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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9. 2022

세계 1위에서 순식간에 몰락해가는 회사에 있다가 –1

회사를 부활시키기 위한 구원투수로 나서 전설을 쓰다.

240번째 대가의 이야기.     


1967년 인도 뉴델리에서 태어났다. 인도의 명문 마니팔 공과대학에서 전자 공학을 전공한 후 칼콤전자 등 인도의 여러 회사에 근무하다가 1995년 노키아에 입사했다. 그가 노키아에 입사해 담당한 부서는 당시 노키아의 주력이었던 단말기 사업부서가 아니라 무선 네트워크 장비를 만들어 이동통신사에 판매하는 네트워크 사업부였다. 말 그대로 잘 나가던 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는 네트워크 전문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꾸준히 다졌다. 2G, 3G, LTE(4G) 등으로 네트워크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이동통신사를 방문해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꾸준한 조언을 제공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네트워크 사업부의 주요 요직을 섭렵할 수 있었다. 2007년 노키아 네트워크 사업부는 지멘스 네트워크와 합병해 노키아 지멘스 네트워크(NSN)라는 별도의 회사로 거듭났고, 수리는 이 회사에서 부사장을 거쳐 2009년 CEO 자리에 올랐다. 결국 모회사의 부름을 받고 2014년 노키아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CEO로 임명되었다.

싱가포르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인도 출신의 기업 경영인으로 노키아에서 사원으로 시작해서 2020년까지 CEO를 맡아 노키아 명가의 부활을 이끌어냈던 라지브 수리(Rajeev Suri; 힌디어: राजीव सूरी)의 이야기이다.      


오늘 이야기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다시 부활시킨 노키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인도의 대학을 졸업하고 인도의 기업을 몇몇 전전하다가 노키아에 입사한 것이 1995년의 일이었으니 그가 노키아 맨이라 불리는 것도 이상한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입지전적인 전설을 쓰며 CEO가 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TOP을 구가하던 기업이 실패하고 몰락하여 사라질 뻔한 순간의 등장하여 그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노키아는 1871년 설립해서 파란만장한 역사가 가진 기업이다. 당시는 핀란드가 아직 독립하기 전이며, 제정 러시아의 일부로 로마노프 왕조의 지배를 받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창업주는 농노해방령이 시행될 즈음에 사업을 시작했으니 유구한 역사라 할 수 있다. 노키아의 모바일 사업부서는 매각 전까지만 적혀있으며 매각 이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에서 볼 수 있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하자 다시 폭스콘에 재매각하였다.     


회사 이름은 설립 당시 본사가 위치했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마을은 탐페레 근교에 있다.     

시류에 따라 주력 사업을 자주 변경해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모토로라를 꺾고 전 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핀란드 내에서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몇 안 되는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 폭풍처럼 몰아닥친 스마트폰 혁명을 폄하하며 안일하게 대응하여 매출과 점유율이 폭락하였고, 결국 해당 기업 부문 자체가 사라졌다. 이 과정이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노키아의 실패는 ‘1등이라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면 결국 망하게 된다’와 ‘영원한 1등은 없다’라는 교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다만, B2B 사업인 통신장비 제조사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에릭슨과 함께 업계 1~2위를 다투고 있어 기업은 아직 건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할 일이 없는 B2B 사업이기에 관심이 없어서 모를 뿐이다.     

노키아는 본래 제지업으로 시작한 기업이었다. 노키아는 회사가 두 번째 회사를 세운 고장의 이름이기도 했다. 종이를 만들다가 고무로 업종을 변경하고, 이전 전선으로 변경하는가 싶더니, 전선 만드는 회사와 무선 통신장비를 만드는 회사와 합작해서 그것이 오늘까지 쭉 이어지게 된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후 타이어 회사와 고무장화 회사를 각각 계열에서 분리하고, 통신과 기술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덕분에 북유럽에서는 가끔 노키아가 만든 타이어(Nokian 브랜드)를 달고 다니는 자동차를 볼 수 있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노키아제 고무장화는 특히 인기가 높다는 듯. 1980년대 중반에 YLE, MTV와 합작하는 형태로 방송산업에 진출한 적이 있었는데 1993년에 지분을 전부 청산하고 철수했다. 대신 그 자리는 MTV가 차지하고 부흥기를 만들어낸다.     


1960년대에 처음으로 전자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주력 사업이 된 시점은 1980년대 문어발 사업 확장으로 파산 위기까지 몰리게 된 노키아가 1992년에 당시 계열사 사장이었던 요르마 올릴라를 그룹 전체의 CEO로 선임한 이후부터였다. 요르마 올릴라는 불필요한 사업부들을 전부 매각함과 동시에 통신 사업에 올인을 하였고 1998년에 모토로라를 꺾으면서부터 이후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를 오랜 기간 동안 지켜 왔다.     

3310 모델

특히 노키아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3310은 발에 차이는 게 3310일 정도로 굉장히 많이 생산되고 팔려 나갔으며, 그 무식한 내구성 때문에 절대 파괴되지 않는 물체로 왜곡하는 인터넷 밈이 있기도 했다. 이외에도 저가임에도 불구하고 성능 좋은 휴대폰을 만들어왔다. 유명 보급형 스마트폰으로 1100 시리즈(무려 2억 5000만 대 이상 팔렸다.)와 C6과 C3가 있다.     

1100 시리즈

이렇게 잘 나가는 동안에도 무엇보다 회사 자체가 투명도 높고 도덕적이기로 유명했다. 핀란드의 국민정서상으로도 그런 부분이 설명될 수 있겠지만, 기업치고 특별한 세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노키아가 잘 나갈 때는 핀란드를 먹여 살린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핀란드 경제의 무려 4분의 1의 수익을 창출하던 기업이었다. 노키아의 몸집을 키운 것으로 인정받는 CEO 요르마 올릴라는 ‘핀란드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렸을 정도였다. 그러한 투명성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본사 건물은 모두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되어 있다. 실제로 이 건물 디자인의 의미는 ‘모두가 지켜보고 있으니 똑바로 하겠다’라고 홍보된 바 있다.     


Navteq를 인수해 지도 및 내비게이션 서비스인 Here Maps를 서비스했으나, 2015년 Here 서비스 부문은 아우디, BMW, 다임러의 3사 컨소시엄에 매각되었다.     


2007년 독일의 지멘스와 각자의 통신장비 부문을 합병하여 조인트 벤처 형태로 ‘노키아 지멘스 네트웍스’를 설립하였고, 2011년에는 모토로라의 통신장비 부문을 인수하여 통신장비 부문의 몸집을 계속 키워나갔다. 2013년 노키아가 이 회사의 지멘스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노키아 지멘스 네트웍스의 사명을 NSN(Nokia Solutions and Networks)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2014년에 다시 사명을 ‘노키아 네트웍스’로 바꿨다.     


2016년에는 이 바닥의 또 다른 큰손인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했다. 덤으로 벨 연구소도 딸려왔다. 점점 통신장비에 있어서 에릭슨, 삼성전자와 함께 3강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모양. 2016년 매출은 1위 에릭슨에 근소하게 밀려 2위를 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휴대전화 사업부를 매각한 이후에는, 통신 기지국 등에 사용되는 장비를 납품하는 노키아 네트웍스와 헬스케어가 주력 사업 부문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쌓아 온 경험과 특허를 바탕으로 나름 잘 나가는 중. 화웨이 같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면서부터 노키아에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iPhone 1세대가 처음 출시될 즈음 노키아는 자사의 스마트폰용 OS인 심비안과 미고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노키아 측의 계획에 따르면, 중저가 폰에는 심비안이, 고가의 플래그십에는 미고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심각하게 꼬이기 시작하면서 회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심비안으로 iOS와 안드로이드와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미고는 계속해서 개발 일정이 밀리고 있었다. 결국 미고는 노키아 N9에 처음 사용된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고전이 계속되면서 2011년에 1분기에 매출 기준으로 애플에 밀렸다. 물론 영업이익은 비교할 수준조차 되지 못했다.     


이쯤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몇 주 후 삼성전자 실적이 발표되면서 삼성전자가 2등 자리를 가져가 버리고 만다. 결국 졸지에 3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판매대수 기준으로는 부동의 1위였으나 2012년 1분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판매량에서도 삼성에 밀렸다. 2007년 말에는 핀란드에서 넘사벽으로 시가총액 1위인 기업이, 4년 만에 시가총액이 1/9로 줄어버리는 참사가 벌어졌다.      

재정적인 상황도 한동안 악화 일로에 있었다. 2011년 2분기에는 3억 6,800만 유로 (5,57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노키아 지멘스라는 자회사 때문에 2009년에 적자 낸 적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본 그룹이 무너져 내린 것은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구글이 전격적으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노키아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날개 없는 추락을 하던 노키아가 기적적인 주가 상승을 기록한 적도 있다. 그러나 2012년 4월에 신용등급이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다양한 지표와 현상을 통해 이미 2010년 초반부터 노키아에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대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회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신임 CEO인 스티븐 엘롭은 미고 프로그램을 완전히 접어버리고 심비안을 차차 단종시켜 나가면서 2011년 제1 플랫폼을 윈도우폰 7로 변경한다는 초강수를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악수였던 것은 이 발표로 인해 노키아의 주가가 10% 가까이 폭락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주가 폭락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중 한 가지는 노키아가 신기한 기술들을 굉장히 많이 연구, 개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한 방향으로 모아서 제품의 향상을 도모하지 못했다는 체질적이자 고질적인 문제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따라서 필요한 부문에만 R&D 자원을 남겨놓고 남은 자원들을 전부 한 플랫폼으로 집약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왜 심비안이나 미고에 비해서 딱히 나을 게 없는 윈도우폰을 선택했냐는 것인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심비안과 미고 개발에 들어가는 손실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추측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노키아 OS의 양대 축인 심비안과 미고 모두 어차피 더 이상 그에 기반한 제품을 개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사실이다.      


심비안은 RTOS급 커널을 기반으로 플랫폼 확장성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그에 따른 불안정성 문제가 계속 터져 나왔고, 리눅스에 기반한 미고는 처음에는 TI와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OMAP AP를 타깃으로 개발되다가 협력관계가 깨지면서 개발이 지체되었고, 이후 인텔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면서 인텔의 AP인 아톰을 타깃으로 개발되다가 아톰이 모바일 시장에서 처참하게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LTE 모뎀칩의 개발까지 늦어지면서 미고 프로젝트도 덩달아 공중 부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노키아는 스테판 엘롭이 당시 비유했던 그대로 ‘불타오르는 두 플랫폼을 버리고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플랫폼으로 헤엄쳐 갈아타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의문은 왜 안드로이드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와는 별론으로 당시 노키아는 윈도폰과 안드로이드를 모두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노키아는 안드로이드의 채택을 위해 구글과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상황대로 안드로이드를 채택할 경우 이미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수많은 안드로이드 업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지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였고, 따라서 노키아는 구글로부터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의 특권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요구하게 된다.      


물론 제조업체들을 최대한 공평하게 관리하면서 최대한 많은 업체들을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입장에 있던 구글은 그러한 특별대우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노키아는 그러한 구글의 태도를 고압적인 것으로 판단하면서 협상은 결렬되고 만다. 이는 공평무사한 경쟁환경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의 특권에 집착하려는 한때 잘 나가던 업체들이 곧잘 보여주는 망하는 길로 가는 전형적인 첫걸음 행태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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