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명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Sep 14. 2021

가해자는 안 잡고 피해자만 잡으라는 아이러니한 부조리

<D.P. 개의 날>을 보고 나서

해외에서, 그것도 쫙 펼쳐진 해변이 보이는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것은 참으로 곤욕스러운 일이다. 이 지루함을 달래줄 책과 영상과 음악과 글쓰기가 없다면 딱 감옥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요즘 넷플릭스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는 6부작 <D.P. 개의 날>을 ‘가볍게’ 정주행했다.


최근 군부대 내에서 일어난 연이은 여군의 자살로 인해, 군 기강해이 및 조직적인 범죄행위 은폐에 대한 문제가 아주 잠시 이슈가 될 뻔하다가 사그라들고 있다.

사실 잊힐만하면 터지는 군부대 내의 가혹행위는 아주 오래전부터 문젯거리로 지적되어왔다. 요 몇 년 새 여군의 수가 늘어나면서 성범죄가 새로 하나 더 추가된 것일 뿐,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고질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점이 개선되었다고 보는 이들은 없다.


아! 있긴 하다.

요즘 군대는 옛날같이 않아서 정말 많이 나아졌네 뭐네 하는 헛소리를 하는 국방부 장관 휘하 군 간부로 직업을 삼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군사재판에 관련하는 썩어빠진 군법무관 쪽이 더 익숙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시리즈는 단순히 군대 내의 문제만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뭐가 문제이고, 왜 이 모양 이 꼴인지에 대한 짧지만 묵직한 실태 보고서에 해당한다 하겠다.

화두 0. 작품의 리얼리티에 관하여

 

이 작품은 원래 2014년부터 연재했던 김보통 작가의 57화짜리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는 실제로 D.P.였던 자신의 군생활 경험을 그대로 작품 속에 녹여냈다고 밝힌 바 있다.

아! D.P.란, ‘Deserter Pursuit’의 약자로, ‘군무이탈 체포전담조’라는 뜻이다. 이는 실제 대한민국 육군 헌병에 있는 보직인데, 조장과 조원 2인 1조로 다니며 탈영병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영외(군대 바깥)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처럼 머리를 기르는 것이 허락되고, 영외로 임무수행을 나갈 때는 사복을 입고 활동한다.

원작 웹툰의 단행본

화두 1. 탈영병은 왜 발생하는가?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D.P.의 활약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기본 주제는 탈영병들이 왜 군대에서 도망치게 되었는가에 대해 앵글의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른바 차출되어 D.P를 하게 된 주인공 이병 안준호(정해인 분)는, 처음 D.P.가 되어 6개의 에피소드에서 5명의 탈영병을 쫓으면서 내내 자신 안에서 튀어나오는 그 화두와 마주하며 괴로워한다.

탈영은 범죄다.

범죄는 법률에 의거하여 처벌을 받는다.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 범죄자를 구속해오는 것이 D.P의 일이다.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은 판사이지, 형사가 아니다. 그나마 형사는 다양한 종류의 범죄를 접하고, 범죄자 중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코지 하거나 피해를 주기 때문에 범죄자의 구속은 형사에게 있어 일하는 보람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는, D.P.가 잡으러 다니는 탈영병은 범죄자가 맞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자들이 아닌, 대개 피해를 입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자들이라는 사실이 이 드라마의 뼈대를 이루는 화두이자 주인공 준호의 딜레마이다.

화두 2. 과연 누가 피해자란 말인가?

 

탈영병은 가해자가 아니다. 그저 도망자일 뿐이다. 물론 탈영병 중에는 정말 몹쓸 나쁜 놈도 있다.(이 작품에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앵글의 초점이 맞춰진 것은, 탈영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군부대 내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피해자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그들이 왜 탈영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감독을 맡은 한준희도 “누구나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말로 디렉터의 변을 대신한다.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온몸이 멍투성이인 가냘픈 여인에게 당신의 가정을 저버렸으니 경찰이 잡아가겠다고 하면 그 경찰은 욕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그 지역사회에서 매장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군대의 잘못된 가혹행위로 견디지 못해 뛰쳐나간 20대 초반의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넌 범죄자라고 말하는 게 옳을까?

화두 3. 도대체 그 조직을 관리하는 이들은 뭘 하고 있었던 말인가?

 

군대 내의 부조리가 왜 지속되는가에 대해 제대로 다루기 위해 작정한 이 작품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아주 충실하게 카메라 워크를 맞춰 움직인다. 군대가 개판인 것은 졸병들의 탓이 아니다. 바로 그 조직을 관리하는 이들, 장교 이른바 간부라고 불리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런 문제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준다.


가장 먼저, 헌병대장의 보좌관인 임지섭 대위(손석구 분)와 진급에 누락한 실무자 박범구 중사(김성균 분) 간의 알력과 신경전을 보여준다. 나이가 어리고 군 경력이 짧은 장교와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실무자에 해당하는 하사관과의 알력과 신경전은 쓸데없는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제대로 된 조직관리를 하지 못하는 첫번째 이유를 단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헌병대장 천용덕 중령(현봉식 분)이다. 여담을 좀 하자면, 여기 나오는 연기자들 모두가 호연을 보여주지만, 특히, 최근 <타인은 지옥이다>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의 연기는 그야말로 천연덕스럽다. 사투리를 진하게 섞어가며 전형적인 단순무식 책임회피형 헌병대장의 역할을, 맞춤옷을 입은 양 제대로 소화해내서 관객들의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헌병대장과 그 보좌관(보좌관이 실제나이로 형이다)

얘기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그는 84년생인데, 상병 한호열역을 맡은 82년생 구교환보다 2살이나 어린 노안이다. 노안과 동안의 매칭이 그렇게 이루어진다. 구교환이 절대 동안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안이라고 하기 뭐한 김성균보다도 4살이나 어리다.(오히려 현봉식은 자신의 노안을 연기력이라는 불광로의 베이스로 삼아 장점으로 소화해낸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진급과 관련된 부대 평가에만 관심을 보이는 무식한 군바리 헌병대장을  리얼함을 살려 잘 표현했다. 관리자격인 간부들에게 일반병들의 내무반 문제는 그저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폭탄일 뿐이지, 관리해야 할 리스크라고 도저히 인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탈영한 조 일병을 차라리 사살하여 사건을 입막음하겠다는 것이 드라마적인 발상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그들의 일처리 방식이라는 점은, 군부대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것을 은폐하라고 공조 혹은 명령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화두 4. 왜 헌병은 군사 경찰이라고 이름을 바꿨을까?

 

최근, 헌병은 군사 경찰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하는 일은 똑같은데 이름만 바꿨다. 일하는 경찰은 그대로인데 허구한 날 조직의 이름을 바꾸고 자신들이 뭔가 새롭게 거듭난 양 보이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 경찰을 흉내 내고 싶었나 보다.

경찰은 그 조직과 사회의 치안을 담당한다. 즉, 나쁜 짓 하는 놈들을 잡는 것이 책무이자 임무여야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나쁜 짓을 하는 것은, 군대 내에서 버젓이 가혹행위를 저지르는 놈들이고, 그것에 부화뇌동하는 공범들이며, 그것을 방관하고 묵인하는 넘어가는 방관범들이다.


군 생활 내내 조석봉 일병(조현철 분)을 괴롭혀 온 황장수 병장(신승호 분)이 그러하고, 그 곁에서 자신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조 일병을 괴롭힌 류이강 병장(홍경 분)이 그러하며, 키득거리며 방관한 내무반원들이 그러하다. 그렇게 붉어진 사건을 덮겠다고 실탄을 장전하고 특임대를 이끌고 설치는 헌병대장은 화룡점정되시겠다.

황장수 병장역의 배우 신승호는 27살의 아직 군미필자이다.

경찰이 가정폭력범을 검거하고, 학교폭력 일진을 체포하는 것처럼, 제대로 된 군사 경찰이라면, 말도 안 되는 가혹행위로 범죄인 줄 알면서 탈영을 하고 부대원들에게 총기난사를 하게 되는 그 심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놈들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

이 드라마는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다.

김루리 일병(문상훈 분)

화두 5.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6개의 에피소드를 끝내는 장면에서 깜찍한 별명의 '루피', 김루리 일병(문상훈 분)은 동반 입대했던 절친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가혹행위를 당하다 못해 총기를 난사한다. 총기를 난사하기 직전 그의 대사가 이 영화의 마지막 화두이다. 이 말은 원래 '조로' 조 일병이 총기 자살을 하기 직전 했던 말이기도 하다.

맞다.

원래 그런 거니까, 혹은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 그렇다보니까, 혹은 그런 카르텔이 이미 확고하니까 등등의 온갖 핑계와 변명은 행동하지 않는 자의 입에서 공허히 난무하기 마련이다.

이 드라마의 메세지는, 정작 이런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기득권에 행여 조금이라도 피해가 올까 싶어 그 카르텔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잖아!’라고 죽비를 후려치며 일갈하고 있다.

군대가 옛날 같지 않고 편해졌다고?

요즘 때리는 군대가 어디 있냐고?

그 말은 무려 16년 전 <용서받지 못한 자>가 개봉했던 2005년에도 나왔던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관객에게 외치고자 하는 구호는 바로 이 마지막 화두이고, 이것은 단지 군대 내의 부조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일진이 들끓는 학교에,

자기가 낳은 자식을 학대하는 가정에,

사랑한다고 결혼해놓고 여자에게 주먹을 날리는 그놈이 사는 집에, 

그 모두에 해당되는 사회변혁을 촉구하는 외침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빙자한 드라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킹덤>을 무너뜨리고 망작을 만든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