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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26. 2021

<킹덤>을 무너뜨리고 망작을 만든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킹덤; 아신전>을 보고 나서

킹덤 시즌 1과 시즌 2의 마니아였던 아들이 날짜를 꼽아가며 기다리던 23일 오후 <킹덤; 아신전>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시즌2의 마지막 장면에 깜짝 등장으로 마니아들을 설레게 했던 전지현이 전면에 등장하는 새로운 에피소드였다.

16개월, 1년이 넘게 마니아층을 기다리게 한,

도대체 조선땅의 좀비는 어떻게 창궐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미션을 품고 포부도 당당하게,

시즌3가 아닌 스핀오프 격인 <아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들은 92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혹평과 육두문자를 던지며 TV 앞을 떠나버렸다.

함께 보던 내가 민망할 정도의 '망작'에 대한 마니아의 분노였다.


사실 영화평론을 돈 받고 쓰는 전업 평론가일 때를 제외하고서는 추천할만한 수준의 영화가 아닌 작품에 평론을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곳 브런치는 나의 조그만 비밀스런 사적 공간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하였다.


하지만 일주일 전, <크루엘라>에 대한 간단한 평을 작성하고 그 영화 리뷰가 '다음 무비'에 일주일 넘게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지속적으로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

마니아층과 아직 킹덤을 보지 않았을 여러 사람들에게 이 '망작'이, 기존에 쌓아놓은 왕국(킹덤)을 무너뜨리기 전에

왜 이런 망작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변명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약간은 불편한 마음으로 망작의 분석에 임하게 되었다.

이번 망작의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김성훈 감독과 김은희 작가

기존에 워낙 히트를 쳤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갓'과 '한복'을 포함한 영상미와 박진감에서 호평을 받았던 킹덤이 왜 이런 '망작'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는가에 대한 책임은, 가장 기본적으로 위 사진의 두 인물에게 있다.


굳이 책임의 비중을 따지자면, 7:3으로 작가가 70% 이상의 책임을 지는 것이 이번 작품에 있어서는 맞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위주가 되는 작품이 있고, 작가가 위주가 되는 작품이 있다.

누구의 영향력이 더 큰가에 대한 다른 말일 수도 있겠는데, 대체적으로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에 감독이 지대한 영향을 발휘하는 연출이자

작가의 역할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다.

아주 이례적으로 작가가, 그것도 영화가 아닌 TV 드라마로 명성을 쌓은 형태에서 영화적 형태의 작품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오래전부터 기획을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영화감독은 많지 않다. 그저 투자사의 오더를 받고 그에 합당한 연출만 하는 공장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회사원형 영화감독이 많을 뿐이다.

<킹덤>은 애초부터 '김은희 작가'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김은희 작가는 애당초 역사물을 다뤄본 경험이 일천하다.

사극 내지는 역사극을 다루는 작가들이 어떤 사전조사와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나는 그들을 가르치고 도와줬던 사람으로서 그것이 대강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늘 강조해왔다.


킹덤 시즌1,2는 사극이 아니었냐고?

응. 사극 아니다.

사극을 흉내만 낸 것일 뿐,


역사나 그 당시의 배경 등을 공부한 내공이랄 것도 필요 없는 수준의 적당한 훑기 수준의,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사극의 서사가 주가 되지 않는 현대인들의 눈높이 맞춘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 <아신전>은 달랐다.

역사적인 배경과 그 속에 묻힌 사람들의

사연을 끄집어내어

왜 이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역사적 배경을 깔고서 큰 서사를 설득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 구성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딱 한줄로 정리된다.


"여진족을 피해 조선 국경지대에서 살던 귀화 여진족들이, 필요에 의해 조선에 배신당하고,여진족에게 죽임을 당하여, 유일한 생존자였던 여주인공이 좀비를 키워내서 복수를 시작했다."


이 한 줄로 92분짜리 <아신전>은 모두 설명된다.

이렇듯 간촐하게 설명될 수 있는 영화는, 깊이를 가질 수도 없을뿐더러 지금 지적하고 있는 가장 큰 역사공부가 부족한 작가가, 뭔가 거대담론을 만들어낼 만큼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힘을 만들어낼 리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기 마련이다.

작가의 출세작이라고 하는, 국과수의 지저분한 권력싸움을 그렸던 <싸인>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국과수와 시신 부검이라는 배경과 소재에 대한 공부가 어느 정도나마 담겨 있었다.(물론 그것도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장르물에 특화된 작가라고 인정받게 된, 이후의 작품인 <유령>이나 어설프게 청와대까지 다룬 <세븐데이즈>까지도 그러하였다.

일본까지 리메이크로 팔린 <시그널>까지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 <아신전>에서 왜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을까?


위에 한 줄로 정리된 <아신전>의 스토리라인이,

그 서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역사의 공부가 배어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람들을 설득할만한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원리 때문이다.


도대체 제대로 된 역사의 공부가 없이 왜 제대로 된 서사를 만들 수 없냐고 질문할 수 있다.

이 작품 곳곳에 여러 문제점이 산재해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폐해를 설명하자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행동이 갖는 정당성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하여 이야기로 빨려 들어가야 하는데 도통 공감 자체를 불러일으킬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야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여진족들을 죽인

망나니 해원 조 씨 조학주의 아들이자, 이후 계비가 되는 조 씨의 오라비 조범일(정석원 분)의 등장이 그러하다.


그의 만행에 대한 진실을 알면서도 덮는,

민치록(박병은 분)의 행동이 또한 그러하다.

왜 그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구현하지 않는지

야인들을 희생시키면서도 그러하고 그 이후의 부분에서도 대한 어떠한 인간적인 고민도 고뇌도 없다.


골짜기가 없는 산은 없다.

킹덤의 원작이라고 소개되는 만화가 있다.

<버닝 헬, 신의 나라>라는 작품이다.

(작품이라고 붙여주기에 참 민망한 수준이다.)

이 만화는, 한 회사에서 주도한 것인데, 

<신 암행어사>라고, 만화를 좀 본 사람들에게는 제법 유명한 양경일이 그림을 그리고 윤인완이 글을 쓴 작품의 두 사람이 회사를 차린 곳에서 만들어낸 만화이다.


그런데 그들이 기획한 만화작품에 살을 붙여 드라마화한 것이 <킹덤>이라고 하며 그들은 스토리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내공의 깊이가 없는 이들이 여럿보인다고 내공이 은행의 잔고처럼 두둑해지는 일은 결코 없다.

글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윤인완이나 김은희에게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자료를 조사하여 그것을 자기화한 그 무언가가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와 관객들이 다 안다.


첨언하자면, 글쓰기 내공의 깊이가 없는 자들이

벌이는 전매특허 같은 행위가 하나 있다.

자료를 찾고 적당히 공부하는 척하다가 슬쩍 자신의 아이디어인 양 그것들을 차용하는 것이다.


만화로 돈을 확실히 벌겠다고 손을 잡은 곳의 작가가 일본에 배웠다며 그들의 취향에 맞춘 습성이 나와서일까?

사람을 되살리는 것에 대한 철학도 없이 어쭙잖게 애니메이션 명작 <죽은 자들의 제국>의 모티브를 슬쩍 가져오는 것에서부터 잘못되었다.

모티브나 세계관은 그렇게 가져온다고 다시 자생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모르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벽이 오지 않은 암흑의 지붕 위에서 활을 쏘는 전지현의 모습은 제도권에 저항하며 활을 쏘던 <헝거 게임>의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분)을 너무도 자연스레 오버랩시킨다.


너무도 쉽게 군졸에게 몸을 허락하는 아신(전지현 분)의 행동도 설득력이 없다.

군졸을 죽이지 않아도 제압할만한 수준의 아신이 굳이 그들에게 몸을 허락하는 행위 관객을 설득하기 위한 장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전지현을 주연으로 쓰려고 시즌2에 밑밥까지 깔았다면, 연출이 되었든 작가가 되었든 승부수는 전지현에게도 던졌어야 했다.


예컨대, 1991년 CBS에서 방영되었던 <미녀와 야수>에서, 린다 해밀턴은 가녀리기 그지없는 여주인공 역할을 연기한다.

아니, 그 이전 <터미네이터>에서 그녀는 시종일관 쫓기는 웨이트리스 역을 아주 실감나게 해냈다.


반전은 그다음이었다.

그녀는 1991년 같은 해 여름.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엄청난 트레이닝을 통해 암표범으로 변신하여 <터미네이터 2>의 여전사로 돌아온다.

그저 척 보기에도 체지방 10% 이하의 근육질 암표범 같은 그녀의 체력단련 등장씬은 <터미네이터 2>의 백미로 손꼽혔다.


볼살이 통통한 아이 둘을 낳은 엄마 배우의 얼굴에,

아버지가 개죽음을 당하고 군영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온 아신의 모습을 담겠다고, 얼굴에 검댕 조금 묻히고 머리 좀 헝클어놓으면 그 간절함의 역사와 주름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안일함이 왕국(킹덤)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국경지대 밖 야인'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 순간,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장벽 너머 북쪽(North of the Wall)’의 와이들링(야인)이 생각나는 것은, 한국의 관객들은 물론이거니와

이제 '갓'을 외치던 외국인들에게도 감출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관련자들에게는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외곽 요새에서 터벅거리며 나오는 조범일과 민치록을 보면서, 그리고 작품 초반부에 민치록이 설명해서 너무도 뻔한 내용을 다시 한번 아신의 눈을 통해 조범일의 화살촉을 보여주는 것을 보곤, '아! 굳이 이렇게까지 질척거려야 했나?'라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원래 성격대로, 관계자라면 가슴이 아릴정도의 신랄한 글쓰기를 다가 몇 번은 지우고지워 완곡하게 쓴다고 고쳐썼다.


어렵게 어렵게 한국형 좀비 영화와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게 쌓은 왕국(킹덤)은 언제든

단 한 번의 안일한 실수만으로도

무너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콘텐츠로서의 한류가 좀 더 세계 속에서 기치를 날리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헛발질은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갓' 열풍을 몰고 온 세자(주지훈 분)의 <세자전>이

제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역사공부나 그 역사공부가 인물들에게 충분히 저며 들어 배어들게 하는 글쓰기의 내공이 그들에게 갑자기 초능력처럼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부족하다면 공부하되,

단시간에 공부해서 될 것이 아니라면

당신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어쭙잖은 베끼기나 적당한 짜깁기 짬뽕탕을

속아서 인정해줄 정도로 관객들은 예전 같지 않다.


만약 <아신전>과 같은 삽질이 다시 한번 이어진다면 이제 왕국(킹덤)을 무너뜨리는 것도 한순간이 될 것이다.


잊지 마라.

'亡秦者는 胡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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