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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01. 2022

세계 1위에서 순식간에 몰락해가는 회사에 있다가 –3

회사를 부활시키기 위한 구원투수로 나서 전설을 쓰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254


우여곡절 끝에 2014년 5월 노키아의 신임 CEO로 결정된 인물은 20년 동안 노키아에 몸담았던 ‘노키아 맨’ 라지브 수리(Rajeev Suri)였다.     

몰락한 노키아를 살려내기 위해 수리가 취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못하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잘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는 취임 후 전 직원에게 "과거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큰 꿈을 꾸자"라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 그가 향후 취할 경영 전략을 예고했다.     


20년 넘게 네트워크 사업부에 종사한 수리는 노키아가 살아남으려면 무선 네트워크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먼저 NSN에서 지멘스 지분을 모두 인수해 네트워크 사업부를 완전히 노키아의 것으로 바꿨다. 이어 불필요한 사업부를 모두 정리했다.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인 위성 지도 사업 '히어'조차 자금 마련을 위해 벤츠, BMW, 아우디 등으로 구성된 독일 자동차 컨소시엄에게 28억 유로에 팔아치운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팔아버린 디바이스 사업부서 매각 대금과 히어 매각 대금을 합쳐 4위 네트워크 사업자였던 프랑스 '알카텔루슨트'를 156억 유로에 인수했다. 유선과 무선을 아우르는 종합 네트워크 기업이 되기 위해서다. 무선 네트워크 분야에서 3위 사업자였던 노키아는 4위 사업자였던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해 잠시나마 1위 사업자가 될 수 있었다. 원래 1위 기업이었던 에릭슨과 무섭게 성장하며 에릭슨의 자리를 위협하던 화웨이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노키아는 LTE와 5G 장비 분야에서 화웨이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고, 2017년 오랜 침체를 깨고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핀란드 언론이 선정한 2017년 비즈니스 리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핀란드는 우수한 노키아 인력을 기반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과감하게 규제를 풀면서 회생의 실마리를 찾았다. 노키아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금융위기 이후 5년간 끝없는 추락을 이어가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휴대폰 사업을 매각하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라지브 수리였다.

      

따라서 2014년 5월 노키아는 신임 CEO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변신했고 2017년에는 오랜 침체를 깨고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는 어떻게, 어떤 리더십으로 기업을 멋지게 부활시킬 수 있었을까?

이러한 위기에서 그가 가장 먼저 실행했던 것이 바로 직원들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2014년 5월 수리 사장이 회사를 맡았을 때 그는 이런 말로 직원들 마음을 다독였다.     


“과거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큰 꿈을 꾸자.”      


그는 노키아의 12대 문화 원칙을 만들어 나갔는데 세 가지 주요 요소 각각에 4가지 원칙들을 만들어 신속히 실행에 옮겼다. 세 가지 주요 요소는 첫째, 추진력(Drive)이며, 둘째, 용기(Dare)로서 공동체 내에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심었다. 셋째, 배려(Care)로서 리더는 직원들을 배려해야 하며 리더는 자신보다 팀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새로운 회사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할 때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직원 5만 명이 노키아로 왔는데 이러한 문화가 노키아에 정착되어 있었기에 서로 모든 것을 합치고 함께 실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동통신 분야에 강점이 있던 노키아는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업체로 완전히 변신할 수 있었고, 기업의 정체성이 급변하는 와중에도 직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수리 CEO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노키아에서 23년간 여러 나라의 지사와 사업개발, 마케팅, 영업, 전략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그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는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을 붙잡고 다시 비전을 제시하고 끈질기게 설득하면서 사람의 내재된 마음을 움직이며 주력 사업과 조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확신했다.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다. 바로 리더를, 팀장을, 상사를 떠나는 것이다. 팀원들은 과연 조직을 위해서, 자신의 역량을 얼만큼 발휘하고 있을까, 그들은 왜 그 정도만 쓰고 있을까 하고 반문하면서 그는 결국 ‘성과의 중심은 사람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실로 그는 인간존중을 몸소 실천한 CEO였다.   

   

한국기업을 비롯한 대개의 기업에서 구성원들을 인격을 갖춘 개체로 보지 않고 도구로 보고 비교우위 힘으로 따르도록 하는 계급 조직문화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떠나버리니까 성과 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들릴 뿐이라는 맹점을 그는 자신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며 보고 느꼈고, 그것을 자신이 위에 올라가 바꿀 수 있을 때 바꿔냈다.     

수리를 포함해 무선 네트워크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관계자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결국은 둘만 살아남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양질의 무선 네트워크 장비를 전 세계 이동통신사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초거대기업 둘만이 살아남아 네트워크 장비 시장을 양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현재 화웨이, 에릭슨, 그리고 노키아가 살아남는 둘에 포함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아쉬운 얘기지만 자체 네트워크 사업을 전개 중인 삼성전자는 이 삼파전에 낄 깜냥조차 되지 못한다. 중국 정부의 비호를 받던 ZTE조차 경쟁에서 탈락했다.     


살아남기 위해 수리가 택한 전략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미국과 유럽에 발을 걸친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과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수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고,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특정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국가를 돌아다니며 비즈니스를 진행한 경험을 토대로 노키아를 핀란드의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고 있다.      


노키아의 명목상 본사는 핀란드 에스푸이지만, 그곳의 규모는 노키아 전체에서 세 번째에 불과하다. 더 이상 본사라고 할 수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연구소와 런던에 있는 사옥의 규모가 훨씬 크고 상주하는 인원도 더 많다. 기술 개발은 미국을 중심으로, 경영은 런던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임원 가운데 핀란드인 비중도 확 줄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경쟁사인 화웨이가 발붙이지 못하는 시장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진 후 글로벌 시장 공략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기술 개발을 통한 원천 기술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키아 전체 인력 10만 명 가운데 연구 개발에 투입된 인력은 4만 명에 달한다. 실리콘밸리 연구소를 중심으로 전 세계 각국에 연구소를 설립해 현지 시장에 맞는 네트워크 장비를 개발 중이다.     


마지막으로 수리는 마지막으로 합병을 계획했었다. 객관적으로 평가해 살아남는 둘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기업은 시장점유율 1위인 화웨이다. 결국 에릭슨과 노키아 둘 중 하나는 시장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때문에 시장에선 에릭슨과 노키아가 합병할 것이라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하지만 같은 유럽 출신 기업이라도 기업 문화가 달라 합병이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유선 네트워크 시장의 강자인 시스코가 에릭슨과 노키아 가운데 하나를 인수해 무선 네트워크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국가의 전략 자산인 통신망을 외국 기업에 맡겨둘 수 없다는 미국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5G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시점을 앞두고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물 밑에선 이렇게 합종연횡이 진행 중이었다.     


노키아는 미국 이동통신사업자인 스프린트와 5G 상용화 서비스를 개시한 이후, 현재까지 총 15개 국가에서 5G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유럽 전기통신 표준화기구에 제출한 5G 특허 신고가 2000개를 넘는다. 또 첨단 제조업부터 의료 부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산업분야에서 5G 응용을 시연해 보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에릭슨, 화웨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성공한 노키아는 최근 화웨이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며 성장성에 제동이 걸렸다. 화웨이가 노키아, 에릭슨보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이라는 시장 내 인식이 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노키아 주가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의 1년간 실적 부진으로 30%가량 급락했다. 지난해 10월에는 2021년까지 수익 회복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배당금 지급도 중단했다.     


기업의 성쇠는 당연히 CEO의 책임추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 역시 끝까지 그의 개혁을 마치지 못하고 권좌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2020년 그는 6년여의 걸친 개혁정책을 마치지 못한 채 CEO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노키아는 바로 핀란드 전력회사 포텀의 현 CEO인 페카 룬드 마크를 신임 CEO로 임명했다.     

라지브 수리에 의해 부활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노키아가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결국 라지브 수리는 가장 큰 요인이자 위협인 화웨이 파급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화웨이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잠식할 때, 노키아의 대응 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롱텀에벌루션(LTE)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5세대(5G) 이동통신에 쏟아부은 화웨이와 맞서 싸우기에는 노키아 전력이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2015년 노키아의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9%로 2위였다. 분명 당시 화웨이는 24%로 노키아 뒤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다음 해 화웨이는 노키아를 앞질렀고, 노키아는 지금까지 화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괜찮은 한수라고 평가받았던 알카텔 루슨트 인수도 크게 빛을 발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키아가 2015년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할 때는 ‘유·무선 통합 솔루션 제공’이라는 전략에 기대감이 컸다. 노키아의 무선 통신 장비와 알카텔 루슨트의 유선 통신 장비 솔루션을 결합, 고객에게 ‘엔드 투 엔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굴지의 통신 장비 회사 가운데 이러한 ‘엔드 투 엔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는 화웨이와 노키아밖에 없었다. 에릭슨은 무선 쪽 강자였고, 미국의 통신 장비 회사로 유명한 시스코는 유선 쪽이다. 삼성전자 또한 무선 통신 장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노키아의 ‘엔드 투 엔드’ 전략도 화웨이의 물량 공세에는 버티기 힘들었다. 오히려 구조조정과 무선 통신 분야에 집중한 에릭슨이 노키아 보다 좀 더 견딜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위권에 미치지 못했던 삼성전자 경우, 5G에 올인하는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는 모양새다.     


사태가 CEO 교체에 이르게 되자, 노키아를 둘러싼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노키아가 지속적인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다른 회사에 팔릴 수 있다는 매각설까지 나돈다. 블룸버그통신은 노키아는 자산 매각이나 합병까지 다양한 전략적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노키아가 사업부 매각을 검토한다고 하더라도 여건이 좋은 건 아니다. 1위 사업자이자 경쟁사인 화웨이에 팔릴 것을 기대하기는 만무한 상태이다. 화웨이 입장에서도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에릭슨과의 합병 시나리오도 규제 당국 승인 문제에 발목을 잡혀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이렇듯 라지브 수리는 노키아 부활의 전설을 썼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다. 비즈니스 업계에서 특히나 통신업계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현재 화웨이도 국제정세의 미국과 중국 알력에 휘말리며 이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3일간에 걸쳐 노키아의 이야기와 잠시긴 했지만 자신이 30여 년이 가까운 세월을 노키아라는 한 회사에 모든 것을 바쳤던 남자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는 것은 단순히 당신이 모르고 있던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고자 함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민원인일 때 공무원을 욕하며 자신이 막상 공무원이 되면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신입사원일 때 불합리한 짓을 해대는 상사나 보스를 보고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하면서 결국 똑같은 짓을 반복하며 조직의 볼트와 너트로 전락해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라지브 수리처럼 자신이 아래에 있을 때 느꼈던 불합리를 바꾸고 그 자리에서 배웠던 가르침을 위에 올라가면서 조금이라도 적용하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이름을 남길만한 업적을 세우고야 만다.     


그것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한 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대기업에 턱걸이로 입사하고 나서 회사의 출입카드를 당당히 목에 걸고 동료들과 나와 식사를 하면서도 자랑스럽게 그 신분증을 굳이 빼서 주머니에 넣지 않을 정도의 자랑하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50이 갓 넘어서 회사에서 밀려나듯이 한직으로, 구석으로 밀려나서 벼랑에 내몰린다. 그때서야 그들은 후회를 하고 자신이 회사에 크게 공헌한 것도 없지만, 자신을 위해 뭔가 쌓지도 못했음을 깨닫는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이다. 그렇게 나태하지 않고, 후안무치하지 않으며 자신이 보고 느낀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쳐나가려고 조금만 노력해도 당신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그 기회를 살릴 것인가, 그저 평범하게 볼트와 너트로 살다가 벼랑에 내몰려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다가 퇴직금마저 다 날려 먹을까에 대해 바로 지금이 그 결정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내가 일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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