸던 것은 경찰 치안감 출신으로 나온 가해학생의 할아버지(김홍파 분)였다. 그는 처음엔 마치 강직한 경찰 출신인양 아이들이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자고 입바른 소리를 한다.
심지어 자기 손주를 위해 경찰에 압력 아닌 듯 압력을 가하고 나서도, 나중에 담임의 양심선언으로 재수사가 시작되자 지금이라도 자수하자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 캐릭터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고민이나 고뇌 끝에 어떤 계기를 통해 증인에게 증언을 조작하는 악에 동조하는 것을 넘어서 리드하는 모습을 보이는 설득력이 대본에도 김홍파의 연기에도 나오지 못한 것은 패착이긴 했지만, 그것은 제대로 표현 못한 글쟁이와 배우의 문제일 뿐이다.
자신이 퇴직할 때까지 올곧게 살아온 경찰간부 출신이라며 행동하고 싶어 하다가 막상 자기 손주가 가해자임이 밝혀지자 진실을 덮고 조작하는데 전면에 나서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그지없기에 공감을 자아내는 설정 아닌가?
오히려 그때까지도 절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형사처벌의 흠집도 없어야 하니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진실을 모두 부인해야 한다는 변호사(설경구 분)의 거침없는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고뇌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병원 이사장(오달수 분)의 초지일관 지저분한 모습은 오히려 공감이고 뭐고 따질 계제도 아니다.
그만한 사회적 위치도 아니면서 해당 학교 교사라는 이유로 상류층 학부모들과 비슷한 위치를 누리는 듯 착각하는 수학선생의 전횡은 또 어떠한가?
물론 교장의 비리를 협박하며 증거를 내놓으라고 인멸하는 모습은 다시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어설펐지만, 실제로 자신은 상류층에 속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직위 때문에 그 언저리에 왱왱거리는 자들을 떠올리기에는 아주 적확한 직업 설정이었다.
정작 마지막 결정적인 법정 증거로 폭력 현장을 목격한 여학생(노정의 분)의 위증을 까발리는 장면에서마저 연출은 디테일을 놓친다.
대한민국에서 자동차의 필수품이 된 블랙박스에 차 안의 대화는 물론, 차 밖에서 증인을 회유하는 장면들이 모두 담겨 있음에도 그것을 부러 핸드폰으로 녹음했다는 듯이 꺼내는 변호사의 발연기가 다시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작금의 소시민 입네 하면서 자신이 양심적이라고 우기고 싶어 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의 민낯을 오롯이 모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