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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26. 2021

왜 <오징어 게임>을 표절이라고 욕하는가?

<오징어 게임> 전격 해부

9월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의 성과.

미국은 물론 홍콩, 대만,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싱가포르 등 14개 국가에서 1위에 올랐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39개 국가에서는 2위였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오히려 더 큰 호평을 얻고 있다고 하는 9부작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

공개가 되자마자 전편을 보고 나서 주저했다.

(<아신전>에 이어)또 혹평 리뷰가 될 텐데 굳이 혹평 리뷰를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아예 쓰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 애써 모른척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아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나름 화제가 되고, 해외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는데 왜들 그리 표절 운운하며 욕하는 거냐는 말부터, 표절을 언급한 리뷰에 알바인지 애국자인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무궁화가 들어간 명백한 우리나라 게임인데 왜 그게 일본 표절이냐는 무뇌아적 질문까지 여기저기 회자되는 것을 보게 되면서 정작 단 한 곳에서도 제대로 된 확실한 비교분석 글이 없어, 결국 석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거슬림의 이유는, 하필이면 이 작품에 표절 대상이 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일본작품이라는 이다.


한국 문화 상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환영할 일이고, 장려할 일이며, 축하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의 드라마 영화 마니아들이 그리도 <오징어 게임>을 허접하다고 하며 인정하지 않는지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감독과 제작진이 적당히 눈에  뜨이지 않던 작품의 판권을 사전부터 사두고 제대로 된 연출로 승부했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일 수 있었다. 예컨대, 박찬욱의 <올드보이>나 봉준호의 <설국열차>와 같은 경우, 그다지 인지도가 없던, 마니아층들만이 알아보던 일본 만화나 프랑스 그림소설의 판권을 재빨리 사들여 그 이야기의 틀을 가져오되 지극히 일본적인 부분들을 적당히 손보는 형태 등으로 만드는 각색은 최소한 그리 욕을 퍼먹을 범주까지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 영화들은 배우들의 호연과 꼼꼼한 연출로 제대로 영상화했다고 호평까지 받아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 가져온 오리지널들은 이미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너무도 친숙한 유명작들이었고, 무엇보다 전부 왜색이 짙은 일본 작품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그 판권들을 정식으로 구매하지도 않고 그것들을 적당히 버무려 잡탕으로 섞어 만들어놓고서는, 그저 자신이 그 이야기를 구상한 것이 2008년 경이고, 2009년에 대본화 작업을 했으니 오히려 자신이 그 작품들의 오리지널이라고 인터뷰하는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악수 그 자체였다. 그것은 소위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고심 끝에 회초리를 들기로 했다.

 

6가지 게임의 오리지널리티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등장하는 첫 번째 게임은, 이미 다양한 리뷰에서 적잖이 언급되었던 <신이 말하는 대로>라는 일본 만화에서, 첫 번째 살아남기 위한 게임으로 나오는 동일하다.

<신이 말하는 대로>의 실사 영화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게임 중, 첫 번째 게임으로 ‘다루마 상이 넘어진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는 일본 전래놀이가 나온다. 원작 만화에서는, 목숨이 걸린 모든 게임이 일본 전통 전래놀이로 구성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오징어 게임>과 같은 발상과 구조라는 의미이다.


<오징어 게임>의 감독은 자신이 작품을 구상했을 때부터 이 드라마의 첫 게임은 무조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고 인터뷰에서 매번 강조한 바가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구상하고 대본을 쓴 것이 2009년이라고 누차 강조하며, <신이 말하는 대로>의 만화가 2011년에 나왔고, 영화화된 것이 2015년이니 오히려 자신이 오리지널이라고 말했다. 왜 이 말이 어이가 없는지 바로 영화의 장면을 비교해 보자.

왼쪽이 <신이 말하는 대로>이고, 오른쪽이 <오징어 게임>이다. 게임의 종류가 똑같은 정도를 넘어서 화면의 구성이나 구도, 흐름까지 똑같다는 것을 이 컷만으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우리 놀이라고 생각했던 그 전래 놀이는, 일제 강점기 당시 남궁억 선생이 무궁화를 통한 독립운동으로 복역한 후 석방된 1935년경, 골목에서 아이들이 일본 놀이 ‘다루마 상이 넘어진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를 하는 것을 보고, 무궁화를 전파시키기 위해 가사를 고쳐 부르게 한 것으로,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전래놀이인 양 널리 불려진 것이다.


세계의 전래놀이들이 다 비슷하네 어쩌네 하는 국뽕식의 포장된 변호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음성학과 언어학의 기본을 갖춘 학자라면 ‘다루마 상이 넘어진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의 기본 구조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 그대로 답습하고 음을 너무도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까지 아니라고 우길 자가 있겠는가 싶지만, 확실하게 증명할 작정으로 쓰는 글이라, 아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위 참고사진은, 일본 <놀이 도감>을 번역한 한국의 책인데, ‘다루마 상이 넘어진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의 설명에 아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번역자가 고쳐 적어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글자만 빼고 보여주면, 그림과 룰을 설명해놓은 것이, 어떤 외국인이라도 동일한 게임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세히 설명되어 있음을 매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징어 게임>에서 동작을 잡아내는 센서가 인형의 눈동자에 장착된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말하는 대로>에서 달마상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구르는 모습까지 똑같아서 이건 모티브의 차용 정도의 선을 이미 넘어섰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두 번째 게임인 ‘달고나’는 그야말로, 쉬어가는 페이지 느낌이다. 참가자가 게임의 종류나 룰을 먼저 알게 통과가 쉬울 수 있는 게임이라는 갈등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설정된 것이 너무도 명확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긴박감이라고는 가질 수 없는 작위적 쉬어가기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부분이다. 그 근거로, 시나리오의 구성상 이 게임에만 다른 사람과의 갈등구조가 게임과정에 드러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없다. 유사한 게임의 설정이 없으니 설명은 생략하나 그것이 오리지널이라는 증명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길 바란.

 

세 번째 게임. 줄다리기 게임

 

총 6개의 게임 중에서 유일한 단체전. 그리고 총기에 의한 사망이 아닌, 벌칙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게임.

디시갤을 비롯해서 SNS에, 10여 년 전에 <무한도전>을 통해 나온 짤들이 너무 선명한 관계로 사진으로 분석과 설명을 대신한다.

그런데 니 사진에서 간과해선 안될 한 가지. <무한도전> 이 게임의 오리지널이라고 혹여 착각하는 이들에게, 일본에서 좀 살다가 온 일본 예능을 본 사람들에게 <무한도전>의 짤을 보여주고 이게 일본 예능이 맞냐고 물어보길 권한다. 개그맨들에게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쫄쫄이 옷을 입히고 운동회식의 단체게임을 시켜,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는 것은 일본의 아주 오랜 예능의, 고착화된 장르이다. 쫄쫄이의 디자인까지도 어쩜 그리 닮아 있는지 굳이 긴 설명은 얼굴이 뜨거워지니 생략하기로 한다.

 

네 번째 게임. 구슬치기

구슬치기는 1936년도에 일본에서 들어온 놀이다. 일본에서는 1869년에 '라무네'라고 해 지금의 사이다와 같은 탄산음료가 등장했다. 그 속에 유리로 된 구슬을 넣어 판매했고 1897년에는 그 구슬이 아이들의 놀이 도구로 보급돼 구슬치기 놀이가 시작됐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딱지 치기, 고무줄놀이, 공치기 놀이가 구슬치기와 같이 공장에서 만든 근대식 놀이 기구로 인기를 끌었으며 가게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비-다마 아소비'라고 해 1933년경에는 과자가게에서 구슬이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1936년에 딱지와 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구슬놀이는, 함경북도 경원과 경기도 개성에 일찍 보급돼 아이들의 놀이로 전파됐으며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다마 아소비'라고 불렸다. 그래서 라떼 아재들도 '구슬치기'라는 이름보다 ‘다마치기’라고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승패를 가르는 주 역할을 했던 ‘홀짝’ 역시 ‘야바위’라는 이름으로 구슬을 더 많이 따먹는 게임의 한 종류로 한국 아이들에게서 성행했다.


이 게임에서 오일남(오영수 분)이 성기훈(이정재 분)에게 제안하는 ‘같은 편’이라는 의미의 ‘깐부’역시 친구 사이의 깊은 우정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かんぽうの交まじわり)의 ‘관포(管鮑)’의 일본어 발음인 '캄포(かんぽう)'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일본의 전통놀이임을 다시 한번 재확인할 수 있다.

 

다섯 번째 게임. 징검다리 건너기

 

이 게임에서, 다시 <오징어 게임>은 태생적 맹점을 드러낸다. 이 게임은 어렸을 때 하던 전래놀이고 뭐고에 속하지 않는다. 전통놀이도 아닌 것이 해당 범주에 맞지 않게  하고 중간에 들어와 박혀있는 셈이다.

왜 일까?

이 게임은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신이 말하는 대로>의 원작 만화에서 적당히 믹스했다는 사실을 아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체중을 견디지 못하는 일반 유리와 올라서도 문제없는 강화유리의 50대 50의 목숨을 건 도박. 실제 만화 <신이 말하는 대로>에서는 공중에서 바닥을 밟아서 건너되, 어떤 것은 그대로 낙하되어 떨어지는 발판이고, 어떤 것은 건널 수 있는 목숨을 건 도박이 그대로 반영된 게임이 등장한다.

원작만화의 목숨걸고 발판 건너기 게임

어렸을 때 전래놀이가 아님에도, 감독이 이 게임을 마지막 게임의 바로 앞에 둔 것은, 게임을 즐기는 VIP들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배치한 것이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는, 공중 철근 건너기를 보며 여흥을 즐기는 VIP들의 잔혹성을 그려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와인잔을 기울이며 얼굴의 반만 나오는 구도까지 <오징어 게임>의 그것과 똑같다.


 <오징어 게임>의 해당 장면을 보면서, '와인잔을 마시기 위해 입쪽으로 기울이려면 가면이 걸릴 텐데',라는 생각에 디테일이 거슬렸었다. 결국 아래 사진에 나오는 장면에서 그대로 따오되 가면으로 VIP들의 얼굴을 가린다는 착상이 반영된 것이라 보이는데, 그렇게 튀어나와 있는 입체형 가면이라면 와인잔으로 들어 제대로 와인을 마실 수 없다는 검증조차 안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게임. 오징어 게임

 

이 드라마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하고, 첫 장면의 시작부터 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메시지 전달이 관객에게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한 바로 그 게임.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목이자 마지막 게임이 오징어 게임으로 진행된 의미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오징어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건너면 ‘암행어사’가 된다는 말과 그 말의 의미는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로도 전달되지 못했다. 실제 오징어를 가로질러 되는 존재의 이름은 ‘철인’이라고 하거나 ‘사람’이라고 한 지역도 있는 것으로 보건대, ‘암행어사’가 갖는 말의 의미가 애초부터 큰 의미를 갖지 못함에도 마치 뭔가 있는 듯한 나레이션을 넣은 것은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글을 읽은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이 게임이 본래 일본의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 놀이의 이름을 본래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소급하여 올라가 분석해보면, ‘가이상’이란 ‘개전(開戰)’의 일본어 ‘카이센(かいせん)’의 발음이, 일본어를 모르던 한국 아이들이 그대로 부른 것으로, 땅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겨루는 놀이를 일본에서는 그렇게 통칭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의 전제와 게임 룰

 

<오징어 게임>은, 한 사람의 몫(판돈)을 1억 원으로 계산하여 456명이 참여한 게임으로 최후의 1인이 456억을 독식하는 게임이라고 포스터에도 설명되고 있다.

이 이야기의 구조는 <라이어 게임>이라는 일본의 원작 만화이자, 드라마, 극장판으로 제작된 작품의 본래 이야기 구조에서 차용된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모든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한 몇몇 어린 친구들이, <신이 말하는 대로>는 신이 주관하는 판타지물이고, <오징어 게임>은 극사실주의에 해당하는 드라마이니, 표절이 아니라고 헛소리를 쓰는 경우를 제법 봤는데, 실제 <오징어 게임>의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바로 <라이어 게임>의 원형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똑같다.

굳이 문학용어를 사용해가며 인물의 성격과 갈등 및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을 현학적으로 풀어가며 설명하지 않더라도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구조의 유사성을 두 작품은 보인다.

영화 평론을 업으로 한다는 어떤 이가 아는 척한답시고 <헝거 게임>과 비유하며 주인공이 히어로인 해당 작품과 변별되는 한국적인 작품이니 헛소리를 현학적으로 해대는 것을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 만화를 좀 보고 공부 좀 더 하지, 싶었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의 캐릭터의 설정부터가 <라이어 게임>의 주인공 칸자키 나오(토다 에리카 분)를 그대로 차용했음을 드라마를 통해 너무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적당히 멍청하고, 그러면서도 인정에 약하고 정의를 수호할 히어로까지는 아니면서도 정의는 반드시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캐릭터같아 보이지만 독특한 캐릭터를 이미 <라이어 게임>에서 창조한 것을 성별만 바꿔 가져온 것이다.

무엇보다 사기를 당해 돈이 없거나 인생 막장에 간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이상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게임에 참여한다는 구도 자체가 <라이어 게임> 말고는 이전이고 이후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구도였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단순 생존 서바이벌에 해당하는 <배틀 로얄>은, <오징어 게임>의 중간에 서로 죽여도 상관없다는 점을 살짝 부각시키기 위해 차용한 귀여운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라이어 게임>이라는 만화책은, 드라마(그것도 시즌2에 스페셜 드라마까지)에 이어, 극장판까지 일본은 물론이고 일본 만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히트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심지어 2014년 10월에 TVN에서 판권을 정식 구매하여 한국판 리메이크까지 나왔던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의 감독이 <신이 말하는 대로>의 영상 표절 공격을 방어하기 급급하여 인터뷰마다 자신이 이 이야기를 구상한 것이 2008년이네 2009년이네 하며 더 앞서 있다고 말하는데, 전체 이야기의 구도를 가져온 <라이어 게임>은 원작 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 2005년이고, 드라마화된 것이 2007년이니 감독조차 말끝을 흐리며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라고 얼버무리는 인정 아닌 인정을 한 것이다.(슬쩍 감독은 인터뷰 중에, 자신이 구상 당시 만화방에 살았다는 말을 양심고백처럼 흘리긴 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을 한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주인공과 몇몇 인물들이 왜 <오징어 게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드라마를 질질 끌 듯이 넣었는지는 오리지널에 해당하는 <라이어 게임>을 보면, 각 인물 군상의 스토리가 게임 사이사이 소개되는 것을 보면 이것마저도 오리지널을 우길 수 없겠구나하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 드라마<라이어 게임>

그런데 큰 차이가 있다. 영상화 된 <라이어 게임>은 어느 한 장면조차 질질 늘어지질 않는다. 매번 신박한 게임과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들의 배신과 배반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고 또 친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정작 이야기는 가져오면서 그 박진감 넘치는 속도감은 표절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심지어 필자는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는 졸기까지 했다.(1편을 보고 2편으로 넘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9편을 앞두고서도 그냥 접었다는 적지 않은 악평 리뷰를 보면 이건 나만 느낀 문제점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어 게임>의 와타나베 잇케이. 번쩍이는 금니가 포인트.

무엇보다, 딱지치기로 바람을 잡는 카메오 공유의 모습은 <라이어 게임>의 타니무라 미츠오(와타나베 잇케이 분) 정장을 입고 천 엔 뭉치가 가득한 가방을 들고 등장하는 장면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서 공유가 전달하는 명함 역시 <라이어 게임>에서 시그니처로 사용된 '초대장'을 그대로 가져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담이지만, <라이어 게임> 드라마의 상황에 딱 맞게 적절하게 흘러나오는 특유의 OST는 한국의 예능 PD들이 대놓고 즐겨 따서 쓰는 음악이었고, 아예 그 드라마의 게임 포맷을 가져와 예능프로그램으로 만든 TVN의 예능 <더 지니어스> 시리즈는 시즌 4편까지 제작되며 당시 젊은 층의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모든 포맷에 OST까지 끌어와 써놓고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우겼던 당시 TVN제작진의 뻔뻔함은 더 강화되어 이번 <오징어 게임> 제작진에 빙의된 느낌이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나오는 가면에 그려진 네모, 세모, 동그라미는 일본 엔터 게임의 대표작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아이콘이다.(그래서 게임 버튼의 기능을 아는 플스 마니아들은 드라마의 계급이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한다.)

이걸 뒤늦게 꼭지점의 수가 신분의 고하를 상징한다고 견강부회해준 네티즌의 해석력이, 시는 시인에게서 떠나면 더이상 자신의 해석과 상관없다고 했던, 김춘수 시인의 문학관을 떠오르게 한다.

 

넷플릭스 미국 1위까지 차지한 우리나라 작품에 왜 재를 뿌리냐?

 

재를 뿌리려는 의도는 눈곱만치도 없다. 앞서 글을 시작하면서도 말했지만, K-POP이, 그리고 한국 드라마가, 통칭 '한류'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전 세계 문화의 정점에 서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한 사람이기에 이 글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

 

김주혁의 미친 연기가 화제가 된, 그의 유작 <독전>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이 영화의 원작은 <독전>보다 4년 정도 전에 제작된 두기봉 감독의 홍콩영화 <마약전쟁>이다.

두 영화 포스터 비교

물론, 제작진은 그 판권을 구매하여 리메이크라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그렇다고 원작이 있다고 대놓고 공표한 것도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전>은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잘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조진웅, 유준열, 김성령, 박해준 등 배우들의 열연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나 개인적으로는 김주혁과 진서연의 연기가 가장 빛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메이크작이자 그닥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도 않은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520만의 관객을 불러모은데는 눈이 높아진 한국 관객들의 입소문을 탄 이 컸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이게 뭔가?

이야기가 독창적이 아니라면, 배우의 연기든 속도감 있는 연출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2021년 한류의 진화를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이정재는 여전히 <모래시계> 때부터 지적받았던 연기 기초 중에서도 대사 전달도 제대로 못한 채, 웅얼거리는 수준 벗어나지 못했고, 탈북민을 연기하는 모델 출신 정호연은 북한 사투리를 하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기본기 연습도 안되어 있으며, 얼굴을 보이는 시간보다 가면을 쓴 시간이 많았던 위하준은 가면 속 연기를 스릴 있게 전달하기는커녕 극의 흐름을 끊어먹고 있다.

영화 <남한산성>의 인연으로, 감독과의 의리 때문에 카메오 출연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병헌은, 기본적인 자체 연기력이 있는 연기자임에도 이야기 속에 융화되지 못하고, CF의 목소리 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밋밋함을 드러낸다. 심지어 가면을 썼을 때의 모습을 그의 대역이 연기한 티가 너무 나서 말 그대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부르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해외에서 인기가 있으니 시즌2가 제작될 거라는 소문으로 슬슬 군불을 땐다. 글쎄다.

이쯤 되면 <오징어 게임>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분석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2007년 <마이 파더>로 장편 데뷔를 했지만, 비평의 호불호와 모티브가 된, 성낙주에 대한 각색으로 흥행에는 실패한다. 여기서 방점은 ‘각색’에 있다.

2011년 영화 <도가니>로 복귀한다. 이 영화 역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흥행에 성공해 출세작이 되긴 했지만, 공지영의 소설이 원작인 작품이었다. 여기서도 방점은 ‘소설이 원작인 각색작품’에 찍는다. 이 영화의 인연으로 공유는 바람잡이 역의 카메오에 출연했다.

이후 그는 영화 <수상한 그녀>로 800만 명이라는 흥행 잭팟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중국, 태국, 일본에까지 리메이크 판권이 팔려나갔다는 이 작품 역시 그의 오리지널 각본작이 아닌, 그가 각색한 작품이다.

이후 작품은 <남한산성>을 연출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남한산성>은 김훈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왜 장편 데뷔작부터 방점을 ‘각색’에 찍었는지 눈치챘는가?

그가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즉, 창작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할 정도의 창작능력으로 승부하는 감독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의 필모그래피만의 분석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서울대 출신인데 더 배운 사람이 뭔가 더 배운 만큼의 깊이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것이,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의 욕심이고, 헛된 기대일까?

 

<오징어 게임>이 어느 정도까지 표절을 는지에 대해서는, 위의 논증 과정으로 해당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굳이 이런 잡글을 쓰면서 이 작품의 분석을 감행한 이유이다.

하여,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는 비판이 튀어나오기 전에 사족을 좀 달아야겠다.


이정재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미국인들에게 있어,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 관객들이 알만한 명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디어와 캐릭터, 이야기의 구도가 미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많이 접하지 못했던 분야였기 때문에 참신하게 먹혀 흥행에 성공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그 아이디어와 이야기의 구도가 모두 일본의 만화에서 나온 것이라는 위의 분석 결과를 감안하면, 시즌2가 나오는 것 자체가 심히 걱정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 역시 세계 속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한류의 대표작으로 거론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무치'를 아무리 깔끔하게 포장하고 예쁜 일본어 포장지를 덮어 전 세계에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김치'가 일본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자기 나라 총리가 한국 음식이라고 공식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한 자료가 있음에, 뜬금없이 삼계탕을 지네 나라 음식이라고 짱꼴라가 우겨도 삼계탕이 중국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2008년에 구상을 먼저 했네 어쩌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아도, 평가는 한층 보는 눈이 높아져 매서워진 한국 관객들이 먼저 한단 말이다.

게다가 가져온 것들이란 게, 하필이면 전부 일본 것들이고, 바탕으로 잡은 것들이 하필이면 전부 식민지 치하에 흡수된 왜색 짙은 것들뿐이어야 했었냔 말이다.


한류의 역사와 전설을 만들어내는 명작들, 밤낮없이 힘겹게, 새로운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쓰려고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의 머리와 손에서 흘러나온 피땀으로 빚어져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의 정점을 점령한 문화 일류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우리화하여 우리만의 이야기만으로, 전 세계에 통용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노력들이 충분히 먹히고 통한다는 결과를 누차 확인한 바 있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은데 왜 재를 뿌리냐며 덮어주는 식의 논리는 군사정권 라떼 아재들한테 다 짊어지고 꺼지라 해라.


우리가 달라져야 전 세계의 정점에서 문화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벌어진 아주 작은 실수로도 그간 쌓은 공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다.

우리 조금만 제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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